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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tyle by AK Feb 25. 2024

실리콘 밸리 사람들의 찐 일상

 "페이스북 직원의 평균 나이가 몇 살 일 것 같아요?" 벌써 십여 년 전, 페이스북이 생기고 가장 활기차게 발전하고 있을 때, 페이스북에 다니시던 중견 엔지니어셨던 분이 나에게 물으셨다. 20대 중반이라며 웃으시는 모습을 보며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회사 입구에 걸려있던 ' Move Fast, Break Things!'라는 자그마한 현판이 직원들의 나이와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을 했더랬다. 이제는 30대 후반, 40대 초중반이 되어있을 그들은 아이들을 키우며 가정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20대의 젊고 통통 튀는 두뇌가 계속 수혈되고 있겠지만 중견 간부가 된 그들도 여전히 현역에서 뛰고 있다. 예를 들어 마크 저커버그의 절친이자 현재 메타 (페이스북의 새 이름)의 CPO (Chief Product Officer)인 크리스 칵스는 이미 30대 중반에 인스타그램을 처음 페이스북에 도입했고 42세인 현재는 인공지능을 장착한 안경의 출시를 앞두고 연일 경제 TV에 나오고 있다. 팬데믹이 시작되어 멈추었지만 그전까지 그의 4살 아들을 가르쳐봐서 그의 다정하고 털털한 매력을 알고 있던 터라 TV에서 보니 무척이나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미국의 일반적인 가정과 다름없이, 이곳에서도 아이가 있는 가정은 철저히 아이들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이들의 방과 후 활동은 요 몇 년 사이 더 많이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 같다. 내가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은 초등학교까지는 아이들이 예능교육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음악도 피아노뿐 아니라 합창, 뮤지컬, 성악, 다른 악기 등을 병행해서 배우기도 하고 운동도 빼놓지 않고 한다. 축구, 야구, 수영, 소프트 볼, 태권도나 카라데, 발레, 짐내스틱등 스포츠도 반드시 한 가지 이상은 한다. 때로는 워터 폴로나 크로스컨트리, 승마등 흔치 않은 스포츠를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미술이나 코딩, 그 외 학과목 과외까지 일주일에 5일 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이런저런 과외활동을 하느라 피아노 레슨 스케줄링하는 시기가 되면 애를 먹을 때도 있다. 그 와중에도 부모들은 어떻게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주말과 휴가 때는 또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하려고 계획을 짜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니 이들의 삶은 아이들을 위한, 아이들에 의한, 아이들의 라이프인셈이다. 


미국에는 학원에서 차량을 운영한다든지, 걸을 수 있는 곳에 학원들이 모여있다던지 그런 편의가 전혀 없다. 모두 부모가 데려가고 데려오고를 해야 한다. 그러니 보통 두 명 이상의 아이들이 있는 미국 가정에서는 엄마 혼자서, 아빠 혼자서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부모가 함께 서로 도우며 아이들을 돌보아야 가정이 돌아가고, 직장 일도 제대로 할 수가 있다. 그러니 아빠가 아침 일찍 5시부터 3시까지 일하고 엄마는 9시부터 5시까지 일을 한다던가 하는 좀 융통성 있는 근무 조건이 모두 허용된다. 가정에 일이 생기면 직장에서 무조건 1순위로 편의를 봐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들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의 삶은 바쁘고 힘들어도 아주 건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아빠가 함께 양육하는 가정의 모습은 그냥 지나치며 봐도 건강하고 행복하다. 아이들은 구김살 없이 자신 있게 자라 간다. 자신의 의견을 잘 표출하고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순수하게 반짝이는 눈망울을 잃지 않고 예쁘게 자라난다. 아이들이 자라날 때의 가정의 모습이 이렇게 건강해야 한다. 엄마나 아빠의 부재는 아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 슬픔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가 함께 양육에 깊숙이 간섭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자신 있게 자라며 비뚤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와 다를 때가 종종 있어 다시금 나를 돌아볼 때가 종종 있다. 어른들의 행위에 대해 우리 아이들이 의문을 품을 때  아이들은 몰라도 돼, 왜 그런 걸 물어, 아이 귀찮아 등등 아이들을 무시하거나 야단을 쳤던 적은 없었던가? 같은 상황에서 이들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자세히 설명을 해준다. 아이들의 궁금증, 이해 부족, 아이들의 아쉬움 등을 최대한 이해해 주려고 풀어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버릇없이 키우는 것은 아니다. 예절과 본분은 철저히 알려주되, 아이들을 무시하지 않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하면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설명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의 말을 이해한 아이들은 절대 떼를 쓰거나 울거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리콘 밸리에 살고 있는 부부들의 특징은 맞벌이 부부로 살아가면서 바쁜 삶을 영위해 가지만, 물질적 풍요는 극대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곳의 중견 엔지니어들의 평균 연봉은 50만 불이 넘는다. 회사 간부라도 된다면 70만 불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들의 한 친구는 아마존 엔지니어 출신으로 지금은 도어대시라는 앱컴퍼니에서 일하는데 주식 옵션까지 합하면 연봉이 85만 불이라고 한다. 겨우 35세인데 말이다. 부부가 40대 정도 되면 둘의 샐러리가 최소한 연 80만 불이 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세금을 떼더라도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400만 불에서 500만 불도 넘는 집들이 거뜬히 팔려 나가는 것이 이해가 된다. 수년 전에 나는 단기 렌트를 (일명 에어비앤비)하려고 집 한 채를 구하러 여기저기 알아본 적이 있다. 레이크 타호는 겨울에는 스키, 여름에는 호수 레크리에이션, 그리고 봄가을에는 산수가 좋아 일 년 내내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그곳에 집을 한채 사려고 가 본 적이 있는데, 부동산 에이전트 말이 실리콘 밸리 사람들이 세컨드 하우스를 구입하려고 몰려들어 집값이 많이 오르고 있다고 했다. 그것도 모두 현찰로 산다는 것이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고정 수입원 이외에 다른 수입을 올리고 투자도 할 겸해서 단기 렌트용 주택을 구매하는 것이다.


