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워지스키의 죽음
수잔이 죽었다.
나는 2008년부터 수잔과 그 가족을 알아왔다. 수잔은 내가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한 후 두 번째 학생 가족이었고 아이를 다섯이나 낳은 바람에 최근까지도 늦둥이 막내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지난 2월 셋째 마르코가 죽기 전날 그녀를 만났을 때 수잔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였고, 몸관리도 잘해서 아주 건강하고 핏해 보였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에 대해 근황을 알려주던 그녀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그런데 나와 남편이 매년 알래스카에서 한달살이를 하는 여름, 올해 8월 9일에 랩탑을 브라우징하던 남편이 ‘What???’하며 큰소리를 내는 바람에 깜짝 놀라 바라보게 된 뉴스, 수잔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알고 보니 2년 전 폐암 진단을 받고 그해 말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후 2023년부터 암 치료를 받으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했던 모양이다. 그녀의 미발표된 블로그 내용이 장례식 순서지에 프린트되어 전달되었는데, 암에 걸린 후에도, 아들이 죽은 후에도 현재에 충실하며 현재를 긍정적으로 살고자 하는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그래도 아들이 죽은 슬픔과 충격을 엄마가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마르코의 죽음 이후 몸이 급격히 나빠진 모양이었다. 두서너 달은 괜찮았는데 7월 들어 많이 악화되더니 8월 초에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장례식에 갈 수가 없었다. 장례식도 4일 만에 이루어졌고, 여행 중이라 친하게 지낸 지인에게서 소식을 듣는 수밖에 없었다. 장례식 순서지를 보니 아들, 딸, 남편, 엄마, 동생들, 시누이, 그리고 한때 가족이었던 세르게이가 모두 나와서 스피치를 했다. 아직 9살 막내의 스피치에 하객들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먹먹하다.
수잔을 알고 지낸 지는 벌써 16년이 지났다. 일 년 정도만 제외하고는 나는 늘 그녀의 아이들을 가르쳤다. 수잔이 45세경에 낳은 막내딸까지 합해 수잔은 5명의 아이들이 있다. 대학원에 다니는 큰 아들부터 이제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까지 5명 모두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그녀는 음악을 매우 소중한 재능으로 생각하고 음악 교육에 힘썼다. 첫째 아들은 8살에 나와 피아노를 시작했다. 이 아이가 첫 레슨에서 똘망한 눈을 빛내며 나에게 말했다. “I compose!” 나는 곧바로 그에게 피아노로 작곡한 곡을 쳐보라고 하고는 오선지에 옮겨 적어 주었다. 나는 작은 프레이즈나 코드를 시험해 보고 만들어보는 아이들의 재능을 소중히 여긴다. 그래서 아이들이 작곡에 관심이 있어하면 늘 격려해 주고 연주하게 하고 오선지에 옮겨 적어 준다. 수잔의 큰아들은 첫 작곡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피아노를 그만두고 중학교 때부터는 기타 음악을 작곡해서 친구들과 연주를 하더니 고등학교 때는 약 45분가량의 뮤지컬을 직접 작곡을 했다. 너무나 멋진 일이 아닌가!
그가 이런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게 된 데는 수잔의 놀라운 서포트가 있었다. 아들이 작곡에 뜻이 있음을 알고수잔은 작곡 선생님을 LA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모셔와서 배우게 해 주었다.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치는 것보다는 듣고 치는 것에 더 관심이 많고 잘하는 아이라 내가 재즈 피아니스트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 결국 고등학교 때는 작곡을 하려면 클래식 피아노 스킬이 필요하다며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나는 클래식 피아노 책의 진도도 나가면서 코드로 반주를 하는 법을 알려 주었고, 그는 아주 쿨한 그만의 코드를 양손으로 자유롭게 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을 나에게 쳐주고 더 멋진 조합의 코드를 만들어내는 일을 함께 하기도 했다. 수잔은 늘 아이들 음악교육에 관심을 가졌고, 내가 이메일로 아이들의 피아노 진도나 아이들을 보고 느낀 이야기 해주는 걸 좋아했다. 직접 만날 때는 반드시 레슨 후에 오늘 레슨에서 아이들이 어땠는지 말해달라고 하곤 했다.
수잔이 막내를 임신했을 때의 일이다. 그녀는 만삭이었고 이미 4명의 아이들, 그중 2명은 사춘기, 그리고 세계적인 회사인 유튜브의 CEO인 그녀가 퇴근을 하고 오면 내가 그녀의 4번째 아이를 가르치고 있는 시간이다. 나라면 너무나 힘들어서 침대에 누워야만 할 것 같다. 회사일도 아이들 일도 얼마나 고되고 힘들까? 게다가 40대 중반의 나이로 만삭의 몸이니 정말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하는 동정심이 들었다. 그런데 그녀는 바로 피아노로 와서 딸이 피아노 치는 것을 듣는다. “엄마는 네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싶은데, 여기에 좀 있을게"하며 소파에 앉으며 관심을 표현한다. 아이는 신이 나서 이것도 들어보세요, 이것도 배웠어요 하며 자랑을 하며 피아노를 친다. 나는 이때 수잔이 정말 보통 엄마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늘 아이들에게 최대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걸 알고 있었고, 무분별한 치맛바람이 아니라 아이의 적성과 재능에 알맞은 제대로 된 뒷바라지를 해주는 멋진 엄마인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만삭의 몸으로 회사의 격무와 사춘기 아이들과의 마찰 등을 겪으면서도 퇴근 후 아이의 피아노에 관심을 갖고 치는 것을 지켜보며 행복해하는 모습은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엄마의 모습이다.
구글이 유튜브를 인수한 후, 수잔 워지스키가 유튜브를 맡았다. 소문에 의하면, 그녀가 구글을 설득해 유튜브를 인수하도록 했다고 한다. 분명히 그녀는 그 안에서 큰 비전을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이후로 유튜브는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이는 온전히 수잔의 업적이라 할 수 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부모 중에는 수잔과 함께 구글에서 일한 사람들이 꽤 있는데, 그들 모두 입을 모아 수잔이 참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내가 겪어본 수잔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의 큰 아들은 작곡을 좋아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였다. 그 아들은 하버드 컴퓨터 공학과에 진학했지만, 동시에 같은 도시에 있는 버클리 음대에서 음악 공부도 하길 원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오디션을 함께 준비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오디션에도 동행했다. 그날 수잔은 아들을 데리고 오디션장에 왔다. 오래 기다리진 않았지만, 준비하고 기다리는 동안 수잔이 그곳에서 일하는 학생들과 캐주얼하게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암시조차 하지 않았다. 단지 입시생의 엄마로서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그날 나는 다시금 느꼈다. 이들은 자신이 누리는 유명세에 기대거나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늘 크리스마스 때마다 학생들에게 선물을 한다. 보통 반대인 것이 맞다. 일반적으로 크리스마스는 선생님들이 선물을 받는 때이지만 나는 일 년 동안 나와 함께한 나의 사랑스러운 학생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이때만은 즐겁게 쇼핑을 한다. 어느 크리스마스인지 나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 든 수잔이 말했다. 이 말은 나의 마음속 아주 깊이 선물처럼 보석처럼 박혀있다.
“당신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아름다운 음악을 우리 집에 가져다준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