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_동행 공식 선언
세 번의 강렬한 만남 후, 이 증상이 말로만 듣던 공황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외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 즉, 먹는 것도, 자는 것도, 그리고, 깨어서 그냥 멍하니 앉아있는 것도 힘들었다. 어떤 도움 없이는 너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정신과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연휴에 연말연시이고 해서, 예약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난 정말 일분일초라도 빨리 어떤 도움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러 병원을 컨택한 결과, 딱 한 곳만 그날 오후에 진료를 볼 수 있었다.
간단한 문진 후, 조그마한 방에서 이것저것 묻는 질문지에 답을 하는 순간에도 불안과 답답함이 나를 압도했다. 몇 명의 다른 환자의 진료가 끝난 후, 다시 진료실로 들어가서 결과를 들어보니, 역시 예상했던 공황장애 진단이었다. 그러나, 내게 중요한 것은 의사가 어떤 병을 진단하는 것보다도,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아침, 저녁으로 자나팜(알프라졸람) 0.25mg, 아침에만 먹는 인데놀 10mg, 그리고, 비상시를 위한 클로나제팜 0.5mg을 처방받았다. 너무나도 빠른 진단에 놀랍기도 하고, 환자의 하소연에 그토록 무덤덤하게 반응하는 의사의 태도도 야속했지만, 부디 처방해 준 약이 효과가 있어서, 지금 내가 고통받는 것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 어떤 푸대접도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박했다.
약을 먹기 시작하니, 이게 불안을 낮추기 위한 약인지, 그냥 잠을 재울 목적의 약인지 모를 정도로 정신은 몽롱하면서, 계속 잠이 쏟아졌다. 특히, 약을 먹고 난 후, 1-2 시간 동안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루 중 정신이 없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지, 깨어있으면서 하루 종일 느꼈던 불편감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불쾌한 몽롱함이 끝나고 나면, 어김없이 또다시 불안함이 몰려오곤 했다.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거의 침대에 누워서 지내야만 했다. 몽롱함과 불안함이 반복되며, 나의 정서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동안, 내 몸도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했다. 밤이면, 침대 매트가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고, 젖은 옷 때문인지 오한으로 잠에서 깨어 옷을 갈아입고 자야만 했다. 이틀간 이런 증상을 겪고 나니, 몸에서 열이 불덩이처럼 올랐다. 단순히 항불안제의 부작용이 아닌 것 같아서, 다시 내과를 예약해서 진료를 받았다.
늘 안 좋은 일은 함께 온다고, 코로나 백신 3차 접종도 마치고, 그렇게 조심한다고 했는데, 첫 코로나 확진이었다. 내가 코로나에 확진된 때에는, 일주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무렵이었다. 다행히도 병원 진료를 위한 외출은 가능하도록 규제가 어느 정도 완화된 시기였다. 나로 인해 가족들한테 전염을 시키진 않을까 하는 염려와 함께, 밖에도 나오지 못하고 일주일 이상 방안에서만 지내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답답함이 몰려오면서, 머릿속엔 이미 격리를 하면서 자그마한 방 안에서 답답해하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이미 먹던 항불안제와 코로나용 항생제와 진통제가 가득 든 약을 동시에 먹으니, 가족들이 방으로 넣어주는 식사시간을 제외하곤, 거의 하루 종일 잠에 취해있었다. 오히려 깨어있는 시간이 적으니, 느껴지는 불안도 적어진 듯했다. 그러다가 한밤 중 잠에서 깨어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을 때 느껴지는 적막함과 절망감은 나를 나락으로 떨어트리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났지만, 코로나 증상에 차도가 보이지도 않고, 마침 코로나용 약도 정신과에서 처방해 준 일 주일치 약도 떨어져 갈 즈음, 정신과 병원을 다시 방문했다. 천천히 걸어도 숨이 차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불안으로 힘들었지만, 혹시 모를 전염 위험에, 상가건물 4층에 있는 병원까지 중간중간 쉬어가기를 반복하면서 계단으로 올라갔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나는 상가건물 복도에서 기다리고, 아내만 병원에 들어갔다. 한참 뒤, 마스크 너머로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지난 진료를 담당했던 의사가 병원 문만 빼꼼히 연채로 똑같은 용량으로 일주일치 처방해 주겠다고 말하고 서둘러서 병원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이런 취급을 받을 거면, 내가 이렇게 어렵게 4층까지 올라오지 않아도 됐고, 그냥 처방만 아내 편에 주었으면 되었을 텐데 하는 원망과 분노도 치밀었다. 아마도, 처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환자를 직접 봐야만 하는 법적 의무가 있었기에, 그렇게 꺼려하는 기색까지 보이면서까지, 얼굴만 내밀고 말을 전달했어야 하는 의사의 처지도 안타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다음에는 다른 병원으로 가야겠다는 확신은 들었다.
이렇게 나머지 반의 시간도 잠에 취해서 지내다가, 혹시 모를 전염에 대한 염려가 줄어든, 10일이 지나서 방 밖으로 나왔다. 내가 방 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코로나 증상이 없어졌다는 것이고, 코로나 치료를 위해 먹던 독한 항생제와 진통제가 더 이상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니, 하루 동안 내가 깨어있는 시간이 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역시, 정신이 멀쩡하니, 내가 느끼는 불안감은 더욱더 나를 괴롭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