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 Wine
포트는 정열의 맛이다. 뜨거운 목 넘김에는 포르투갈 포도의 강렬함과 열정적인 브랜디가 진하게 녹아들어 있다. 처음으로 포트와인을 접한 것은 몬트레이의 한 피아노 바에서였다. 포트와인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나는 그만 첫 모금에 반해 버렸다.
스티븐이 포트를 처음 소개해 준 곳은 저녁식사 후 산책하던 캐너리 로 ( Cannery Row)에서 '이 근처에 피아노 바가 있는데...' 라며 찾아 나선 곳이었다. 스티븐의 덴마크 친구인 칼스턴이 꼭 가보라고 했다고 하는데, 막상 도착했을 때는 누구도 피아노를 치지는 않았던 기억이 난다. 저녁 식후라 디저트 와인을 마시자고 시킨 포트 와인. 첫맛은 너무나 강렬했고 얼떨떨했다. 뜨거운 맛과 진한 맛, 단 맛과 알코올이 한꺼번에 입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목 넘김이 너무나도 뜨거웠다. 포트와인, 어떤 와인인 걸까? 궁금해졌다.
포트와인은 대서양을 면해있는 포르투갈의 오포르토 (Oporto)라는 항구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이다. 샴페인과 마찬가지로 지역 이름을 와인 이름으로 명명한 경우이다. 나는 아직 못 가본 곳인데 스페인과 프랑스 남부를 여행할 때 꼭 함께 가보고 싶은 곳이다. 스티븐은 아주 예전에 다녀왔다고 하면서 나를 꼭 데려가고 싶어 한다. 지인들이 다녀와서 꼭 가보라고 추천하는 곳이기도 해서 몹시 가보고 싶어 진다. 한 친구는 강을 따라 7박 8일 크루즈를 했는데 가장 멋진 여행이었다며 리버 크루즈를 강추하기도 했다.
19 세기 중엽 포르투갈에서 와인을 영국으로 배편으로 보내던 시절, 와인이 습하고 더운 배에서 오랫동안 보관되는 바람에 와인 장사를 망치기 일쑤였다고 한다. 하여, 변질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브랜디를 20% 섞어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 포트 와인의 시초가 되었다. 이 브랜디를 품은 짙은 루비 빛깔의 와인은 영국과 프랑스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생산이 시작되었고 지금도 포트와인은 전 세계 와인인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맛이 독특해서 단 맛과 브랜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포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 와인도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와인이다. 브랜디의 영향으로 알코올 도수도 일반 와인보다 높은 평균 18도이다. 높게는 20도 인 것도 있다.
포트 와인의 한 가지 특성은 시간을 두고 마시면 드라마틱하게 부드러워지는 맛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좁은 잔에 부어 디저트로 한 두 모금만 마시라고 하지만 우리는 아주 넓은 잔에 부어 공기와 접촉을 늘리면서 변화해 가는 맛을 상당히 즐긴다. 처음에 스티븐이 포트를 소개해 주었을 때 10분 뒤에, 20분 뒤에 마실 때마다 계속 부드러워지는 맛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난다. 맛은 부드러워지나 목 넘김은 여전히 뜨겁고 달콤하다.
또 하나의 특징은 맛이 진하고 브랜디가 섞여서 인지 한번 오픈을 해도 거의 한 달 동안 마셔도 맛이 좋다. 물론 포트 와인의 품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가 마시는 포트는 코르크만 다시 꽂은 채로 몇 주를 주방 한 귀퉁이에 두어도 맛이 변하질 않는다. 그러니 이 와인도 캐버네 소비뇽처럼 오래 보관해도 좋은 와인이다. 손님이 오시면 화이트, 레드와 함께 포트와인도 개봉할 때가 있다. 이 포트와인은 너무 달기 때문에 다른 와인을 다 마신 후 마지막에 마신다. 이 와인을 먼저 마시면 일반 와인으로 다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포트 와인에도 종류가 있어 막상 고르려면 쉽지 않다. 먼저
루비 ( Ruby), 토니 (Tawny), 빈티지 ( Vintage), LBV ( Late Bottled Vintage)가 있는데 포트 와인의 초보자라면 루비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되도록이면 LBV를 마시는 것이 포트 와인의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보통 LBV을 부담 없이 마시지만 가끔은 그동안 스티븐이 소장해 온 반티지 포트도 마신다.
빈티지 포트는 유난히 포도 농사가 잘 된 해에만 생산하는 포트로 연도가 쓰여 있으며 최고급 포트이다.
그다음이 LBV로 맛도 좋고 가격도 좋은 가성비 좋은 포트 와인이다.
루비와 토니는 숙성조의 크기와 재질에 따라 불리는 이름으로 루비는 초대형 스테인리스 숙성조에서. 토니는 아주 작은 오크 배럴에서 숙성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청포도로 만드는 화이트 포트도 있다. 포트 와인은 숙성 연도도 무척 중요한데 꽤나 복잡해서 다 기억하기가 어렵다. 다만, 어떤 포트 와인들은 50년 100년씩이나 숙성시킬 수 있다고 하니 그렇게 오래 숙성된 포트는 도대체 어떤 맛일지 궁금해진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마셨던 포트와인은 1994년 빈티지 캘럼 (Calem)이었다. 이 와인을 한 모금 마실 때마다 gorgeous! 를 남발했었다. 그렇다고 내가 쉬운 여자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내가 Gorgeous라고 감격하는 와인은 루이 마티니 2007과 Calem 1994 빈티지뿐이다. 이런 고혹스러운 맛을 가진 포트 와인의 탄생 이야기는 참 영감적이다. 맛이 변해서 팔 수 없게 되어버린 수백 병의 와인과 1800년대 포르투갈 상인들과 뱃사람들의 망연자실했을 모습이 떠오른다. 와인을 변질에서 구하기 위해 브랜디를 섞은 것은 신의 한 수가 아닌가? 그 덕에 우리 후손들이 일반 와인과는 너무도 다른 와인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 매력 터지는 포트와인을 이번 주말에는 마셔봐야겠다. 그 뜨거움과 달콤함을 다시 맛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