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사이를 완충하는 그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창피한 일이지만, 오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내면이나 무의식과 같은 내용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공황이란 사건이 찾아오고, 심리학이란 학문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제야 이전에 내가 전혀 관심도 없었던 인간 내면의 세계가, 비로소,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되었다.
이런 관심이 생기다 보니, 기존 어떤 주장이나 이론들을 접하게 되면, 그것들을 다시 나만의 방법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번엔 무의식과 의식, 그리고 그 둘을 연결시켜 주는 완충제, 이 세 친구로 이어진 삼각구도가 떠올랐다.
우리가 인지할 수 없는 무의식은 끊임없이 의식과 대화를 하려고 노력한다. 가끔은 꿈으로 혹은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의식화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 둘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갭이 존재한다. 어쩌면 서로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둘 사이에 시간적 혹은 공간적 완충지대가 존재한다고 상상해 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무의식이 불안정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때에도, 이 완충지대가 그 고통을 온전히 감당해 내서, 의식 수준으로는 그 어떤 불안의 고통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완충지대 때문이라고 가정해 보자. 마치, 우리가 아주 중요한 회의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 순간, 내 몸과 마음은 긴장으로 가득 차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발표를 끝내, 그 어떤 누구도 그런 나의 상황을 눈치채지 못하게 잘 마무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그 중간에 감내력이란 완충제가 잘 작동을 해서 이런 결과를 얻은 것일 것이다. 물론, 그 긴장감을 완충하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내면과 의식 사이에 완충제가 있을 것이란 가정을 기반으로 그려본, 전혀 검증되지 않은 순전한 나의 생각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이해가 더 쉬울 것 같아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려는 마음으로 작성해 보았다.
이런 이해를 배경으로 공황인이 겪는 불안이란 정서에 대해 내가 해본 상상을 공유하고자 한다.
1. 완충제가 충분히 있을 때
우리 모두는 원래 내면과 의식 사이에 시간적, 공간적 완충작용을 해주는 충분한 양의 완충제(buffer)를 가지고 있고, 이 완충제는 웬만한 자극이나 공포, 불안 같은 큰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모든 자극들을 흡수해 주는 안정적이고, 든든한 역할을 할 수 있다.
2. 완충제가 점점 사라져 갈 때
늘 급한 성격에 조급해하고, 작은 일들에도 늘 긴장하고 염려를 끊지 못하는 과오를 반복하면서, 늘 가득하기만 할 줄 알았던 완충제는 조금씩 조금씩 증발해 사라져 버린다. 물론, 이런 각각의 작은 행동들은 결국 습관처럼 고착화되어서, 머릿속은 늘 크든 작든 일어날 모든 일들에 대해, 늘 최악으로 생각하는 재앙화사고를 반복하게 된다. 결국, 이런 잘못된 행동들로 인해 한정된 완충제가 점점 사라져 가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심한 불안에 노출된 사람들은 대부분 태생적으로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스트레스, 사건, 걱정거리가 생기면, 먼저 몸이 반응한다.
적극적인 해결 방법을 찾기보단, 어떻게 하면 이것들을 피해 갈 수 있을지 먼저 고민한다.
크고 작은 일들에 무조건 크게 부풀리는 재앙화 사고를 범하며 산다.
머릿속의 복잡함으로 인해 잠도 잘 못 자고, 꿈도 많이 꾸고, 작은 것에도 잘 놀란다.
알 수 없는 짜증과 갑작스러운 분노에 놀라고, 초초함과 긴장으로 늘 어깨와 목은 뻣뻣하다.
기쁘고 감사한 일들도 있지만, 그것을 온전히 감사하지 못하고, 머릿속에는 벌써 다음 목표를 그리고 있다.
3. 완충제가 완전히 사라진 때(공황발작)
이런 사이클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완충제는 이미 바닥을 보이게 되고,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자극도 이제는 거대한 폭풍이 되어 의식에까지 그대로 전달된다. 그 폭풍의 원인을 여전히 외부에서만 찾고, 깊은 내면에서 온 것임을 인식하지 못한다. 원인을 모르니, 느껴지는 두려움은 실제 보다도 몇 배로 더 크게 느껴지게 된다. 공포와 두려움이 전체의 삶을 지배하게 되고, 불안과 공포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주위의 나쁜 소식을 듣거나 매일 겪었던 사소한 사건임에도 몸이 심하게 반응을 한다.
나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멈출 수가 없다.
불안의 원인을 모르니, 건강 염려증이 생기면서, 마음이 잘 진정되지 않는다.
평소 잘 가지 않던 병원인데도, 주말이나 연휴가 되면, 병원휴무 때문에 대해 불안하다.
입 마름, 코막힘 등 사소한 몸의 변화도 바로 불안으로 이어진다.
대중교통 같은 일상생활이 힘들게 느껴진다.
하루 종일 불안해서 잠도 밥도 먹을 수 없다.
불안이 계속되기 때문에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더 이상 나를 믿지 못해서,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불안해한다.
약을 먹어도, 잠시뿐이고, 여전히 불안하다.
4. 회복기 때(동행을 인정하고, 불안이란 동행자를 이해하게 될 때)
불안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정확히 깨닫고, 불안으로 이어지게 만든 잘못된 생각과 행동은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된다. 여전히 일상적인 삶은 축소되고, 힘들지만, 직면을 통해서,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니, 이전에 보이지 않던 길가에 이름 모를 꽃도 보이고, 불어오는 바람도, 따뜻한 오후 햇살에도 감사가 느껴진다. 기쁨, 감사, 충만이 반복되다 보니, 사라져 버렸던 완충제가 돌아오는 것이 느껴진다.
매일매일 요동치는 증상으로 인해 그날그날 기분이 다르지만, 늘 변하는 사건을 보는 대신, 큰 흐름을 보기 시작한다.
늘 보던, 매일 경험했던 것들이 기쁨과 감사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여전히 불편함이 있지만, 충만과 기쁨과 감사로 조금씩 채워 나간다면 머지않아 비워진 완충제가 다시 채워질 것이란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