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지네언니 Jan 19. 2023

20230113-19

잘 먹고 산다, 노트북 구입, 또 뜨개질, 먹고 살기의 고달픔


엥겔지수가 높으면 가난하다는 증거라지. 그게 나예요. 그래도 생일 때 받은 기프티콘 덕분에 맛있는 거 실컷 먹고 있다. 운동 쌤이 보면 기겁할 라인업이지만 후회는 내일 하는 걸로.


꽤 오래 맥북으로 버텨오다가 결국은 업무문서 작성의 어려움 때문에 윈도우용 노트북을 구매했다. 당연히 새 거 살 예산은 안되니 중고로 찾아봤다. 당근을 얼마나 돌았는지 정말 한 이틀 눈 빠질 뻔했다. 스펙 이런 거 몰라서 커뮤니티에 검색하고 질문글도 올려보다 좋은 가격에 씽크패드 제품이 나와서 하룻밤 고민하고 질렀다. 가난한 주제에 눈은 높아서 중고라도 괜찮은 브랜드 제품을 찾았는데 딱 마음에 든다. 실은 그전부터 디자인이 너무 맘에 들어서 신품으로 몇 번이나 견적을 내봤던 터였다. 리뷰 검색도 꽤 했는데 대부분의 이용자들이 극찬을 해서 매니아 층으로 치자면 맥북 못지않다고 느꼈다. 남들은 요즘 하얗고 이쁜 거 많은데 왜 그런 시커먼 걸 찾냐고 하는데 나한테는 이 디자인이 맥북만큼이나 감성적이었다. 성능에 대해서도 입을 모아 좋다고 하는데 솔직히 문서 작성이랑 글쓰기 용으로만 쓰는 나한테는 성능이 좋아봤자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냥 허세지 뭐. 그래도 노트북답지 않게 키감이 좋다. 판매자분이 쫀득하다고 하셨는데 써보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나처럼 타자칠 일 많은 사람한테는 그게 최고의 성능이지 뭐.


벌써 삼 주 째 뜨개질 삼매경인 걸 보니 요즘 쌓인 게 많은가 보다. 주말 내내 스크런치를 네 개 뜨고 곰돌이 키링도 만들었다. 손가락 아프고 날개뼈 빠질 것 같지만 막상 결과물이 너무 귀여워서 혼자 만족 중. 당근에서 팔아볼까. 누가 사갈진 모르지만 소소하게 커피값 정도는 벌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근데 기껏 교정한 거북목이 다시 돌아올 모양.

요즘은 뭘 해도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생각하는 걸 보니 내가 돈이 많이 고프긴 고픈 모양이다. 근데 능력은 모자라고 몸은 게으르니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그렇게 자꾸 자기의 못남을 확인하느라 연초부터 바닥 파는 중. 일이 많지 않으니 그런 생각이 더 드는 거 같아서 파트잡을 하나 더 구하려고 지원을 넣어보는 중인데 막상 면접 보러 오라고 하니 또 불안감이 도진다.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사람 만나는 게 울렁거리다니 나도 아직 한참 멀었다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면 또 머리가 복잡하고 그래서 뜨개질을 하고 무한반복 중이다. 근데 불안한 거 그런 거 다 필요 없다. 돈이 최고다. 요즘 잠들기 전에 밤마다 내 뺨 내가 때리면서 정신차려!! 삼창 후 눈을 감는다. 정신 차리자. 비혼인의 삶에 자신을 책임져 줄 건 건강과 돈밖에 없다. 범죄만 아니라면 돈 버는 일에 몸 아끼지 말자. 스스로에게 부끄럽지만 않으면 뭘 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사는 거다.

-까지 썼네. 운동하고 맥주 한 잔 했더니 야밤 감성이 돋았었나 봄. 말이 격해서 그렇지 뭐 틀린 말은 아니라 손발 오그라들지만 그냥 둬야지. (참고로 면접은 붙었다.)


먹고 살기의 고달픔이란 말을 언제부터 공감하게 됐을까. 남들처럼 매점 못 가는 고등학교 때였나, 운동화 밑창 본드 바르던 대학교 때였나. 근데 그때도 딱히 알바를 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안 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그지같이 살지 뭐. 학비, 방값 주는 부모로 만족하자. 그랬었다. 대부분의 부자들은 여기서 나는 만족 못해!!! 더 잘 살 거야!!!! 라며 악착같이 돈 벌었을 텐데 나는 애초에 그런 깜이 아니었던 거지. 그때는 그냥저냥 살다 죽겠지 했는데 지금에 와 보니 죽을 날이 너무 많이 남은 거 같아. 그때 좀 열심히 살아서 뭐라도 모아뒀으면 지금 덜 고생했을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늦은 거라지만 더 늦을 수야 없지. 지금부터 번다고 으리으리한 부자가 되지야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 애 밥 먹일 돈 벌고 나중에 늙어서 병원 갈 돈 정도는 마련해 둬야지. 그러자면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집 청소 깨끗하게 해 놓고 비장하게 앉아서 성공한 이들의 인생을 탐독하며 본받아야 할 텐데 현실은 아이 추워- 하면서 우리 애기 껴안고 뒹굴거리고 있다.

야, 정신 차려.

매거진의 이전글 20230106-1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