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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tyle by AK Mar 28. 2023

남편 친구는 롬바우어( Rombauer)

롬바우어에 가면 생기는 일

롬바우어 (Rombauer) 와인이라고 하면 미국에서 와인을 좀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물론 한국에서도 꽤 많이 알려진 와인이다. 1980년대부터 지금의 오너와 친구가 된 스티븐 덕에 우리는 나파에 갈 때마다 롬바우어 와이너리에 간다.


오랫동안 오너의 아들로 살았던 KR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이제 누나와 함께 공식적인 오너이다. 아버지는 공군 파일럿이셨다가 와이너리를 시작하셨고, 그의 고모할머니는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쿠킹북인 Joy of Cooking의 저자 Irma Rombauer 여사시다. 그래서 롬바우어 와이너리의 모토도 Joy of Wine이다.


나파밸리의 북동쪽, 세인트 헬레나 ( Saint Helena) 인근 실버라도 (Silverado)에 자리 잡은 롬바우어 와이너리는 와인으로도 유명하지만 아름다운 정원으로도 아주 이름이 나있다. 자그마한 동산 하나 전체를 소유한 이 와이너리는 테이스팅룸 건물 앞의 살짝 비탈진 동산을 꽃동산으로 바꾸어 놓았다. 굽이 굽이 작은 오솔길을 만들어 놓아서 거닐며 꽃구경도 할 수 있고, 야외 테이블에서 피크닉을 하며 와인을 마실 수도 있다.

 




일 년에도 수없이 들락날락하는 나파에서 가장 자주 가는 와이너리, 롬바우어. 일단 나파에 가면 롬바우어는 반드시 간다. 그 정도로 자주 갔으면 그냥 또 왔나 보다 할 만도 한데 그 많은 다른 손님들을 챙기면서도 KR은 늘 우리를 특별히 챙긴다.


남편과는 40년 지기이지만 나는 남편과 데이트할 때 뉴욕에서 KR을 만났다. 남편이 뉴욕에서 직장을 다닐 때 매해 9월에 열리는 와인보우 (Winebow)라는 와인 엑스포에 매일 참석했다고 한다. 전 세계 모든 와인이 다 참석하는 자리라 롬바우어 부스에서 일하는 척하면서 ( 일은 조금 하고) 두루두루 다니며 마시고 싶은 와인을 다 맛보았다는.




그해 9월, 마침 스티븐과 나는 뉴욕을 여행 중이라 스티븐은 2일 동안 와인보우에서 자기가 늘 하던 방법 ( 롬바우어 직원인 척하며 다른 와인 다 마셔보기)으로 와인 테이스팅을 하고 나는 잠깐 와인 맛만 보고는 나와서 혼자 놀다가 밤에 다시 식사자리에서 만났다.


흐르는 세월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 이후로 벌써 몇 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반겨주고 챙겨주는 KR이 고맙기만 하다. 친구나 가족을 데려갈 때마다 엄청난 양의 테이스팅은 물론이고 직접 동굴 투어를 해주면서 자세히 설명을 해준다. 그의 인성이 그렇다.  


언제 마셔도 맛있는 롬바우어와인. 나는 샤도네이와 다이아몬드 셀렉션 캐버네 소비뇽을 아주 좋아한다. 특별히 롬바우어의 레드 블렌드인 메이뒤쉐 (Le Meilleur du Chai) (--불어 발음이 어려워 나는 그냥 이렇게 부른다)는 우주 최고로 싸랑하는 와인이다. 술이 약한 나로서는 롬바우어에는 마시고 싶은 와인이 너무 많아 조절이 어렵다.


그의 와인 8-10종류가 끝나면, KR은 본인의 개인 소유 와인들을 가지고 나온다. 거의 열댓 병이다. 그리고 모두 명품 와인들이다. 이때쯤에서 나는 그동안 벌써 너무 많이 마셨음을 후회하기 시작한다.


'이 와인들 맛을 다 봐야 할 텐데...'


태생이 원망스럽다. 부모님이 두 분 다 술을 못 드신다.


게다가 우리는 최소 2-3병의 올드 빈티지 와인을 가져가기 때문에 이 귀한 기회를 놓칠세라 이 와인들도 열심히 맛본다. 와이너리를 나설 쯤엔 얼굴이 벌겋게 변해 있다.







때로는 KR의 특별 손님들과 합석 내지는 함께 테이스팅을 하기도 한다. 한 번은 캐나다의 한 금광회사의 CEO와 직원들이 KR과의 친분으로 테이스팅을 따로 하고 있었는데 마침 올드 빈티지 와인을 가져간 우리가 조인했다. 일단 롬바우어의 모든 와인을 섭렵한 뒤 우리가 가져간 와인을 마셨다. 샤토 라피트, 루이 마티니, 찰스 크룩, 워레스 포트와인, 각각 1974, 1968, 1974, 2001년 빈티지이다. 귀한 와인을 마시게 해 주어서 고맙다고 우리에게 저녁까지 사주어서 멋진 저녁을 함께 했다. 거기서 이들이 또 와인을 시켜 마시는 걸 보고 과연 체력이 다르구나 했다. 젊어서 그런지도..  우린 와인 테이스팅 후엔 절대 와인을 더 마시지 못한다.




어느 토요일, 너무 바쁜 날이지만 잠깐 시간이 난다며 테이스팅룸으로 와인을 들고 나왔다. 언제 마셔도 맛있는 롬바우어 와인들. 눈을 반짝이며 나는 또 이 맛있는 와인을 열심히 마신다. 그런데 그날이  와이너리 최대 고객들을 초대해서 저녁을 대접하는 날이란다. 지금 막 2명의 손님이 못 참석한다고 늦은 통보를 받았다며 우리 보고 함께 가자고 한다.


우리는 지하 동굴의 스테인리스 와인 숙성조가 있는 곳에 환상적으로 세팅된 다이닝 테이블로 인도되었다. 그곳에는 일 년 동안 최대로 많이 구입한 사람들 또는 회사 대표들이 모여 있었다. 너무 친근하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와인 메이커가 와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KR도 스피치 하는 가운데 우리는 어부지리로 고메 음식과 고메 와인을 만끽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디너에 제공되었던 4가지의 최고 와인을 나는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다. 아까 전에 시음을 너무 많이 한 거다.





늘 대접받는 느낌이 부담스러워 우리는 되도록이면 좋은 와인을 가져가서 함께 테이스팅을 하고 싶어 한다. 새로운 와인에  관심 있는 KR이 심각하게 테이스팅을 한다. 수십 년 된 프랑스 샤토 5대 와인도 관심 있는 와인이지만 나파에 자리하고 있는 와이너리 오너인 KR은 오래된 나파 빈티지와인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와인이라면 뭐든지 관심을 갖고 마셔보는 것이 스티븐과 많이 닮아있다. 좋은 와인만 탐하는 나와는 달리 이들은 진정한 와인 인수지에스트 (Enthusiast)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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