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파는 와인 테이스팅의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명 와이너리들이 서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고 거의 모든 곳에서 테이스팅이 가능하다 이태리에서는 와이너리에서 와인 테이스팅 하는 곳을 많이 못 보았고, 독일 모젤, 라인가우 지역은 와이너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와인 플라이트로 테이스팅이 가능했다. 프랑스 보르도 경우는 이제 점점 테이스팅을 공개적으로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몇 해전 이태리 토스카나 지방에 묵었을 때는 테이스팅이 가능한 어떤 와이너리도 찾을 수 없었다. 요즘처럼 변화무쌍한 세상에서는 벌써 와인 테이스팅룸을 만들고 실속을 차리는
와이너리가 생겨 났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때 당시에는 단 한번, 어느 아주 작은 마을의 와인 테이스팅 바에서 테이스팅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의 주인은 와이너리 테이스팅 할 곳을 추천해 달라는 우리 질문에 세상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 곳은 없으니 마켓에 가서 그냥 사 마시라고 한다. 독일의 와인 생산지인 프랑켄 지역이나 라인가우, 모젤에 가도 와이너리에 가서 맘 놓고 와인 테이스팅을 할 수 있는 곳은 아주 드물다.
나파는 거의 모든 와이너리에 테이스팅 룸이 있다. 와이너리마다 아주 멋진 건물을 하나씩 세워두고 있는데, 주로 그곳에서 와인 테이스팅을 한다.
캘리포니아 토박이로 대학교 때부터 나파 와이너리를 드나들었던 스티븐에 의하면 예전의 나파 와이너리는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져달라고, 들어와 와인 테이스팅을 해달라고 간청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물론 테이스팅 비용도 무료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2.5시간 거리에 있는 실리콘 밸리와 1.5시간 거리의 샌프란시스코에서 부유한 테크 종사자 젊은이들이 애인, 부부나 가족 또는 여자 친구들끼리 , 혹은 회사의 워크숍으로 오는 아주 인기 있는 장소가 되었다. 그 결과 더 많은 와이너리들이 하이 엔드의 근사한 테이스팅 룸을 만들었고, 예약을 몇 주 전에 해야 하는 곳도 많아 젔으며, 비용도 올랐고, 급기야는 와인 가격까지도 계속 오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올드 스쿨로 무료 와인 테이스팅을 고집했던 빈센트 아로요 (Vincent Arroyo) 와이너리마저 지금은 30불의 비용을 받고 있다. 20불로 올렸다가 최근에 30불로 또다시 올렸다. 그나마 가장 싼 가격이다. 와이너리 투어까지 포함해서 100불을 넘기는 곳도 있다.
나파에는 와이너리가 아주 많다. 그중에 좋은 와이너리, 가볼 만한 와이너리도 무척이나 많다. 그래서 나파 여행을 계획한다면 무턱대고 갈 것이 아니라 어떤 와이너리를 갈 것인지를 먼저 정하는 것이 현명하다. 요즈음은 예약을 해야 하는 와이너리가 많아졌으므로 가기 전에 웹사이트를 먼저 확인하여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와이너리를 정하는 데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와인의 아버지인 로버트 몬다비 (Robert Mondavi) 와이너리나 케이머스 (Caymus) , 오퍼스 원 (Opus One)등의 유명한 와이너리를 선호하는 것을 목격한다. 일생에 한두 번 올 것이라면 물론 그런 유명한 와이너리를 가보고 싶겠지만 나는 그런 와이너리 말고도 볼 만한, 마실만한, 즐길만한 와이너리도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와이너리에 들어가면 주차를 하고 와인 테이스팅 룸을 찾는다. 예약을 했다면 리셉셔니스트에게 예약 시간과 이름을 말하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무조건 사람들 많은 곳을 향해 가야 한다. 바처럼 생긴 기다란 칸막이식 테이블을 두고 안쪽에는 와인 테이스팅을 해주는 직원들이 있을 것이다.
직원 한 사람이 한 그룹이나 두 그룹을 맡아 테이스팅을 해준다. 빈자리가 있어 보이는 곳으로 가서 눈을 마주치면 그분들이 안내를 하며 와인 테이스팅을 시작해 준다.
와인 테이스팅은 대체로 주로 두 가지 메뉴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일반과 프리미엄이다. 일반은 화이트로 시작해서 점차 진한 와인, 비싼 와인으로 해서 약 4-6가지 와인을 준다. 가벼운 와인으로 시작해야 끝까지 진한 와인으로 가는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진한 와인부터 시작하면 가벼운 와인은 맛을 잃는다. 일반 메뉴는 보통 우리가 마켓에서 살 수 있는 와인을 선보이고 한 두 가지 프리미엄 와인을 선보이는 경우가 많다.
