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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지네언니 Oct 12. 2022

헛똑똑이

책을 좋아한다. 하루 종일 인터넷 검색을 하고, 온갖 종류의 유튜브 영상을 본다. 직업상 전문적 분야의 글들을 겉핥기식으로라도 읽을 기회가 많다. 그러다 보니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아는 척'을 잘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되게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모임에서 좌중을 압도하며! 온갖 분야의 이야기로 어깨뽕의 시간을 보내고 나오는 길. 버스 타고 집에 가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걸 깨달은 그 순간. 다들 빛나는 명품백에 차 키를 들고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는데 나는 에코백을 메고 버스 정류장을 향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하겠지. 자기만 당당하고 행복하면 그깟 명품백이며 자동차가 부러울 이유가 뭐냐고. 그렇지 '당당하고 행복하면' 그런 건 아무 문제가 안되지. 그러나 나는 그런 참인간이 아니었다. 나는 속물인 데다 남의 시선에 엄청 아랑곳하는 못난 인간이었다. 그러면서도 콧대만 높아서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진 사람들을 깎아내리는 추잡한 인간이기까지 했다. 그러고 며칠을 잠을 못 잤다. 내가 뭐가 못나서! (못난 거 맞다) 그 사람들이 뭐가 그렇게 대단해서! (엄청 대단한 분들이심) 이걸 인정하기까지의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렸다. 나라는 인간의 모자람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게 부끄러웠다. 그러나 인정을 안 할 수도 없다. 왜냐면 누가 보기에도 명확한 '사실'이기 때문에.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궁금해졌다. 왜 그들과 나는 다를까. 나는 왜 그들처럼 부유하고 여유롭지 못할까. 그들이 모두 대단한 대학을 나온 건 아니다. 모두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산으로 편하게 먹고 산 것도 아니었다. 그럼? 그들은 대부분 필요한 욕망에 정당하게 충실했다. 좋은 학교라는 간판이 갖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했고, 그럴듯해 보이는 브랜드 아파트와 자동차, 명품백을 갖고 싶었고 그걸 위한 돈 벌기에 충실했다. 그것이 나와 달랐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부유해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 부유해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부유함'을 깎아내리기에 바빴다. 돈 많은 것을, 돈 자랑하는 것을 '천박하다'라고 폄하하며 나의 빈곤을 합리화했다.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내 마음을 속이기에 바빴다. 왜냐면 그렇게 열심히 지독하게 치열하게 살 자신이 없었다. 결국엔 '내'가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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