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지네언니 Jan 12. 2023

20230106-12

필라테스, 목도리 완성, 덕질, 책 대여


필라테스 약 2년 차. 여전히 못하지만 열심히 다닌다. 이거라도 안 하면 진짜 죽을 것 같아서. 수업 갈 때마다 선생님이랑 못해요, 할 수 있어요 반복 중. 다음번 등록은 안 해야지 하면서도 매달 월급에서 운동비를 빼놓는 걸 보면 꽤나 즐기고 있는 모양이다. 무엇보다 몸으로 느껴지는 효과가 있어서 그만두기가 더 어렵다. 운동 후 거북목이 엄청 좋아져서 턱관절 통증이 줄었고 키도 좀 컸다. 그리고 신체적 효과만큼이나 정신적인 효과도 매우 뛰어나다. 분노는 술이나 쇼핑으로 푸는 것보다 근육통으로 푸는 게 훨씬 낫더라. (운동을 핑계로 운동복 쇼핑이 늘어난 건 안비밀이다.) 물론 선생님은 매번 나 때문에 죽을 맛이겠지만. 선생님께 심심한 사과의 마음을 전합니다 항상.

몸풀기는 안 하고 딴 짓 중

목도리 완성. 마무리하고 세탁까지 했는데 몇 줄 차이 나서 풀고 다시 떴다. 그랬더니 마지막줄 울퉁불퉁 난리 났다. 내가 할 건데 뭐 어때. 핸드메이드의 매력임. 가볍고 따뜻하고 얼굴 안 칙칙하고. 나이 드니까 자꾸 얼굴 환해 보이는 색을 찾게 된다. 늙었네 늙었어. 별 수 없지 철이라도 늦게 드는 수밖에.

뜨개질을 배운 건 할머니로부터다. 어릴 적 내 기억 속의 할머니는 항상 겨울이면 뜨개질감을 안고 계셨다. 할머니가 떠 준 와인색 카디건을 입은 사진을 보면 지금 보기에도 참 솜씨가 좋으셨구나 싶다. 아주 어릴 때는 옆에서 털실 뭉치나 굴리며 놀았었는데 언제부턴지 나도 그걸 해 보고 싶었나 보다. 할머니가 뜨던 걸 받아서 딱 한 줄 떠봤던 게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처음으로 혼자 만든 목도리는 지금 생각해 보면 수세미인지 목도리인지도 구별 안 갈 만큼 형편없었지만 그걸 완성했을 때의 뿌듯함은 아직도 기억난다. 그리고 그걸 보며 손끝 야무지다고 칭찬해 주시던 할머니의 목소리도.


1세대 케이팝 빠순이 출신인 내가 이 나이에 새로 잡은 아이돌. 케이팝 접고 클래식만 줄창 듣던 내가 방탄 붐을 타고 타고 알게 된 팀이었다. 그냥 요즘 애기들은 정말 외계인급으로 잘 생겼구나 하고 무심하던 내가 어느새 훤히 동이 틀 때까지 영상을 보고 있더라. 그래서 이 나이에 팬클럽 가입을 하고 앨범을 사고 엠디 상품 오픈 시간에 맞춰 대기를 탄다. 콘서트 티켓팅을 위해 수업 타임도 바꿨다. 그야말로 옆에서 보기엔 다 늙어서 철없는 짓 중인 것이다. 근데 너무 즐겁다. 세상에 이렇게 인생이 재밌을 수가. 클래식 판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쏟아지는 떡밥의 은혜에 매일매일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겠다. 그 옛날 나우누리 시절 덕질하던 노친네에게 고화질 사진과 유튜브 자컨은 천국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아무리 잘생겨도 본업 못하면 거들떠도 안 봤을 텐데 본업 천재다. 얼굴도 무대도 팬서비스도 요즘 아이돌들 다 훌륭하다고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 새끼들이 제일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예전에는 오빠들이랑 결혼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저런 아들을 낳기에도 늦은 나이라 그저 증손주 재롱 보는 할머니의 마음으로 무한 애정을 퍼붓는 중이다. 이번 앨범 대박 나자 우리 애기들. 할미는 너네 때문에 노비짓도 때려치우지 못하고 열심히 총알 장전 중이에요.

우리 어린이들 이번 활동도 힘내봅시다

한 달에 두 번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린다. 읽고 싶은 책을 다 사기에는 지갑과 공간의 압박이 있고 주로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기에 안 읽은 책을 덥석 사기에는 실패의 위험성도 있고. 그러다 보니 인기 있는 신간은 빌리기가 어렵고 유행이 좀 지난 책들이 주로 대여 목록에 올라간다. 근데 오히려 그게 좋다. 유행이 식은 후에도 계속 추천으로 올라오는 책들은 그만큼 사람들에게 읽혀 믿음을 준 책이라는 거니까. 거품 낀 책을 걸러내는 효과가 있달까. 나름 깔끔쟁이라 남들 손댄 책이 찝찝하기도 했는데 요즘엔 도서살균기가 비치되어 있어 매우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나를 분노하게 하는 것이 있으니

'책에 줄 긋기' 

아니- 너네 책이 아니라 다 같이 읽는 책이라고요. 줄 긋고 메모하고 싶으면 돈 주고 책을 사 보세요.

특히 자기계발서나 실용서는 더 하다. 다들 성공하고 싶어서 자기계발서 읽으면서 기본적인 공중도덕도 안 지킨다고? 잘도 성공하시겠어요. 그것도 앞부분에만 새카맣게 줄 그어진 걸로 봐서는 끝까지 읽지도 못한 것 같은데, 네네 나중에 꼬옥 부자 되세요.

막상 별 중요한 데도 아닌데 줄 그어놓은 게 더 웃김

그래서 도서관 책 읽을 때 꼭 필요한 게 지우개이다. 남들이 보면 그냥 읽고 말라고 하겠지만 성격상 그런 걸 두고 보질 못한다. 지우개 들고 박박 지워가면서 읽어야 속이 시원한 거다. 나는 내 책에도 줄 긋기 싫어서 태그를 이용하거나 포스트잇에 옮겨 적는데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 뇌 상태나 교육 수준이 매우 궁금하다. 제발 초등학교에서 수학 영어 가르치는 데만 힘쓰지 말고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 법, 도서관 이용하는 법, 지하철 줄 서는 법 이런 걸 가르쳤으면 좋겠다.


아침 출근길에 본 귀여운 버스. 저 버스 몇 번인지 타보고 싶네. 귀여운 기사님 취향 덕에 지옥길에 조금 웃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21230-2023010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