프리미엄 와인 메뉴도 물론 화이트에서 점차 진한 와인의 순서로 진행한다. 그런데 이 메뉴는 같은 샤도네이라도 스페셜 셀렉션으로 프리미엄 와인만을 테이스팅 한다.
한잔을 따라 줄 때마다 메뉴표를 보여주고 어떤 와인인지 설명해 준다. 잘 듣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분위기도 좋아진다. 부담 없이 대화를 나누며 하는 테이스팅은 훨씬 편안한 테이스팅이 된다.
프리미엄 와인을 맛보면 너무 맛있어서 꼭 사게 되거나 와인 클럽에 가입하게 되는 폐단이 있다. 어떤 와인 초보자가 그다지 맛있지도 않은 와이너리에 갔다가 그만 와인 클럽에 가입하는 경우도 보았다. 와인 클럽에 가입하고자 하면 그래도 지명도 있고 맛있는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에 가입하기를 권한다. 와인맛은 주관적이어서 와인 테이스팅을 해주는 이의 설명과 안내에 빠져서 테이스팅 하다 보면 그 와이너리가 최고라는 착각을 쉽게 하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눈과 판단이 필요할 때다. 맛 좋기로 유명한 와이너리는 그 이유가 반드시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와인 테이스팅이 끝나면 이상하게 와인을 사고 싶어 진다. 수고해 준 와이너리 직원을 생각하면 꼭 사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여기서 팁을 하나 공개해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데... 그 와이너리의 대표 와인은 마켓에서 판다. 그런데 그 가격이 와이너리보다 훨씬 싸다. 만약 와이너리에서 테이스팅 후에 꼭 와인을 사고 싶다면 마켓에서 팔지 않는 품종이나 프리미엄 와인을 사는 것이 현명하다. 그리고 그 와이너리의 대표 와인은 마켓에 가서 사도록 한다.
테이스팅 후에 와인을 안 산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테이스팅을 즐기지만 정말 사야만 하는 와인이 아니면 절대 사지 않는다. 정말 사야만 하는 와인은 너무나 맛있는 와인인데 마켓에서는 살 수 없는 와인이다. 때때로 와이너리 직원이 특별히 우리를 위해 애써 주는 때가 있다. 얼마 전 우리가 프라이드 (Pride)라는 와이너리에 갔을 때였다. 우리는 예약을 안 하고 그냥 갔는데, 예약이 없다고 쫓아내는 대신 무료 와인 테이스팅을 해주면서 동굴 투어까지 우리 둘만을 위해서 해 주었다. 이런 경우에는 와인을 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마침 Pride 와인은 마켓에서 찾기 힘든 와인이라 한 병 사 가지고 왔다.
잠깐 와인 테이스팅 할 때의 주의점을 짚고 가자면 반드시 음식을 먹고 가야 속병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빈속으로 가면 쉬이 취하거나 많이 못 마신다. 한 와이너리를 다녀와서 속병이 나서 화장실을 드나드는 불상사를 만날 수도 있다. 테이스팅 시에는 아무래도 빠르게 마시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빨리 많은 양의 와인을 마시기 때문에 그 와인을 흡수해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테이스팅 전에 치즈, 빵, 고기 등 든든한 음식을 먹어야 속이 편하고 취하지 않는다. 우리는 테이스팅 전에 무슨 의례처럼 치즈와 크래커 또는 바게트 빵을 꾸역꾸역 먹는다. 빵이 와인을 흡수하기 때문에 제일 추천하고픈 음식이다. 그리고 테이스팅 중간에 물을 달라고 하여 물을 많이 마셔줘야 두통이 생기질 않는다. 이 두 가지 사항은 우리가 와인을 마실 때면 언제든지 적용되는 사항이니 참고가 됐으면 한다.
와인 테이스팅은 즐거운 이벤트이다. 여러 가지 다른 품종의 와인, 다른 와이너리의 와인 등을 직접 마심으로 경험할 수 있다. 투어를 통해 포도원, 제조 과정, 품종의 종류 등 여러 가지 지식을 습득할 수 있고 와인의 빛깔과 향 등을 음미하는 것도 배우게 된다. 또 야외에서 테이스팅을 할 때면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힐링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이벤트의 데스티네이션으로 나파만큼 좋은 곳은 없다. 캘리포니아의 자연과 그에 어울리는 와이너리, 먹거리, 볼거리, 할거리 등 우리가 즐기고 음미하도록 한껏 준비해 놓고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