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_2. 동행

2.2 힘 없이 서있던 나를 마주하기_상편

by 크렁 아저씨

비로소 내 한편에 힘 없이 서있는 나를 마주한 것은, 집으로 돌아온 후, 절망과 좌절로 아무것도,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던 며칠을 보낸 후였다. 한국에서 처방받았던 각 종 약들도 내가 깊은 불안의 늪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 당시 불안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낮춰주는 유일한 존재였음은 부인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처방받은 약이 체 며칠치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가뜩이나 불안했던 나를 더욱더 초초하게 만들었다.


서둘러서 주치의에게 연락을 했다. 주치의(가정의학과 의사)가 내가 필요한 약을 직접 처방해 줄 수 있는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처방을 못 받더라도, 다른 정신과 전문의를 연결시켜 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일단 스위스 주치의와의 약속을 서둘러서 잡았다.


최근 4-5년 동안 내가 이런저런 병명들을 들고 찾아가서, 주치에게 이미 나는 골골대는 단골 고객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고관절 수술로 한동안 말 못 할 고생을 경험한 이후, 나에게 병원은 믿음이 가지 않는 불편한 이미지였지만, 그래도 그가 다른 의사들보다는 편하게 느껴졌었다.


힘겹게 집 밖으로 나와, 카레이싱 관련 사진과 소품으로 가득한 진료실에서 만난 의사의 표정은 여는 때처럼 웃고 있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약해빠진 양반, 또 왔군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지난 한국에서의 경험과 진단명을 이야기했고, 당장 약 처방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생각했던 것들과는 다르게 최근 스위스는 주치의가 정신과 약도 처방할 수 있게 바뀌었다며, 필요하면 정신과 의사를 소개해주겠지만, 원한다면 자신이 그 역할을 해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새로운 의사를 만나는 것도 너무나 부담이 되는 시기였고, 내가 의사를 찾아간 이유는 오로지 약을 처방받기 위한 이유였기에 그냥 주치의를 선택하고 나왔다.


병원 문을 나오면서도,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죽을 것 같은 힘든 상황을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한 것이 의사소통을 외국어로 밖에 못해서 그렇다는 아쉬움과 찝찝함, 그리고 비슷한 연령의 건강해 보이는 의사와 늘 연약함으로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아갈 수밖에 없는 내가, 더욱 대비가 되는 것 같아, 나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런 상황과 마음은 최근 몇 년간 나에게 끊임없이 이어져왔던 불행의 사건들을 하나씩 소환해 내었다.


사실, 주치의를 더 자주 찾게 된 이유는 2020년 여름 수술을 받게 되었던 고관절충돌증후군이 계기가 되었다. 수술 일 년 전부터 고관절 주위 여기저기에 지속되는 통증의 원인을 찾던 과정에서나, 6개월이나 이런저런 검사를 하면서도 명확한 이유를 모르다가, 단 한번 찾아간 한국 정형외과에서 고관절충돌증후군이란 병명을 알게 된 후, 또, 이를 위해 다른 전문의를 연결시켜 주는 과정의 중간에 늘 그가 있었다. 그리고, 수술 후 1년이 넘도록 계속된 통증의 원인이 잘못된 수술 때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어려움을 겪던 때도, 그 과정들을 알고 있었던 그였다.(유럽에서 주치의의 역할 중에 하나는 본인 진료영역 밖의 사항에 대해서 전문의들을 연결시키고, 그 결과를 공유해서 환자의 모든 상태를 알고 있는 것)

수술 후 계속된 통증은 허리디스크로 연결되고, 믿고 수술을 맡겼던 의사에 대한 배신감과 불신, 그리고 의료소송까지 준비하려고 했던 과정의 스트레스는, 수술이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던 나에게 큰 절망감으로 다가왔었다.

체중은 이전보다 10kg가량 줄어갔고, 다리와 허리의 통증으로 인해 잠깐의 산책마저도 힘이 들었던 나에게 이것 말고도 또 다른 불행이 찾아왔다. 극심한 소화불량과 하루 수차례 이어지는 배를 죄어오는 듯한 통증은 이제 더 이상 수술과 관련된 외과 질환뿐만 아니라 심각한 내과 질환도 생겼다고 믿기에 충분했다. 나의 신체와 더불어 정신마저도 점점 약해져 갔다.

