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_나는 매일 테트리스 게임을 한다.

2. 동행_불안이란 동행자에 대한 이해

by 크렁 아저씨

공황장애 및 불안에 대한 이해노력 및 극복노력을 이어가면서, 요즘 나는 매일 테트리스 게임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누구나 한 번쯤 어렸을 적에 해보았을, 여러 가지 블록이 나오고, 그때마다 방향과 위치를 바꿔 가면서, 블록들을 차곡차곡 쌓아, 빈 곳이 없게 모든 면을 다 채우면, 그 면이 사라지면서 계속 게임을 이어갈 수 있는 테트리스 말이다. 이 게임에 빠져서 하굣길에 자주 오락실에 들렸던 기억도 난다. 이 게임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게임을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채 몇 분도 안 걸리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 떨어지는 블록들로 면을 만들어 없애지 못하게 되고, 블록이 점점 쌓이다 결국 천장까지 닿게 되면 게임은 끝이 나고 쓴웃음을 지으며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갔던 기억이 새롭다. 돌아가는 길 머릿속에는 온통 떨어지는 블록들이 떠오르며, 이렇게 저렇게 블록들을 그려보며, 다음번에는 꼭 성공하리라는 다짐도 함께 하면서 말이다.


우리의 불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러 스트레스, 자극, 부정적 상상 그리고 그로 인한 염려가 계속 쌓여 불안의 압력이 조금씩 쌓여가는 가운데, 테트리스에서 블록의 위치와 방향을 바꾸는 것처럼, 우리는 복식호흡, 이완, 생각 멈춤, 이해노력, 움직임, 직면 등으로 조금씩 조금씩 불안의 압력을 낮추려 매일매일 노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테트리스 게임처럼 때로는 기다리던 모양을 제 위치에 놓아서 한 번에 여러 블록층을 없앨 수도 있지만, 여러 번 실수가 반복되다 보면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결국 허둥대다가 게임이 끝나게 된다. 우리는 강한 불안이라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고, 얼마나 허둥대었는가 하는 결과에 따라 결국 공황발작 혹은 재발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내가 불안과 공식적으로 만난 것은 2022년 12월이었지만, 나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그 이전 훨씬 오래전부터 불안과의 동행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게임의 정체도 이 게임 방법도 몰라서 불안이 생겨나면 그냥 쌓기만 했던 때도 있었고, 쌓아진 불안으로 인해 속절없이 당하기만 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불안이 내 삶을 송두리째 뺏어간 이후부터는 적극적으로 불안과 함께 동행하는 방법을 찾는 노력하고 있다. 그 노력은 때로는 "내려오는 블록을 알맞게 바꾸는 법", 또 때로는 "블록을 천천히 내려오게 하는 법", 그리고 "게임의 속도가 빨라졌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의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쩌면, 결국에는 더 근본적으로 블록이 내려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해결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처럼 아예 블록이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우리의 인생은 어찌 그러하겠는가. 우리의 삶이 블록이 내려오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일단 이 상황을 기쁜 마음으로 인정하고, 차라리 불안에 좀 더 적은 영향을 받는 삶으로 바꿔보는 것이 더 현명할지 모르겠다. 특히, 나와 같이 불안에 예민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특별히 말이다.


물론,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게임 덕에, 예기치 못한 블록 덕에, 어떤 날은 테트리스 게임에 실패해서 쓴웃음을 지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날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미 불안과의 동행을 기쁜 마음으로 인정했기에, 나에게 매일매일 떨어지는 블록들을 이리저리 맞춰보는 연습을 한다. 마치 하굣길에 테트리스 결과에 만족을 못해서 머릿속으로 해결책을 찾을 때처럼 말이다.


불안에 힘들어하는 우리 모두 하루하루 나에게 생겨나는 불안을 이렇게 저렇게 줄여보는 연습을 통해 이 게임에 익숙해져서, 우리도 마지막에는 러시아 인형처럼 신나는 춤을 출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Moscow_July_2011-4a.jpg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대성당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5824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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