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습니다.
집으로 우편물이 하나 왔다. 결혼 전, 엄마가 전셋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대출을 받아야 했고 직장을 다니고 있던 내가 보증을 섰다. 우리 수준에서는 큰 금액이어서 10년이 넘도록 갚았고 이제 몇 개월 남았는데 그 대출금 상환이 몇 개월 밀려있어서 어서 갚지 않으면 어쩌고 저쩌고 한다는 내용의 우편물이었다. 받자마자 엄마께 전화를 드렸다. 내가 흥분한 것에 비해 엄만 너무나 편안하게 내 얘길 듣는다.
“그럴 리가 없는데, 지금은 몸이 너무 힘들어 못 나가. 알았어. 내가 내일 은행에 가 볼게.”
어릴 땐 엄마의 워딩을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분위기, 반응, 목소리가 다 읽히면서 엄마가 내 얘길 얼마큼 받아들이고 계신지 알 것 같다. 우편물을 받고 발을 동동 구르는 나와 달리 엄만 태연하게 그런가 보다 하시는 것 같아 엄마집으로 달렸다. 평소에 쉬지 않고 가도 4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날은 교통상황이 좋은지 네비 찍어보니 3시간 조금 넘게 나왔다. 은행이 문 닫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세수만 겨우 하고 노란 고무줄로 머리 질끈 묶고 출발했다. 남편에게 엄마 만나 일 보고 저녁만 먹고 올라올 테니 아이들 저녁을 챙겨달라 부탁하고는 그렇게 휴게소 한 번 들르지 않고 냅다 달렸다. 가는 중에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지금 은행 가려고 집에서 나왔어. 올 필요 없으니 그냥 다시 돌아가.”
“이미 출발해 한참을 왔어요. 고속도로 달리는 중인데 어떻게 돌아가요. 3시 좀 넘어 도착할 것 같으니 은행에서 만나요. 은행 문 닫기 전에 가야 해요.”
시간 맞춰 은행에 도착하니 우아하게 먼저 창구에 앉아 직원과 얘길 나누고 계셨다. 우아함을 잃지 않으셨으나 직원의 얘기를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 하는 그 타이밍에 내가 딱 맞게 도착한 것이다. 엄마는 옆으로 옮겨 앉고 내가 직원과 마주 앉아 일을 처리했다.
몸이 안 좋다 하셨어서 은행과 같은 건물에 있는 병원에 들렀다. 진료과정 중에 의사 선생님 말씀이 “심하진 않으시니 이 정도 약을 드릴게요.”
‘아.. 몸이 너무 힘들어 오늘은 못 나간다 하시더니 그냥 안 나가고 싶으셨던 거구나. 나만 마음이 급해 달렸고, 엄만 아무렇지도 않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속이 시끄럽다.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이어갈수록 속이 더 불편하다. 더.. 더.. 더..
그런 불편함을 알 길이 없는 엄마는, 아니 불편한 내 마음이 그닥 궁금하지 않은 엄마는 자고 가란다. 먼 길 왔는데 어떻게 혼자 그냥 가냐며 자고 가란다. 아니면 엄마가 따라나선다 하신다. 나는 아니라고 집에 가서 자겠다고, 그게 편하다고, 혼자 가는 게 더 좋다고, 엄만 그냥 계시라고.. 엄마가 섭섭해하실 수도 있는 문장들을 수 없이 뱉어냈지만 이미 엄만 내공이 있다. 내가 그러든지 말든지 상처받지 않으시고 본인 이야기만 하시는 내공.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내 맘을 좀 헤아려주시면 좋겠는데 내 입에서 나오는 말엔 귀를 닫고, 본인이 하고픈 말씀을 끝없이 반복하시는 그 내공. 나이 들어 그러시는 건 아니고 늘 그렇게 날 대하셨던 것 같다.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뭘 사네 마네 하는 걸로 회사에서 일하다 말고 주저앉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의 상황과 그때의 대화와 그때의 무너지던 내 마음까지.. 번번이 엄마 말에 못 이기는 척하고, 괜찮은 척하며 속이 부글거려도 그 말에 따랐었는데 이제는..
그러기엔 내 마음이 너무 단단해졌다. 숨도 안 쉬어지는 그 시간을 참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엄마가 그럴 때마다 숨을 참아가며 견뎠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 나도 나를 지키기 위한 내공이 생겼다. 이젠 안 견디고 싶다.
그래서 오늘은 끝없이 엄마의 말 끝에 말했다. “NO!!"라고.
no라는 말 끝에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애써 모른척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