일주일을 거의 똑같은 패턴으로 살게 되는 미국 생활은 사실 단조롭기 그지없다. 나만해도 '일하고 집에 가고'하는 단순한 패턴을 5일 내내 반복한다. 그렇다면 이런 단조로운 생활 패턴 속에서 어떻게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을까? 아이들이 있는 경우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이들 일정에 맞춰 소화하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낸다. 재미있는 것은 이곳엔 다둥이 가정이 아주 많다. 아이가 둘인 경우도 많지만 3명인 가정도 못지않게 많다. 아이가 많으면 미국 생활은 굉장히 힘들어진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한국처럼 학원에서 왕복하는 차를 운영한다든가, 아이 혼자 버스나 도보로 어딜 다닐 수가 없다. 어디든 부모가 차로 데려다줘야 하기 때문에 일이 보통 많은 게 아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이 부부들은 데이트 나이트를 가진다. 일주일에 한 번 날을 정해 놓고 부부만의 데이트를 즐긴다. 그런 날은 베이비 시터를 고용해 저녁에 아이들을 맡겨놓고 둘만의 저녁 식사나, 영화 데이트, 와인 데이트, 등 둘만의 시간을 가진다. 이것 또한 건강한 가정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라 나는 적극 권장하고 싶다. 아이들에 치여 지쳐가면서 서로에게 불만을 갖고, 대화의 시간을 갖지 못하면 부부 사이에 균열이 오게 되는 것은 누가 봐도 뻔한 이치이다. 부부간에 로맨틱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건강한 부부관계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인이다. 슬기로운 가정생활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이주일에 한 번이라도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면 둘의 사랑을 잘 지켜나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주말에는 주로 가족이 함께 하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고, 쇼핑을 하기도 하고, 짧은 여행, 야구, 풋볼, 농구 경기장 가기, 하이킹, 캠핑, 함께 요리하기 등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지낸다. 때로는 엄마들이 ‘ 걸스 나이트 아웃’ (Grils Night Out)이라는 이름으로 친구들끼리 시간을 갖기도 한다. 나도 여러 번 모임에 참여했었는데, 와이너리를 간다던가, 쇼핑 후 좋은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함께 먹기도 했다. 멋진 호텔에서 하는 와인 시음회에도 함께 간 적이 있고 그냥 멋진 다운타운에서 만나 수다를 떨며 먹고 마시고 하는 적도 있었다. 어떨 때는 한 친구가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트락 디너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벙코 게임이라는 주사위 게임이 있는데 이 게임을 하는 벙코 나잇도 아주 즐거운 모임이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걸스 나잇 아웃에는 남편들이 기꺼이 아이들을 봐주면서 아내들에게 스트레스를 풀 기회를 준다. 그러니 미국에서는 남편이 가장 관대하고 일도 많이 하는 착한 존재이다.


그러나 주말이라고 늘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스포츠를 한다면 스포츠 경기나 연습이 꼭 토요일에 진행된다. 그래서 싸커 맘이라는 말도 있다. 아이들의 스포츠나 기타 아이들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 서포트해 주는 엄마들을 일컫는 말이다. 싸커 맘들은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아이를 데리고 연습이나 경기에 참여한다. 야외용 의자, 책과 모자를 챙겨 가 운동장 옆에서 앉아 기다리거나 경기를 관람한다. 아빠들은 집에서 남은 아이들을 보고 있다. 이것이 전형적인 가정의 토요일 아침 풍경이다. 이런 아침이 지나면 아이들 친구의 생일 파티를 가거나, 그로서리 쇼핑을 가기도 하고, 동물원이나 해변으로 짧은 나들이를 가기도 한다.


