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좀 많이 예민하다. 침대 아래 콩 몇 알 때문에 잠을 못 잤다는 어느 공주님 이야기를 읽고 나는 전생에 공주였던 것인가 하고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도 있다. 그래서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나만의 원칙들도 많다. 빨래를 널 때는 양말의 목과 뒤꿈치 위치를 맞춰서 널어야 한다. 사무실 책상 위의 모든 물건들은 다 그 위치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누가 살짝만 건드려도 대번에 알아챈다. 이런 나를 두고 누군가는 피곤하게 산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이 예민함이 이 위험한 세상에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같은 거였다.
나는 누가 실수를 지적하면 잠을 못 잔다. 밤새 실수한 장면이 머릿속에 구간 반복된다. 심지어 꿈으로도 꾼다. 좀비 같은 얼굴을 하고 그 장면이 지지직거리며 씹힐 때까지 무한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생활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런 나를 잘 알기 때문에 가능하면 실수할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 '예민함'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눈이 가는 것이 있다. 그들의 화려한 쫄쫄이 슈트. 건물이 무너져도 폭탄이 쏟아져도 그저 먼지만 툭툭 털면 원래대로 돌아오는 무적이 쫄쫄이. 나의 예민함은 저 쫄쫄이 같은 것 아닐까. 쿠크다스보다 나약한 멘탈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필요한. 그래서 앞으로도 이 껍데기를 벗을 생각이 없다. 오히려 이 껍데기가 좀 더 쫀쫀하고 단단해 졌으면 한다. 그래서 나를 흔드는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나를 지켜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