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재해석)_불안 게이지

위치와 방향을 알려주는 작은 나침판

by 크렁 아저씨

불안과 동행을 하다 보면, 내가 느끼는 불안의 실체를 파악하는 많은 노력들을 한다. 불안의 성격 중 하나는 변덕스러움이다.


처음 불안과 동행을 인정하고, 차츰 상대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점점 우리의 관계가 잘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불안은 등을 돌려버리기도, 심지어 처음 공황장애로 힘들었을 때로 돌아간 듯이 관계가 악화되는 힘든 순간들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런 불안의 변덕스러움에 혀를 내두를 때가 많다.


사람마다 불안을 야기시키는 것도, 이것을 감내하는 능력도, 모두 다 다를 것이기에, 객관적으로 불안을 느낄 때를 표현하거나 불안의 강도를 설명하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느끼는 불안을 글로써 써보고, 나의 언어로 묘사를 해보면, 그 실체를 더욱더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 콘서트를 다녀온 이후에 갑작스러운 변덕으로 인해 강한 불안을 경험한 때에, 불안의 강도에 따른 나의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연결시켜 보았다. 나에게 불안을 자극하는 요소는 답답함과 호흡불편감이고, 평소 나의 감내력은 평균에 살짝 못 미치는 정도임을 감안하면 이해가 더 잘 될지도 모르겠다.


혹시나, 평소와 다른 강도의 불안이 느껴질 때,
불안이란 전체 스펙트럼 내에서, 내가 지금 어느 정도의 불안 상태에 와있구나를 파악할 수 있다면?
그것을 통해 나도 모르게 소홀했던 불안을 낮추는 노력에 더 박차를 가할 수 있다면?
아마도 관계는 더 이상 최악으로 치닫지 않을 것이다.


그 당시 메모장에 기록해 둔 내용이다.

지난 주일 콘서트장에서 강한 불안을 느끼고, 지난 수요일 밤에 또 한 번의 강한 불안을 경험 후, 오늘 내가 최고 불안 단계에서 느꼈던 불안의 맛들을 잊지 않기 위해, 강도별로 단계를 나누어 정리해 본다.

0단계는 나와 같은 공황인이 회피하고 싶은 특정한 장소나 상황을 겪지를 않으면, 큰 불안이 없고, 일상생활하는데 큰 지장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0을 기준으로 불안의 강도가 점점 심해졌을 때 느끼는 것들을 묶어서, 1단계, 2단계, 3단계로 표현하였다. 3단계는 정말 힘들어서 다시 약에 의존하고 싶을 때를 말한다.(4단계는 공황발작 수준)

1단계
. 약속이나 모임 참석을 앞두고 이유 없이 불안하고 망설여지는 경우
. 다리 떨기와 같은 초초함을 나타나는 행동이 많아진 경우
. 평소보다 코 호흡이 더 불편하게 느껴지는 경우
. 본인은 못 느끼지만, 가족으로부터 한숨을 많이 쉰다는 말을 듣는 경우
. 소화불량의 답답함이 평소보다 더 불편하게 느껴지는 경우
. 카페와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이유 없이 잠시 동안 답답함이 느껴지다가 사라지는 경우

2단계
. 밤이 오거나, 불을 끄거나 하는 것이 두렵게 느껴지는 경우
. 이불이나 옷이 입이나 코에 닿는 것이 두렵게 느껴지는 경우
. 특별한 이유 없이 가족에 대한 걱정거리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떠올라서 불안한 경우
.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불안한 경우
. 불안이나 질식 등 특정 단어를 보았을 때, 불안이 크게 느껴지는 경우
. 수영장에 빠지는 장면, 질식하는 장면, 물고문 장면 등의 드라마나 영화 장면에 불안이 크게 느껴지는 경우
. 느껴질 답답함이나 두려움으로 인해 샤워가 망설여지는 경우
. 아직 계획도 없는 비행기 타기나 치과진료 같은, 특정순간이 떠올라 불안한 경우

3단계
. 당장 필요하지도 않지만, 주말이면 병원이 문을 닫는 것 때문에 불안한 경우
. 뉴스의 사건사고를 못 볼만큼 불안한 경우
. 평소와는 다르게 불을 못 끌만큼 어둠이 무서운 경우
. 입에 물을 잠시 머금고 있거나, 삼키는 순간이 답답하게 느껴져 불안한 경우
. 작은 공간이나 지하실과 같은 공간에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불안이 느껴지는 경우
. 느껴질 답답함이나 두려움으로 인해 샤워를 못하는 경우
. 답답함으로 인해 아예 차운전이 어렵고, 운전하는 상상만 해도 불안한 경우
. 불안함으로 인해 드라마나 영화, 대화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경우
. 몇 시쯤 되었는지, 주위 상황이 어떤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

4단계
. 공황발작 수준


우린 이 긴 동행기간 동안 참으로 많은 불안의 변덕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 가장 힘든 것은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듦으로 인한 두려움이다. 먼저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그 위치에서 가장 효율적인 노력을 해나감과 동시에, 이 길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는 마음을 먹으면 최악으로 치닫던 우리의 관계도 조금씩 개선되지 않을까 싶다.


혹시, 불안으로 고통을 받는다면, 내가 느끼는 불안을 글로 써보고 그에 맞는 강도를 매겨 보자. 어쩌면 그것이 작은 나침판이 되어서, 나에게 나의 현재 위치앞으로 해야 할 일을 알려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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