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_2. 동행

2.2 힘 없이 서있던 나를 마주하기_하편

by 크렁 아저씨

나를 돌아보면, 어릴 적 나는 부끄럼이 많고, 겁도 많은 아이였다. 선천적으로 모든 일에 예민했고, 작은 변화에도 적응하고 익숙해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도전에 필요한 새로움보다는 눈에 익은 익숙함이 편했던 것 같다.


이런 내가 학교 생활이나 사회에서 남들보다 앞서나가기 위해서 내가 갖추어야 할 것은, 다른 사람보다도 더욱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일찍 내렸고, 그것만이 내게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달려왔다.


매 순간마다 속으로는 떨리고, 긴장하고, 겁이 났지만, 그런 나를 감추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대범한 척 포장하면서 살아왔다. 겁이 더 날 수록, 준비를 더 철저히 해야 했고, 숨긴 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더 노력하면서 말이다.


내 실제 모습과 남에게 보이는 모습에는 큰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겉으로는 어떤 일에든 여유롭고 인내심이 많은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는 작은 것에도 조급해하고 급한 성격이었다. 아마도, 이런 이중적인 모습에 나는 나 자신이 직접 경험하는 만족감이나 성취감보다도 더욱더 남의 목소리와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더 믿은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나의 예민한 성격은 미래 상황을 예측하거나 준비하는 데 있어, 그리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재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는, 소위 분위기 파악을 빠르게 하는 장점으로도 종종 사용된다. 하지만, 대부분 이 장점을 긍정적인 쪽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미래 예측은 혹시라도 모를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준비하는 것으로, 분위기를 잘 파악하는 특징은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맞추거나 중요하지도 않은 모든 이들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사용해 버려서, 나의 정신 건강 면에서 장점은 더 이상 장점이 아니었다.


반복적으로, 내가 상상하고 준비한 대부분의 경우는 그저 기우이고 염려이었을 뿐, 실제로 일어난 것은 거의 없었지만, 장점을 잘못사용하는 과정을 멈추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렇게 많은 염려와 준비를 했기에 그나마 실패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여겼다.


더 많은 준비란 혹시 모를 리스크를 더욱 다양화시키고 세분화시켜서 염려할 경우의 수를 더 많이 만드는 것을 의미했다.


점점 나의 생각의 축은 더 부정적으로 기울어졌고, 다가올 미래는 기회가 아닌 준비하고 해결해야 하는 숙제라고 여겼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될수록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요구되는 나의 에너지는 더 많이 필요해져 갔고, 이렇게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 변화를 어떻게라도 피하려 애쓰며, 별로 남지 않은 익숙한 부분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생각이나 행동은 점점 굳어져 갔다.


일에 대한 나의 대처 능력은 적다고 생각하고, 모든 일들에는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다 보니, 내가 일궈낸 성공에 대한 감사함이나 기쁨은 줄면서, 실패에 대해서는 더 많은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여기며, 나 자신에 대한 불평과 비난은 늘어갔다.


이런 방식으로 이 세상을 살아온 나는, 불안이란 씨앗이 자라고 공황이란 열매가 만들어지기에 좋은 토양이었을 것이다.


결국, 나의 생각이 부정적인 축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순간, 비행기에서 공황이란 녀석을 만나게 되었다. 그 순간에도 내가 겪은 작은 답답함에 대해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나를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자신을 믿고 좀 기다리면 그냥 지나갈 것이라 생각도 못한 채, 그 불편한 느낌을 실체보다 크게 부풀려서 엄청난 염려와 공포를 만들어 냈으니, 내가 공황을 조우하게 될 것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단지 내가 그 녀석을 언제 만나느냐 하는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결국, 공황을 만나게 된 것은, 그 어떤 외부요인도, 다른 누구의 탓도 아닌, 내가 이미 가지고 있던 성향이었거나, 직접 내가 만들어낸, 생각 및 행동방식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비로소, 이 모든 원인은 바로 나였다고 인정하고 나니, 이 모든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가장 낮은 바닥에서 녹초가 되어 서 있던 나를 보니, 이렇게 힘들게 살아온 나에게 화보다는 가여운 마음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은 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이 상황 역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란 생각이 더욱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바닥 밑까지 떨어져서, 이 모든 상황의 원인이 나란 것을 완전히 받아들인 후부터, 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인 공황에 대한 이해노력과 공황과의 동행을 위한 노력을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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