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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tyle by AK Apr 28. 2021

스티븐 와인 입문기

와인을 섭렵한 미국인 남편과 와인 맛 좀 아는 한국인 아내의 와인 이야기

스티븐은 내 남편의 이름이다.

스티븐의 와인 입문 이야기는 우리 부부의 와인 이야기를 여는 첫 글인 셈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어떤 경위로 와인에 입문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지만 일단 여기서는 스티븐의 이야기로 문을 열어볼까 한다.


스티븐은 의도치 않게도 좀 어릴 때 와인에 입문했다. 부모님이나 친척 때문인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겠지만 실은 아주 우연히 와인을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전혀 술을 안 드시고 외할아버지가 드시던 위스키 외에는 술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맥주조차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어린 시절의 그는 모든 걸 건너뛰고 곧장 와인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스티븐이 대학 2학년 때 힘께 프로젝트를 하던 4학년 선배 누나와 저녁 시간이 되어 가까운 레스토랑에 갔다. 미국에 와 본 분들은 데니스라는 분위기 없고 좀 저렴한 레스토랑을 아실 거라 믿는다. 스티븐이 대학 선배와 함께 간 곳은 데니스는 아니지만 그런 비슷한 레스토랑이었다고 한다.


여러 사람들과 와인을 마시다 보면 간혹스티븐에게 어떻게 와인을 시작했는지 묻는 사람들이 있다. . 그때마다 스티븐은 이 이야기를 해 주는데, 이때 꼭 덧 붙이는 말이 있다. 그 여자 선배와는 데이트가 아니었다는 둥, 사귀지 않았다는 둥, 그녀에게 남자 친구가 있었다는 둥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계속 과한 부정을 한다. 뭔가 킁킁... 냄새가 나는데.. 너무 오래된 일이라 나는 아무 관심이 없다는....


어쨌든 자리에 앉자 웨이터 아저씨가 오셔서 너희 둘이 오늘 와인 마실 거니?라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 당시 스티븐 나이 18살. 아마 노안이었지 싶다. 하하..  하긴 예전엔 지금보다는 뭐든 느슨했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치자.  나이를 매우 철저하게 검사하는 현재와는 사뭇 달랐던 모양이다.


원래 침착하고 뭐든 여지를 두는 성격인 스티븐이 단번에 안 마신다고 했을 리가 없다. 잠깐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는 테이블에 놓인 플라스틱 광고판을 보았는데, 그때 마침 거기 있던 광고가 루이 마티니 (Louis Martini) 피노 누아와인 이었다고 한다.  


여기다!  바로 이 장면에서 스티븐은 자신의 인생 와인을 발견했다. 와인이라고는 맛도 보지 못했던 그가 테이블 위의 광고판 와인, 루이 마티니를 주문해 버린 거다. 그리고는 한 모금 쭈욱 맛을 보았는데..... 유레카! 신대륙 발견에 견줄만한 인생 취미이자 특기를 발견했다는 그 장면.


그래서 그때부터 그는 와인을 사모으기 시작한다.


집안이 넉넉하지 못했던 스티븐은 자기 용돈을 벌기 위해 고교 때부터 알바를 안 한 게 없었다고 한다. 주유소, 우체국, 통조림 공장 서기 등등, 대학 때 그렇게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루이 마티니 와인을 케이스로 사는 바람에 한 달 내내 참치캔만 먹은 적도 있다는 말에 나는 한참이나 웃었다. 그 이후로 한참 동안 참치캔을 못 먹었다고 하니 짠한데 우습다.


그렇게 돈만 모이면 사서 모아둔 루이 마티니 와인이 아직도 우리 집 와인 냉장고에 수십 병이 있다. 1960년대, 1970년대 와인들이다.


그 옛날의 나파 와이너리는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고 한다. 지금은 와이너리마다 와인 테이스팅 룸을 멋지고 화려하게 꾸며놓았다. 와인도 보통 등급의 와인 이외에 프리미엄 와인을 생산해서 와이너리에서만 맛볼 수 있고 살 수 있도록 되어있다. 와인 테이스팅을 하려면 예약을 해야 하고 비용은 30불에서 100불이 넘는 곳까지 있다.


그 당시에는 이제 와이너리가 시작되고, 나파 와인을 알려야 하는 때라 호객행위까지는 아니더라도, '들어와서 우리 와인 맛 좀 봐주세요' 이런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니 스티븐은 지금의 극도의 상업적인 와이너리 행태를 몹시도 안타깝고 못 마땅하게 여긴다.  그때 시작된 와이너리 중에, 프랭크 패밀리, 찰스 크룩, 루이 마티니 등 아직도 유명하고 훌륭한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들이 꽤 있다.


한 번은 직접 가서 와안을 사오고 싶었는데 마침 시험기간이라 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어떤 방법이 있는가하고 스티븐이 루이 마티니 와이너리로 전화를 했었다. 한동안 전화받은 분과 상의를 했는데 그분이 그럼 자기가 그레이 하운드 버스로 보낼 테니, 정류장에 가서 픽업을 하라고 하더란다. 그레이 하운드는 말하자면 시외버스 같은 개념이다. 그래서 고맙다고, 잘 됐다고, 그러면 계산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 당시에는 크레딧 카드가 있을 때가 아니고, 주로 수표나 현찰을 사용하던 때였으니 지불 방법이 또 큰 변수였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그 여자분이 그러면 와인 케이스를 받고 나서 수표를 써서 우편으로 보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얼마나 신용 사회였는지 짐작이 가는 이야기 아닌가?


또 이 시점에서 스티븐이 몇 살이기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이야기가 나오는가 싶을 듯. 나이는 비밀이지만.... 한 오백살 정도 되었다고 생각하면 무난할 듯. 아무리 믿는 사회였다고 해도 스티븐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너무 스스럼없이 사람을 믿어주는 모습이 부러운 시절이다.


바로 그 와인 값 지불하느라 한 달 동안 참치캔만 먹었다는 웃픈 그 와인 이야기, 스티븐의 와인 입문기이다.


6,70년대 루이 마티니


현재 루이 마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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