그렇게 다시 병원을 찾았지만, 역시나 정확한 이유를 들을 수 없었던 나는, 결국 현대 의학에 대한 불신마저 들었고, 더 복잡하고 정밀한 검사만이 내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찼었다. 다행히 2021년 여름, 짧았던 한국 방문 중에, 코로나 시절 그렇게 진료받기가 어렵다던 유명대형병원을 지인찬스로 이용할 수 있었다. 충분한 검사를 받기에 너무나도 짧은 일정이었지만, 상장간막동맥증후군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을 수 있었다. 위와 십이지장 사이를 지나는 굵은 동맥이 십이지장을 누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선천적인 이유일 수도 있지만, 갑작스럽게 다이어트를 하거나 살이 빠지게 되면 체내 지방이 줄게 돼서 이런 증상을 보인다며, 수술도 방법이지만 이것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체중을 늘리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무조건 먹으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극심한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는데, 먹어야 산다니, 정말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었다. 그래도 고단백 환자식까지 먹으면서 포기하지 않고 버텼더니, 체중도 약간 늘었고, 통증의 횟수도 줄었다. 이에 더해 당장 고관절 수술을 다시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계속될 것 같던 다리의 통증도 많이 줄어든 듯했다.

이렇게 좀 살만해졌다 싶었던, 한국 방문을 3-4일 앞둔 2022년 여름, 아내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발생하였다. 분명 회사에 있어야 할 시간인데, 침울한 표정으로 현관을 열고 아내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냐며 채근하는 나에게, 아내는 한참 동안 머뭇거리다가 며칠 전에 한 검사에서 유방암이 진단되었다라며, 한국 가는 것은 어떻게 하냐고 우는 것이었다. 몇 년 전 검사에 의심소견이 나와서 매해 추적검사를 하고 있던 때였다. 지금 한국 가는 것이 머가 중요하냐며 치료만 생각하자고 했지만, 내 머리도 이미 멎어 있는 것 같았고, 이렇게 계속 찾아오는 불행이 마치 내가 삶을 잘못 살아와서 겪는 벌이라고 속으로 수없이 내 탓을 했다. 그러면서도, 아내에게까지 이어져 벌을 내리는 듯한 하늘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온몸이 떨리고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지만,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힘들었던 내 경험들에 비추어 볼 때, 스위스보다는 한국에서 수술을 받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아내에게 이야기했지만, 처가 부모님께서 걱정하시는 게 싫고, 집에서 편안하게 치료받는 것이 좋겠다고 스위스에서 치료받기를 원했었다. 그 해 봄에 뇌출혈로 쓰러지셨던 아버님께서 중환자실에서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이미 한국에 다녀온 아내의 마음이 이해도 갔다. 다행히도 우리가 여름에 한국에 다시 들어갈 때쯤에는 많이 회복되시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때였기도 했다.

그다음 주에 바로 일정이 잡힌 수술과 입원, 그리고, 20번의 방사선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그 해 여름에 못 가고 미뤘던 한국 방문을 비로소 하게 된, 그 해 겨울에 나에게 공황이란 녀석이 또 찾아왔으니, 참 기구한 시절이었다.


모든 일상생활의 제약과 이로 인한 두려움 그리고, 일렁이는 불안으로 조금의 움직임도 쉽 지 않은 삶이 하루, 이틀 이어지면서, 밀려오는 좌절감은, '내가 또 왜?, 지난 4-5년간 내게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었는데, 주위 사람들은 다 건강하게 잘 사는데, 왜 하필이면 난데?'라는 울부짖음과 참을 수 없는 화로 바뀌었다. 내가 비록 아주 선량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주 나쁜 사람도 아닌, 때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던 나인데, 신께서는 왜 내게 이런 벌을 주셨을까 하는 신에 대한 원망도 시작되었다.


처음엔 두려움과 화 그리고 원망 외에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더 이상 나에게는 희망이란 것이 보이지 않던 어느 날, 큰 용기를 내어 발을 뗀 산책길에서, 무심코 올려다본 파란 하늘과 구름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였다.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볼에 스치는 차가운 바람도 느껴졌다. 얼마 전까지 지금의 힘든 모든 것들은 모두 내가 운이 나쁘고, 다 외부와 환경 때문이라고 탓했던 마음 한편에, 내가 이 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니, 조금이라도 불안을 낮추기 위해서는 '외부의 도움이 아닌 바로 내가 이 상황을 바꾸어야만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자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비로소 바닥까지 내려 온 나에게, 작은 마음의 변화가 이렇게 시작됐고, 그때까지 운, 주위환경, 신 등을 탓했던 마음대신에, 모든 불행과 불안의 중심에 나를 놓을 수 있었다. 내가 왜 공황이란 녀석을 만날 수밖에 없었는지, 불안에 취약했던 나의 성향과 나의 잘못된 생각 방식, 그리고 나의 고정된 행동 패턴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