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 대파티, 홍길동 되기, 꽃 폈다
바쁘면 느는 것은? 배민 주문기록.
아주 그냥 짜고 달고 맵고의 무한 루프다. 도시락 쌀 시간이 없어서 점심도 계속 사 먹으니 아무리 양치해도 혀에서 MSG 맛이 남. 주말이라도 해 먹으면 좋은데 냉장고 안에는 새로운 생명이 자라는 중. 슴슴한 시래기 된장국에 밥 한 공기 말아서 김치 올려 먹고 싶다. 감기 기운 있을 때마다 할머니가 끓여주던 빨간 소고기국 먹고 싶다. 경상도식으로 고사리랑 토란 넣고 찌인하게 끓인 소고기 뭇국. 밥도 즉석밥 말고 압력솥에서 갓 푼 하얀 쌀밥.
...이러고 있으니 무슨 이밥에 고깃국 찾는 윗동네 주민같네. 사람이 힘들면 원초적 욕구에 민감해진다는 말이 맞나봐. 그래도 굶고 다녀봤자 내 손해니까 뭐라도 꼭 챙겨 먹는다. 그리고 기왕 건강하게 못 먹는 거 대신 그날 제일 먹고 싶은 걸로 먹으려고 노력한다. 그렇게라도 해야지 돈 버는 의지가 생기지. 그래서 다음주는 꼭 치즈돈가스 먹으러 갈 거다. 완전 빠삭하게 튀겨서 입천장 까지는 걸로. 뜨끈한 장국도 꼭 리필해서 먹을테다.
요즘 제일 부러운 사람. 홍길동씨. 나도 분신술 쓰고 싶어요.
나는 여덟까지는 필요도 없고 셋만 있음 좋겠음. 잡1, 잡2, 살림 대리인. 본체는 그동안 집에서 애기랑 놀아주고, 맛있고 건강한 거 챙겨 먹고, 책도 좀 읽고 그러고 싶다. 너무 양심 없나. 그럼 딱 일주일에 이틀만 그래줬음. 근데 홍길동이 되길 바랄 정도로 바쁘지만 나는 왜 바쁜 게 싫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홍길동도 먹여주고 재워주는 대감님 밑에서 그냥저냥 편하게 놀고 먹을 수도 있었을텐데 굳이 공부해서 관리 되고 출세하고 싶어하잖아? 나도 적게 먹고 적게 쓴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바쁘게 안 살아도 되는데 굳이 주는 일 마다하지 않고 하는 거 보면 저 분의 심정이 이해가 감. 솔직히.. 아무것도 안하고 살면 좀 글치 않나? 보통 주말 중 하루는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침대에만 누워 있긴 하는데 그러고 나면 시간이 진짜 아까움. 근데 그걸 매일 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정말 싫어질 것 같음. 그래서 어제(토요일)도 낮잠 자다 일어나서 시장 갔다옴. 딱히 살 건 없지만 그냥 구경하면서 돌아다니다 호두과자 한 봉지 사 먹고 두 정거장 앞서 내려서 산책 겸 걸어오는 것 만으로도 뭔가 했다는 기분이 들어서 훨씬 낫더라.
꽃 폈다. 매화겠지? 이제 곧 벚꽃도 필 거고 그럼 또 우리 동네 시끌시끌하겠네. 워낙 벚꽃으로 유명한 데서 자라 그런지 딱히 벚꽃놀이에 대한 로망 같은 건 없다. 그냥 좀 일찍 마치는 날 퇴근길에 산책로 한 바퀴 돌고 오는 거지. 그래도 잊지 않고 꼭 그렇게 하는 건 사는데 지쳐서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모르고 살고 싶진 않아서. 아무리 장난처럼 죽지 못해 산다 하지만 그래도 정말 그렇게 감정 없이 살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억울하니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사는 것도 마지못해 살고 싶진 않다. 보란듯이 잘 살아 주는 것으로 복수하겠다고 마음먹은만큼 억지로라도 잘 살아내는 거 보여줘야지.
다음 주말에는 반 년 가까이 기다린 상반기 최고의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다. 호텔이랑 차편 예약까지 마치고 하루하루 기다리는 게 너무 즐겁다. 진짜 다 잊고 신나게 즐기고 기운 받아와야지. 다음 달도 불태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