이런 휘몰아치는 주중과 주말이 지나면 또 다른 한 주가 시작된다. 이곳은 회식이나 음주가 있는 곳이 아니다. 가정이 있는 직장인들은 일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와야 한다. 가끔씩 출장을 가기도 하지만 가정이 그들의 홈 그라운드이다. 아마도 미혼의 직장인들은 일이 끝나면 저녁 식사도 함께 하고 칵테일이나 맥주를 한잔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미국의 저녁은 싱글인 사람들에겐 잔인할 정도로 외롭다. 모든 기혼자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애인이 있는 사람들은 데이트를 가겠지만 싱글인 사람들은 철저히 혼자 남겨진다. 그렇다고 이곳에 남녀가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은 그다지 없는 것 같다. 능력 있는 싱글 남녀가 살고 있는 곳이지만 서로 만날 수 있는 곳이 없어 외로운 곳, 실리콘 밸리. 그래서인지 이곳엔 데이트 사이트가 꽤 잘 운영되는 것 같다. 최소한 약 10여 년 전에는 그랬다. 실은 나도 남편을 데이트 사이트에서 만났다. 단조로운 나의 생활에서 남자를 만날 방법이라고는 데이트 사이트밖에 없다며 치과의사인 친구가 나를 데이트 사이트에 가입을 시켜 버린 것이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매우 솔직했다. 자신의 페이지에 자신에 대해 가감 없이 솔직하게 표현을 해 놓았고, 앱으로 사진을 포토샵 하는 때가 아니라 사진도 모두 진실했다. 여러 사람을 만나 보았는데 거짓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보았다. 한 번은 친구 메리가 50세 생일이라고 친구를 거의 100명을 초대하는 거대한 생일 파티를 했다. 10명은 앉을 수 있는 둥근 테이블에 아는 친구들과 모르는 사람들과 섞여 앉아 자기소개를 했는데 그 테이블에 앉아있던 다섯 커플 중에 4 커플이 데이트 사이트에서 만나 이루어진 커플이었다. 지금도 데이팅 앱이 잘 이용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경제적 여유와 개방적인 사고 덕에 우리와는 확실히 다르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이는 결혼식을 스페인에서 하기도 하고, 생일 파티를 하와이에서 하기도 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도 내 생일과 남편 생일을 겸해 그리스에서 생일 파티를 했다. 한국 싱가포르, 뉴질랜드, 영국에 각각 흩어져 살고 있는 아이들과 나의 친정 식구들, 그리고 친구가 3주간의 여행에 동참해 주었다. 막상 해보니 각자 경비를 부담하는 여행이라면 그리 큰 부담이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가족단위로 부모가 경비를 모두 부담해야 한다면 해외여행은 쉽지 않은 여행이다. 그렇지만 경제적 여유와 휴가 기간이 많은 넉넉한 실리콘 밸리 사람들은 일상의 단조로움과 스트레스를 달래기 위해 여행을 자주 하는 것 같다. 나의 학생들의 가정들을 보면 시간만 되면 여행을 다니는 것을 본다. 하와이에서 한 달을 지내기도 하고 매년 봄에 하와이나 코스타리카에 가는 가정, 여름휴가는 꼭 시실리로 가는 가정 등등 패턴도 다양하다. 약 두 달 반의 기나긴 여름휴가 동안에는 긴 여행을 두 번은 가는 것 같다. 아이들은 직장인인 부모들 때문에 학교나 사설 기관에서 운영하는 여름 캠프를 매일 다녀야 해서 사실 방학의 개념이 없다. 그러니 여행을 가서 진정한 휴가를 누리고 오는 것이다.


실리콘 사람들은 미혼이건 기혼이건 일을 많이 한다. 이곳은 출퇴근의 개념이라기보다는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하는 것 같다. 프로젝트를 완결시키는 것이 목표이니 일 안 하고 시간만 때우다 퇴근하는 개념이 아니라 책임감 있게 자신의 맡은 일을 확실하게 마무리까지 시켜야 하는 직업이다. 그러니 그 스트레스는 말할 수 없이 많다고 한다. 한 학부모는 구글에서 유튜브에 광고를 도입할 때 그 일을 책임지는 부서장이었다. 유튜브에 광고가 실리면서 사용자들은 매우 귀찮아졌는데, 그것을 맡은 이가 인도인 엄마, 바누였다. 마침 이 일이 시작되자마자 영국에서 광고 관련해서 커다란 사고가 터졌다. 이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했던 바누는 그 당시 너무나도 힘들어했다. 그 이후에도 너무 스트레스가 많다며 빨리 은퇴하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이렇게 힘들게 일을 하니 그만한 보수를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힘든 일과 가정에서 오는 스트레스까지 감당해야 하는 가정을 가진 사람들, 때로는 외로움에 몸을 떨어야 하는 실리콘 밸리 싱글들. 이들은 경제적인 여유를 가지고 보장된 앞날을 생각하며 일을 하고 있지만 여행이나 자신의 취미를 추구하며 일과 여유의 밸런스를 지키며 사는 것 같다. 매년 여름 두  언니의 가족과 이태리로 3주 여행을 떠나는 앤의 가족처럼, 때때로 혼자만의 서핑 여행을 떠나는 아이 셋의 엄마 루시처럼, 남자 친구들과 주말 스키 여행을 다녀오는 세 아이의 아빠 루카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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