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니, 반지가 빛난 순간
제 아이들은 미국에서 자랐습니다 아주 어린 나이에 와서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육까지 모두 미국에서 받았어요.. 둘째 아이만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한국으로 가야 해서 편입하여 대학을 마쳤지만, 그래도 친구들은 거의 미국에서 함께 자란 아이들이지요.
막내딸이 남자친구와 그리스에 와서 크레테섬에서 함께 여행을 할 때, 제가 권했어요. 다음 섬인 낙소스로 떠나기 전에 2박 3일 동안 산토리니에 여행을 가라고요. 나머지 가족들은 낙소스섬 이후에 산토리니에 가기로 했지만 막내딸과 줄리안은 낙소스섬에서 이틀 지내고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가야 하는 여정이었거든요. 그래서 짧은 일정으로 산토리니로 여행을 간 막내딸과 줄리안을 이틀 후 낙소스섬으로 가는 페리에서 만났습니다.
페리의 대합실에서 만난 그 아이들은 활짝 핀 얼굴로 빙빙 돌며 춤을 추며 우리에게로 다가왔어요. 그러더니 큼직한 다이아반지가 끼워진 왼손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였어요. 우리 모두는 환호성을 질렀죠. 딸아이가 프러포즈를 받은 거였어요.
전에 막내딸아이가 자기 친구들이 그리스에서 프러포즈를 받았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내심 이번에 기대를 했었어요. 혹시? 아니나 다를까,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줄리안, 대견하고 예쁩니다. 다행히 제가 산토리니 여행을 제안했기 때문에 둘만의 더 로맨틱한 프러포즈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줄리안이 급하게 사진사를 고용하고, 멋진 호텔과 레스토랑도 예약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평생 못 잊을 프러포즈 사진이 탄생했네요.
급히 섭외했는데도 산토리니 웨딩과 프러포즈를 전문으로 하는 사진사였던 모양이에요. 사진들이 너무나 아름답고, 여행객은 잘 모를 법하지만, 산토리니다운 배경을 찾아내 무대를 삼아 효과를 극대화한 것 같아요. 제가 장난스럽게 물었지요. ‘혹시 기대하고 온 거 아니니?’ 딸아이는 크게 웃으며 ‘물론이지, 엄마. 나한테 하얀 드레스 가져오라고 하고, 자기도 양복을 챙기더라고요.’라며 고백했어요. 기대는 했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으로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는 말에 저 역시 가슴이 벅찼습니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기쁘면 함께 기쁜 것 맞죠? 여행 내내 입이 귀에 걸린 두 아이들을 보며 우리 온 가족이 모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답니다.
나중에 줄리안이 제게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판을 다 깔아줘서 자기가 너무 쉽게 할 수 있었다고요. 줄리안은 미국인인데, 싱가포르 지사에 파견된 뒤 미국계 회사인 세일즈 포스 (Salesforce)에 근무하는 딸과 만나서 연애를 시작한 것이에요. 둘이 아주 잘 맞아요. 텐션도 강하고, 좋아하는 것도 같고, 좀 급하고 극강 J인 딸을 아주 잘 누그러트리는 착한고 반듯한 사람이라 제가 아주 좋아합니다. 장모를 싫어하는 미국의 풍습을 깨고 이쁨 받는 장모가 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