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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올 Sep 09. 2024

2촌과 1촌

이모와 나

전화벨이 울렸다.

<막내이모>

이모랑 통화한 지 얼마나 됐더라. 얼른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이다. 뵌 것도 통화를 한 것도 몇 년은 된 것 같은데 이모에게서 전화가 오니 무슨 일인지 생각하느라 바로 받아지지 않았다.

“네, 이모. 잘 지내셨어요?”

“응~ 넌 잘 있었어? 애들 많이 컸지? 지내는 건 어때?”


당연히 우리 애들 잘 크는지 궁금해서 전화하신 건 아니고 엄마랑 통화했는데 엄마가 예전 같지 않다고, 물어보니 딱히 드시는 뇌건강영양제도 없는 것 같던데 mra를 찍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얘기셨다.

“안 그래도 병원에 모시고 갔었는데요.....”

“그래, 엄마가 얘기하더라. 근데 그런 걸로는 정확히 안 나와. mra 찍는 거 노인들은 얼마 안 드니까........   해마가 작아져서....... 큰 이모도 그랬어서 속상하더라고...... 엄마 아프면 너희가 힘든 거니까...... 오빠한테 전화하려다가........ “


몇 마디 주고받다가 알았다. 내 대답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네, 이모 알겠습니다. 잘 지내시고요.”

“그래,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 이서방인지 김서방인지.”

“네 잘 있습니다.” (무슨 서방인지 알려드리지 않았다.)

“그래, 안부 전해줘.”


전화 끊고 나니 마음이 안 좋다.

나랑 엄마 30살 차이, 딱 그 절반 나보단 15살 많고, 엄마보다 15살 적은 막내이모랑 말하는 게 제일 편했던 적이 있었다. 사는 거 녹록지 않아도 언제나 세련되고 멋졌던 이모는 내 말도 잘 알아듣고, 이해해 주는 이모였는데 이모도 나이 드셨구나 싶었다. 대놓고 오해하고 곡해하자면 ’응.. 너 할 말 있겠지만 듣고 싶지 않고 내 말이나 들어.‘하는 기분이었다.


이모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조금 더 가까이서 보는 내가 모르는 거일 수도. 엄마가 치매라도 걸리면 제일 고생하는 게 나라는 얘긴 너무나 맞는 얘기다.

그래도, 1년에 한 번도 못 만나고 통화도 서너 달에 한 번씩 하시면서 나보다 엄말 더 잘 아실까? 라며 나는 이미 삐딱선을 탔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과 통화하며 얼마나 우는 소리를 하셨길래 하는 생각이 드니 당장 전화해서는 엄마한테 이러쿵저러쿵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참았다. 내 마음을 보듬고, 엄마를 애처롭게 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러려면 당장 통화버튼을 누르면 안 된다. 그래서 참았다.





며칠이 지났다. 그 사이에 엄마와 통화했지만 막내이모에게서 전화받은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고 오늘, 엄마에게 새롭지도 않을 얘기를 했다.

“엄마, 엄마가 들으면 섭섭할지도 모르지만 엄마가 나이가 든 건 사실이고 우리 몸의 건강이라는 게 영원할 순 없잖아요. 관절이니 몸속 기관이니 기억력이니 약화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요. 혹시 뭐 잊어버리는 일이 자꾸 생겨도 너무 짜증 내지 마세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뇌건강 영양제 하나 사려고요. 그런 거 먹으면 그래도 좀 낫다고 하더라고요.”

가까이 계시지 않으니 번번이 챙길 수가 없는데 엄만 또 고집이 있으셔서 내 말에 움직이는 분은 아니라서, 엄마 마음 상하지 않고 내 언성 높아지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얘긴 이 정도였던 것 같다.


사랑과 걱정이면 충분한 이모.

걱정과 책임감에 무거운 나.


올 추석엔 뇌건강 영양제 하나 챙겨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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