자랑스러운 나의 친구, 나의 스승
미국, 한국을 막론하고 나이가 들면서 친구가 되기는 참 어려운 일 같다. 나의 자아가 커가고 라이프 스타일이 굳어져 가면서 나와 다른 사람은 왠지 껄끄럽고 불편하다. 그래서 우리는 학창 시절 친구를 선호한다.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난 어린 시절 절친은 그 오랜 세월의 갭에도 불과하고 어딘지 나와 닮아 있다. 그래서 더 편안하고 말이 통한다. 그런데 30세가 넘어서 사귄 친구는 어쩐지 작은 일에도 틀어지고 맘이 안 맞으면 불편하고 실망하고 싫어지기 쉬워지는 건 나와 여러 면에서 비슷한 사람들 만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미국에 오래 살면서 많은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지금도 가장 친한 친구는 고교 베프와 대학시절 베프뿐이다. 그렇지만 미국인 중에는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났다. 이곳에서는 이를 친구라고 칭한다. 내가 인연을 맺은 좋은 사람들 중에는 나의 교수였던 그웬이 있다.
그웬은 내가 대학 3년 차를 다니고 있을 때 새로 부임했다.. 그 이후로 벌써 20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나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부터 더 친하게 지내게 된 것 같다. 그녀가 상하이로 여름 강좌를 갔을 때 함께 여행했던 2007년 이후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중국계 미국인인데 남편이 백인이라는 점이 나와 같다. 내가 대학원에 있을 때 나는 그녀의 연주회를 따라다니며 스테이지 매니저 역할을 해주었다. TA 클래스의 한 역할로 간주되어 학점도 받았지만, 실제 프로들의 연주회를 보며 느낀 것도 많고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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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웬은 매우 훌륭한 콘서트 피아니스트일 뿐 아니라 두뇌도 매우 명석하고 논리적이다. 게다가 창의력이 굉장하다. 영국에서도 오래 살았다는데, 그곳에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출했던 라디오 쇼를 이곳 산호제에서 실리콘밸리 오케스트라와 함께 재현했다. 라디오 쇼라면 방청객이 있는 보이는 라디오 쇼를 생각하면 된다. 예전에는 한국의 라디오 방송국에서도 방청객을 앞에 두고 라디오 쇼를 했었는데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쇼 호스트가 사회를 보면서 가수들을 소개하고 노래하는 방송국 라디오 쇼 말이다. 게다가 중간중간 광고도 나가지 않는가? 이런 라디오쇼를 콘서트홀로 옮긴 이 연주회에는 가수와 밴드 대신 오케스트라와 클래식 성악가들이 출연을 했고, 라디오로 전파를 타지 않았을 뿐이다.
먼저 이 베이 지역의 클래식 라디오 방송 DJ로 유명한 호잇 스미스 씨를 (Hoyt Smith) 섭외해 라디오 방송처럼 음악의 진행을 맡겼다. 음악은 모두 조지 걸슈인 ( George Gershwin)의 레퍼토리였다. 그웬은 걸슈인의 Rapsody in Blue를 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그밖에 싱어들이 나와서 걸슈인의 노래를 부르는 등 모두 걸슈인의 감미롭고 재즈스러운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음악의 중간중간 1950년대의 오래된 라디오 광고들도 등장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는 등, 재치와 클래식한 분위기가 잘 어우러진 완벽한 콘서트였다.
가장 흥미를 끌었던 것은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열렸던 공연 중 토요일에는 스페셜한 조건이 내걸어졌다는 점이다. 관객들에게 1920년대 복장으로 와달라는 조건이었다. 정말 그날 저녁, 걸슈인이 활동했던 1920년대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여자들은 위대한 개츠비에서의 복장처럼 몸에 딱 붙는 슬림한 라인의 드레스와 작은 모자 또는 헤어밴드, 치렁한 목걸이, 그리고 하얀 장갑을 끼고 나타났고, 남자들은 조끼까지 갖추어 입은 양복에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든 사람도 있었다. 이 모습은 나를 다른 세계로 인도한 듯 황홀하게 만들었다. 모리스 라벨, 조지 걸슈인, 코코 샤넬, 어네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랄드 등 거물들이 활동하던 그 시대의 모습을 재현한 듯했다.
그녀의 콘서트는 대 성황을 이루었고, 대 성공이었다. 나는 스테이지 매니저로 3일 내내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는데, 훈남 셀럽인 호잇 스미스 씨를 3일 내내 가깝게 볼 수 있어서 매우 흐뭇했지만 무엇보다도 그웬의 연주를 매일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 그녀의 Rapsody in Blue 연주는 빈틈없이 환상적이었고, 나의 최애 곡인 “Someone to watch over me”를 여성 싱어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불러 주었을 때 그 당시의 남자 친구가 손을 꼭 잡아주었던 기억이 아직도 따뜻하게 남아있다.
그녀의 창의력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언젠가 수업 시간에 흥분한 목소리로 그웬이 말을 전한다. “Piano Tuner”라는 소설을 쓴 작가인 다니엘 메이슨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둘이서 함께 음악회를 함께 구상을 했다는 거였다. 하버드 졸업생인 그 작가는 당시 의대생이었는데 그의 첫 소설인 ‘피아노 튜너’ 내용에 구체적인 클래식 음악과 작곡가의 이름을 언급한 대목들이 곳곳에 나왔다. 그웬은 '저자와 함께하는 음악회'를 기획을 했다.
작가인 다니엘이 무대로 나와 클래식 음악이 언급된 구절을 읽어주고 나면 연주자들이 나와 그 곡을 연주했다. 정확한 수는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여섯 곡의 음악을 학생들이 아닌 프로 연주자들이 나와 연주했다. 작가의 육성으로 읽어주는 소설과 함께 기획하니 더할 나위 없이 특이하고 멋진 연주회가 되었다. 신문에서 광고를 해 주어서 학교 강당에서 열린 이 연주회는 만석이 되는 성공을 거두었다. 음악회가 끝나고는 소설의 배경이 영국인 것을 감안하여 영국 차이나 찻잔으로 차를 대접하고 티 스낵을 준비했다. 나의 친구이자 나에게 피아노를 배우던 콜린 존슨이 교수로 있는 호텔 경영학과에서 이 영국식 차 리셉션을 근사하게 준비해 주었다. 우아하고 클래식한 작은 파티까지 더해 완벽한 연주회를 탄생시켰다.
이렇게 똑똑하고 능력 있는 그녀가 나의 지도 교수였기에 나는 정말 수지맞은 학교생활을 했다. 뭐든 똑 부러지고 철저한 그녀는 우리 학생들에게도 같은 것을 요구했고, 우리는 그녀의 기대와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당시엔 따라가기만도 바빴지만 결과적으로는 배운 것이 너무나도 많다. 훌륭한 연주자인 동시에 피아노 가르치는 일에 기막히게 능력 있는 그녀 덕에 피아노 선생으로서의 철학과 방법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이제는 나의 든든한 친구가 되었다. 다행히 그녀의 남편인 릭과 나의 남편 스티븐도 아주 죽이 잘 맞는다. 우린 와이너리로 여행도 함께 가기도 하고 서로 집도 왕래하며 우정을 돈독히 하고 있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나이에도 음악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천상 피아니스트, 그웬. 나이 들면서 만나기 어려운 진실한 친구. 나의 음악 인생에 화룡점정을 찍어준 그웬을 예전에는 지도 교수로 지금은 친구로 만난다. 진심이 통하는 이 인맥에 마음이 부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