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_2. 동행

2.1 나의 내면과 불안의 실체를 마주하기

by 크렁 아저씨

긴 비행을 마치고, 집에 잘 도착했다는 안도감도 아주 잠시였다. 비록 지금껏 경험했던 최악의 여행이기도 했지만, 여느 여행을 마친 때처럼 다시 일상으로 회복하려는 어떤 나의 노력들과 다짐들 마저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나의 모든 삶은 한국으로 출발하기 그 이전과 이후, 냄새와 색깔 모두 너무나도 달라져있었다. 지난 20년 동안 당연한 것이라 여기며,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느꼈던 모든 긴장의 순간과 과정들이 이제는 너무나도 큰 두려움으로 느껴졌고, 한 발자국도 더 다가설 수 없는 회피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아니, 사람이면 마땅히 해야 하는, 자고, 먹고, 깨어 움직이는 모든 순간들 마다, 마치 얼마 전 경험한 공황발작 때 숨 쉬는 방법을 잊어버린 듯이, 나는 지금껏 살아왔던 삶의 기본적인 방법들 모두를 잊은 듯했다. 계속 이어지는 불안함에 더해,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과정에서 생겼던 막막함과 두려움, 좌절감 등은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이다란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나는 점점 더 호수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그때, 내가 느끼는 불안에 대해 너무도 많이 두려워도 했지만, 그 실체에 대해 참 많이도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나에게 다가오는 것도, 잠시 곁눈질로 바라보는 것조차도 싫어서 치를 떨었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음을 알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이미 물 바닥에 닿아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조금씩 조금씩 그 불안의 실체를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심리학 재해석)_불안의 실체, (심리학 재해석)_불안 게이지


고개를 들자 불안의 반대편에 힘 없이 서있는 나 자신도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기에 중년에 들어선 지금 원망스럽게도, 모든 것이 두려운데 엄마 손에 이끌려 어린이집에 가야만 하는 어린아이처럼, 삶의 모든 것이 두렵게 되었는지도 고민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운이 좋게도, 그 해 호기심으로 시작한 사이버대학교에서의 상담심리학 강의를 수강하고 있었고, 절묘한 타이밍으로 신청 마감 마지막 순간에 올라탄 '노아의 방주' 같았던, 온라인 인지교육(전반적인 진행을 맡아 주셨던 분을 '선장님'으로 불렀었다)의 기회가 있었다.


발작이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공포에 떨고 있던, 12월 말 아주 늦은 저녁, 인지교육 담당 선장님으로부터 당사자의 의지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가 걸려왔다.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었던 시기였기에 그 분과 나누었던 내용은 세세하게 기억이 나질 않지만,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던, 굻고 차분했던 여자분(선장님)의 목소리는 잊을 수 없다. 그때의 느낌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만 이 상황을 맞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에게, 그래도, 지구상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상황은 특별하다고 생각한 그 당시는 그분이 말하는 그 어떤 내용도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도 없었다. 단지, 내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매주 일요일마다 새벽 2시(한국시간으로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온라인 교육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만 있었을 뿐이었다.


한편, 막연한 호기심과 은퇴 후 생길지도 모르는 작은 봉사의 기회를 위해 시작했던 심리학 강의는 일 평생 성공을 위해 자연과학과 경영/경제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던 나에게 굉장한 매력을 주었고, 이전에 미쳐 내가 가지고 있지 못했던 새로운 눈을 갖게 해 줄 것만 같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강의 수준과 질은 높았고, 30년 전에 경험했던 오프라인 강의보다도 교수님들은 더 열정적으로 느껴졌다.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테마들은 무슨 신화나 주술 같이 느껴지는 고전에서 출발해서, 뇌의 구조와 호르몬을 언급하는 최신까지 종횡무진했다. 특별히, 나에게는 프로이트와 융이 생각하고 만들었다는 이론과 내용들은 앞으로 더 깊이 공부하고픈 마음이 들도록 만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공황발작을 경험한 이후로는 이런 지적 호기심은 저 멀리 사라져 버렸고, 대신 숨쉬기도 힘든데, 내 삶에 직접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이 행위를 계속 더 해야 하는가로 바뀌게 되었다.


당장, 이곳 스위스에서 항불안제와 항우울제 그리고 수면제를 처방해 줄 의사를 찾는 것이 더 걱정스러운 나에게, 무엇보다 제일 필요했던 것은 아마도 공황과의 동행을 완전히 인정할 수 있는 삶의 바닥까지 내려가 있는 나를 만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온전하게 내면의 나와 불안을 마주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비로소, 바닥까지 내려간 나는 '나의 내면과 불안의 실체'와 마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