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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올 Sep 02. 2024

80번째 생일

엄마의 팔순 축하 모임

남편이 분담해 주던 일들이 옴팡 내 차지가 되니 더더더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남편은 대상포진 진단을 받고 처방받은 일주일치 약을 이제 다 먹었는데, 아직 눈이 빨갛고 통증도 있고, 체력도 좀처럼 올라오지 않고 있다. 그래도 얼굴에 생긴 수포에 딱지가 앉고 이제 떨어지기도 했으니 나아지고 있는 거라 믿는다.

지난 금요일에는 교회행사 준비로 의정부 코스트코에 다녀와야 했고,

토요일에는 아이들 치과 진료가 있어서 서울에 다녀왔다.

일요일 오후에는 친정엄마가 오시기로 해서 서울로 마중을 다녀왔다. 엄마 계신 곳에서 여기까지 한 번에 오는 방법이 없어서 고속버스를 두 번 타야 하는데 그것도 장소나 배차간격이 여의치가 않아서 서울로 모시러 다녀왔다. 복잡하디 복잡한 강남센트럴시티터미널.

그리고 월요일은 엄마 팔순생신을 앞두고 친정오빠네서 모이기로 해 엄마 모시고 다녀왔다. 오빠네 집도 우리 집에서 두 시간을 달려야 하는 곳인데 몸이 조금 나아지기도 했고, 내가 며칠 장거리 운전을 계속하고 있으니 ‘이러다 너까지 아프면 안 된다’며 남편이 운전대를 잡았는데 그 하루가 힘들었던 건지 어제오늘은 다시 골골하고 있다.

생각해 보니 매년 5월에는 가계부를 쓰지 않았던 것 같다. 4월 말 경에 있는 시아버지 생신, 5월에 친정엄마 생신, 시어머니 생신, 남편생일 다 모여있어서 기록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달이다. 올 해는 더군다나 친정엄마 팔순, 시어머니 칠순. 영수증은 쌓이는데 이번에도 쓰지 않고 있다.

엄마 생신이 먼저여서 일주일 앞당겨 이번 연휴 때 모였다.

엄마, 오빠네 네 식구, 우리 다섯 식구 열명이 모여 하하 호호 엄마가 좋아라 하셨다. 사실 전 날, 우리 집에 오셔서는 내일 나는 집으로 그냥 갈까 보다 하셔서 독설가 딸에게 한 소리 들으셨는데 그냥 가셨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만큼 좋아하셨다. (물론 그냥 가신다는 말이 진심이 아니셨을 테지만) 무뚝뚝한 딸,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아들, 도리를 다하는 며느리와 사위. 그래도 조카 녀석이 다정다감해서 엄마와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나누고, 손도 잡아주고 하니 엄마는 여전히 ‘우리 손자최고’를 외친다. 이제 가정의 중심이 오빠네 내외와 우리 내외로 바뀌어 가고 있는 걸 엄만 인식하고 싶지 않으신 것 같다. 노래도 부르고 사진도 찍고, 엄마얼굴 그려진 케이크에 현수막에, 엄마가 주인공인 조촐한 잔치를 여니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어쩌면 엄마가 이제 한 발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걸 못 받아들이는 것처럼, 나이 든 엄마는 어린아이가 되어간다는 걸 나도 못 받아들이는지 모르겠다. 약해진 몸만큼 마음도 약해진다는 걸 말이다.


이러쿵저러쿵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다가도 한 번씩 멈칫한다.

내가 80살에 난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삶을 대하게 될까, 겪어보지 않은 그 나이를 내가 지금 뭐라 뭐라 해도 되는 걸까?

그러면서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는 것들을 그때도 떠올릴 수 있기를.. 부디 우아하게 나이 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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