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얼룩말이 되고 싶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동물 관련 방송을 보고 싶다면, 언제라도 수많은 채널에서 다양한 방송을 볼 수 있지만,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유일한 TV 프로그램은 '동물의 왕국'이었다. 아마도 동물원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맹수들의 진짜 삶을 볼 수 있어서 더 기다려졌던 것 같다. 등장 동물 중 역시 제일 인기 있었던 것은 사자나 표범과 같은 맹수들이었다. 특히, 사냥을 위해 몇 분 동안 사냥감만을 바라보면서, 쥐 죽은 듯 있다가, 전력을 다해 사냥물을 좇는 모습이 나오면, 처음에는 분명 사자나 표범의 삶이 궁금해서 보았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도망가는 사냥감을 응원하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곤 했었다. 특히, 무리를 지어있는 얼룩말 중 새끼를 목표로 사자가 공격할 때면, 안타까운 마음은 배가 되었고, 내가 말인 것처럼 같이 뛰곤 했었다.
얼룩말을 보고 사자가 무서운 속력으로 달려들 때면, 즉, 얼룩말이 사자의 먹잇감이 되는 상황에 닥치면, 그 짧은 몇 분 동안이지만 살기 위해서, 정말로 온 힘을 다해 도망간다. 그리고 나면(도망에 성공하면),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는 평소 모습으로 다시 돌아간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웠을까마는, 금세 그 일은 잊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안정을 찾는다.
공황과 동행을 한 이후로 나는, 삶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는 자극들을 직면하고 나면, 얼룩말과는 다르게 그 불안의 여파가 너무 오래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날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에는 솔직히 속으로 얼룩말을 부러워했던 때도 있었다. 단순하게 불안의 여파만을 따져보았을 때, 나는 얼룩말보다도 못한 존재이고, 심지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얼룩말보다도 못한 존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두렵게만 생각하는 불안의 반대 면까지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얼룩말이 절대로 부럽지 않을 것이다.
분명, 둘 사이 뇌 구조상의 차이점일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오래 동안 불안의 여파가 남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만약, 불안을 회피의 대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이것을 통해 배울 기회라고 생각한다면, 누가 더 유리할까?
우리는 비가 오고 나면 땅이 더 단단해진다는 외상 후 성장이란 말을 잘 알고 있다. 불행하게도 얼룩말은 불안을 금방 잊어버리는 대신에, 늘 사자에게 쫓기는 신세로 살아간다. 반면에, 비록 여파가 남더라도 내게 찾아온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면, 그다음부터 나에게 찾아오는 비슷한 종류의 불안은 더 이상 불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찾아오는 불안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는 이야기이다.
두려운 대상이 덜 두렵게 되거나, 아예 더 이상 두렵지 않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아니면, 비슷한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대한 연민을 갖게 되는 기회이기도, 몰랐던 주위 사람들의 소중한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기회일 수도, 그리고, 지금껏 잘못 매겨놓은 내 인생의 우선순위를 다시 올바른 순서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얼룩말이 부러웠지만, 이제는 더 이상 부럽지 않다. "불안으로 힘든 이 순간도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