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동행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삶
정신과에서 받아온 항불안제를 아침, 저녁마다 먹어도, 불안한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한국을 방문한 지 벌써 2주가 지나고 있는데, 빨리 장인/장모님을 찾아뵈어야 한다는 생각도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때, 핸드폰에 기록했던 메모를 보니, 난이도에 따라 꼭 해야만 하는 것들의 순서를 썼다가 지웠다가 여러 번 고쳤던 흔적이 나의 고민을 말해주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두 번째 치과 진료, 미장원, 처갓집 방문, 아이들 여권 갱신이었다. 평소에 즐겁게,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일들을 어려운 순서로 적어 놓은 것을 보면, 당시에 그 일들을 하기 위해 나에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상상조차 하기 싫었던 스위스 귀국행 비행기를 다시 타야 하는 악몽 같은 날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여전히 하루 종일 불안이 넘실거렸고, 집 밖을 나오는 순간, 주위의 모든 풍경은 회색빛과 무채색으로 보였다. 오로지 마스크 안으로 느껴지는 나의 불안한 호흡과 죽을 것 같은 불안감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가족들과 같이 하면서, 비교적 난이도가 낮은 처갓집 방문을 먼저 하기로 마음먹었다. 문제는 본가인 용인 수지에서 처가인 강동구 성내동까지의 이동이 문제였다. 그래도 사람으로 가득 찬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단 운전이 낫겠다 싶어서, 부모님 차를 빌려서 가기로 했다. 그러나, 사위와 손주들이 온다고, 점심 식사를 위해, 근처 숯불갈비집을 예약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식당 안에 자욱한 연기가 그려지면서, 답답함에 뛰쳐나올 것만 같은 상상만 떠올라서, 아내에게 부탁하여 갑작스럽게 장소를 그냥 집으로 변경하였다.
운전을 시작하여 분당을 지날 때쯤, 가다 멈추다를 반복하는 서행이 시작되었다. 차 안에 온도를 이미 낮게 설정했지만, 낮게 틀어놓은 히터마저 불편하게 느껴졌다. 추웠지만 어쩔 수 없이 운전석 창문을 좀 열고 운전을 했다. 그러다가, 연달아 이어지는 터널 속에서, 오랜 시간 멈춰 서게 되니, 별의별 상상과 함께 답답함과 호흡불편함이 더 올라왔다. 내 평생에 그렇게 힘든 운전은 없었던 것 같다.
겨우 부모님 댁에 도착을 해서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인사를 드렸다. 점심을 먹고,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불안이 올라와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머니에 있던 비상약 크로나제팜 0.5mg을 재빨리 먹었다. 비상약으로 처방을 받아 놓고서, 처음으로 먹는 상황이었다. 아내가 부모님께 '아범이 컨디션이 좀 좋지 않다'고만 이야기해 놓은 상황이라서, 내가 느끼고 있던 불편함을 완전히 드러낼 수도 없었고, 그냥 참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공황이란 진단은 받았지만, 당사자인 나 조차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상황이고, 더군다나 다른 사람에게는 더욱더 알리고 싶지도 않아서 나의 상태를 솔직하게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다행히 크로나제팜이 효과가 있었는지, 2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처가 부모님께서도 내 상태가 예사롭지 않은 것을 눈치채셨는지, 집에 빨리 가서 쉬라고 이해를 해주셨다.
돌아오는 길도 갈 때의 모습과 별반 크게 차이가 없었지만, 이에 더해서 깊은 절망감마저 들었다. 운전이나 약속 같은 이런 일상생활조차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더해지니, '이제부터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하는 막막함이 몰려왔다.
다음날 오후, 예약된 치과진료 시간이 다가오자, 가슴은 요동치기 시작했고, 머릿속에는 온통 치료 도중 겪을 호흡곤란한 상황만 떠올라서 안절부절 그 자체였다. 이미 깎아 놓은 이를 메꾸지도 않은 채 그냥 갈 수도 없고, 다시 진료를 받다간 공황발작이 올라와서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진료를 단 하루라도 미룰까, 그냥 받을까 하는 생각이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 반복되었다. 어쩔 수 없기에, 출발하기 10분 전쯤, 다시 비상약 크로나제팜 0.5mg을 먹었다.
치과의자에 눕자 가슴은 쿵쾅거렸고, 곧 공황발작이 올 것 같은 싸한 느낌도 들었다. 이 싸한 느낌은 가슴을 죄어오는 것 같기도 하면서, 전기가 흐르는 것 같으면서, 무언가 가슴 밑으로 내려앉는 느낌 등이 섞인 아주 불쾌하고 공포스러운 느낌이다. 한 간호사가 와서 치료를 위해 내 얼굴에 파란색 종이 타월을 올리려고 하자, 다른 간호사가 작은 목소리로 '이 분은 그거 없이 치료해야 돼'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지난번 진료 때 나를 봐주셨던 간호사셨나 보다. 의사 선생님이 오시고, 나를 의식한 듯, "오늘 진료는 마취도 없고, 지난번에 본뜬 것을 붙이기만 하면 되니, 긴장을 풀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해 주셨다. 다행히 지난번 같은 공황발작은 없었지만, 작은 일상마다 이렇게 긴장하고 큰 용기가 필요한 상황이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다음날, 한국 방문마다 가는 단골 미용실 대신에, 한적해 보이는 집 근처 미용실을 예약했고, 아내에게 같이 가달라고 부탁을 했다. 역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먼저 더운 열기에 답답함이 몰려왔고, 이내 공포가 엄습을 해왔다. 커트를 위해 미용사 분이 머리를 감겨주는 것 마저, 너무 힘들었다. 이런 사소한 일상생활에 제약과 불편함이 반복되자 '이젠 정말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하는 생각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