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지네언니 Feb 02. 2023

230127-0202

나의 고통의 시작은 결국 나부터이다.

지금의 불행이나 고통의 원인을 남으로부터 찾으려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늘 돈에 쪼들리는 것도, 언제 문 닫을 지 모르는 영세한 직장에 다니는 것도 모두 남의 탓 같았다. 부자 부모가 없어서, 남들처럼 사교육 한 번 못 받아봐서, 지잡대를 나와서, 부모의 지원 없이 사회 생활을 시작해서, 그래서 빚 갚느라 허덕이는 삶을 사느라 이 나이가 되도록 집 한 채가 없는 것이 모두 다 남의 탓이었다. 그렇게 꼬리를 물다보면 급기야는 나를 태어나게 한 운명을 저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이어지면 당연히 삶의 의지는 떨어진다. 신선하고 따뜻한 음식이 아닌 냉동식품을 돌려 먹고 설거지가 귀찭아 대충 일회용 수저와 식기를 사용한다. 당연히 건강이 나빠지고 컨디션은 더 바닥을 친다. 그러다 어느 날 밤은 죽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죽지 못한다. 나는 그럴 용기가 없는 인간이다.

그러다 어느 날 깨달았다. 내가 피하고 싶었던 진실을 마주했다. 내 고통의 시작은 나부터였다는 것. 쪽팔리고 고 자존심 상해서 절대 마주보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다. 가난도 낮은 성적도 불안정한 직장도 결국은 다 내가 만든 거였다. 많이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은 분명 있다. 그들이 나보다 더 쉽고 높은 길을 간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나보다 더 가난한 부모를 가진 사람도 있다. 나와 같은 대학을 졸업한 동기들도 있다. 나처럼 듣보인 직장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모두 나처럼 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나는 그냥 잘못 살았던 것 뿐이다. 가난한 부모 밑에서 자랐으면서도 일찍부터 경제 관념을 익힐 생각을 못했고, 출신 대학의 한계를 넘기 위해 밤새워 공부한 친구들처럼 살지 않았다. 분명 나처럼 작은 학원의 계약직 강사로 시작했던 사람이었는데 어느새 원장이 되어 자기 학원을 운영하는 동료도 있다. 나는 그냥 그들처럼 열심히 살지 않은 것 뿐이다. 열심히 사는 것보다 남탓 하는 게 더 편하니까. 

백석의 시를 읽으며 펑펑 울었던 적이 있다.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내 뜻이며 힘으로는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것을 생각하고' 라는 그의 시구는 마치 나를 저격하고 쓴 시마냥 가슴에 와 박혀서 한동안 그렇게 울어버렸다. 나 혼자 사는 것도 토할 만큼 지독한 세상, 내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 그 절망감. 그러나 백석의 시가 지금까지 사랑받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니다. 그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떠올렸다. 자기도 그처럼 살아내리라 다짐하며.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내 선택으로 시작한 삶은 아니지만 도망갈 수 없다. 도망쳐 간 곳은 천국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나는 도망칠 용기도 가지지 못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살아내는 것 말고 나에게 남은 길은 없다. 남탓도 내탓도 하지 않겠다. 그렇다고 남의 덕을 볼 생각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 지나간 인생은 부끄럽지만 내탓을 해봤자 다시 무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생은 항상 오늘부터 시작이다. 내일 당장 어떻게 될 지 몰라도 일단은 나는 오늘을 살겠다. 아깝지 않게 쪽팔리지 않게.


매거진의 이전글 20230120-2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