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때문에 그를 볼 마음이 생겼다.
처음 그를 데이트앱에서 발견할 무렵 나는 와인에 막 입문한 때였고, 마침 내가 레드와인을, 그중에서도 캐버네 소비뇽을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신기해하며 흥분하고 있던 때였다. 또 하나는 때마침 뉴욕여행에서 바로 돌아온 때이기도 했다. 와인을 좋아하고 뉴욕에서 일을 하다 얼마 전 캘리포니아로 돌아왔다는 그의 프로필에 끌려 초혼인 남자와는 절대 시작도 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룰을 깨고 나는 그와 데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달변에 투머치 토커 (이것은 나중에 알게 된 일이다)인 그는 와인에 대한 자신의 박식함을 전혀 내색하지 않으면서도 와인의 맛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게 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데이트 초반에 몬터레이로 여행을 갔을 때, 친구가 알려주었다는 피아노 바를 찾아가 포트 와인을 시켜 맛보게 해 주었다. 나는 그 당시 포트 와인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때였는데, 브랜디향이 진하게 휘감으며 깊은 와인맛을 내는 포트와인을 한 모금 맛보고는 이건 뭐지? 하는 포트에 대한 호기심이 뭉게뭉게 피어나던 기억이 난다. 크고 둥근 잔에 담긴 포트 와인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부드러워졌는데 혀끝에 다크 초콜릿향이 진하게 느껴지는 시점에서 나는 그대로 포트와인의 매력에 퐁당 빠져버렸다.
사실 첫 데이트는 와인바에서였다. 저녁시간에 만났는데 저녁도 사주지 않고 와인과 안주만 시켜놓고는 문 닫을 때까지 네다섯 시간을 줄곧 이야기만 했다. 대체 이 사람은 왜 저녁도 안 사주지? 하며 첫인상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말은 잘 통해서 수시간을 재미나게 대화는 나누었으므로 그리 나쁘지는 않은 만남이었다. 특별히 우리는 둘 다 캐버네 소비뇽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도 우리는 아주 운이 좋았던 거다. 부부나 연인이 서로 다른 와인 취향이면 사실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같은 와인을 즐기며 이에 대해서 대화하고, 맛을 발견해 가는 비슷한 입맛은 와인 애호가에게는 아주 축복스러운 일이다. 와인 입맛이 비슷하면 기호도 비슷한 모양이다. 아니면 우리 부부만의 이야기일까? 우리는 음식 입맛도 비슷하고 그래서 기호 식품도 비슷하다.
여행에 진심이고 특별히 죽이 잘 맞는 우리는 여행할 때마다 와인을 잊지 않고 챙긴다. 와인은 낭만 넘치던 오레곤의 비치하우스, 하와이의 럭셔리 콘도미니엄, 유럽의 작은 마을에도 함께 했다. 여느 부부들처럼 일상을 살아가면서 힘든 일도 도전되는 일도 겪어내고 있지만 늘 우리 곁에서 행복한 한 모금을 선사하는 건 다름 아닌 와인이다. 음식과 완벽한 페어링을 이루어 내며 근사한 와인맛이 극대화될 때의 짜릿함과 행복감은 그저 취해서 느끼는 흥분된 취기와는 비교불가이다.
사랑한다면,
진하고 깊은 와인, 캐버네 소비뇽처럼.
세월이 지나면서 부드럽게 더 매력적으로 변해가는 캐버네 소비뇽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