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_2. 동행

2.5 동행일지-동행 후 겪는 매주 일요일

by 크렁 아저씨

일요일이면 새벽마다, 한국에서 하는 공황과 관련된 온라인 인지교육 강의를 듣는다. 어렵게 잠이 들어, 한두 시간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새벽 2시에 시작해서 4시쯤 끝나는 강의를 듣고 나면, 다시 잠들기 위해 많은 애를 써야 한다. 공황 이전에도 한번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들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단지 잠을 다시 위한 수고 정도가 아니라 거의 고통의 수준이다.


공황과 동행을 시작한 이후, 특히 어둠이 무섭게 느껴진다. 잠을 자기 위해 불을 끄고 누우면, 잠들기까지는 온 세상에 나만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더욱 무섭게 느껴진다. 그 순간은 머릿속 생각의 흐름이나 몸의 작은 변화까지도 더욱 뚜렷하게 느껴지는 때이기에, 만일 생각이 부정적으로 흐르게 되거나, 내가 두려워하는 호흡 불편함이 발생되면, 내가 경험하는 고통은 낮보다 몇 배가 된다.


이렇게 지낸 지 몇 주가 지났지만, 하룻밤에 이런 과정을 두 번 겪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


그러다 보니, 일요일 아침은 몸도 마음도 무겁고, 힘들다.


오늘 아침도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서 시계를 보니, 겨우 다시 잠이 든 것 같은데, 빨리 서둘러 준비해서 출발해야만 교회에 늦지 않을 시간이 되었다.


이미 그 순간부터 조급함이 들었던 것 같다.


아침을 대충 먹고, 샤워 후 옷을 입고 나니, 갑자기 약간의 불쾌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 느꼈던 불편함은 크진 않았지만, 이것이 계속 지속되거나 더 커질까 봐 하는 불안이 더 컸다.


차에 오르고 교회까지 운전하며 가는 30분 동안, 차 안에 있던 가족들에겐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내 안에서는 벌써 불안과의 씨름이 한참이었다. 차 내부의 더운 공기가 답답함을 더하게 하니, 처음 느껴졌던 불안의 수위가 더 높아진 것 같았다.


우선, 차 안의 실내 온도를 낮추고, 운전하는 동안 불안으로 긴장한 몸을 풀어주기 위해, 깊은 복식 호흡을 하려고 계속 노력했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올라온 불안에 맞서 싸울 유일한 수단인 깊은 호흡마저 듣지 않아, 금방이라도 큰일이 날 것 같은 생각이 불쑥불쑥 떠올라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본능은 생명에 위협이 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살기 위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더욱더 만들기 시작한다. 이때 생각을 바꾸거나 멈추는 것이 여간 쉽지 않다.


오늘도 생각을 멈추려 하는 노력들이 잘 작동되지 않았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파국적인 생각들에 내가 이끌려가기 때문에 이런 흐름을 끊는 것은 아직 나에게 무리인 것 같다.


그래도, 모든 것들이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습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당장은 아니라도 훗날을 위해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기 위해 계속 애를 썼다.


이런 순간에는,

온라인 인지교육에서 알려준 방법 중 하나로, 큰 소리를 질러서 주의를 딴 곳으로 돌려, 의도적으로 머릿속의 생각들을 멈추게 하는 방법이다. 주위에 사람들이 있어서 이런 방법을 쓸 수 없다면, 소리 대신 내가 지을 수 있는 최고의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어내는 방법도 있다. 그 과정은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전투력을 화 형태로 끌어올려, 떠오르는 생각에 공격을 가해 멈추는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심리학 강의에서 배운 내용 중 하나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억지로 막으려 하지 말고, 그냥 흘러가게끔 내버려 두는 방법도 있다. 억지로 막으려 하면 할수록, 계속해서 생각이 더 떠오르니, 시냇가에 떠내려가는 나뭇잎 위에 내 생각을 살짝 올려서, 그냥 흘러가도록 하는 상상을 함으로써 떠오르는 생각이 나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아무리 방법을 안다해도, 아직 나에게는 무리였다.


교회에 도착해서 목사님과 교우들과 조심스레 인사를 나누고 예배당에 들어가 앉으니,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실수라도 하면 어떡하나 하는 또 다른 새로운 불안함이 생겼다.


갑작스럽게 공황이 나타나면, 나에게 향할 시선들이 떠올라서, 계속 신경이 쓰였다.


다시 예배당을 나갔다가 좀 안정이 되면 들어올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한번 이렇게 회피하면, 다시 또 들어왔을 때는 더 힘들 것 같은 두려움이 들어서 그렇게 하는 것도 망설여졌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복식 호흡과 몸의 이완이었다.


이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게 된다. 특히, 목, 어깨, 그리고 가슴까지...

먼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편한 방법으로 호흡을 하자.
연습이 되어있지 않다면, 복식호흡이나 다른 특별한 호흡도 필요없다.

수영을 할 때, 호흡이 딸린다고 고개를 물 밖으로 높게 쳐들고, 급하게 숨을 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중에 수영이 좀 익숙하게 되면, 이런 행동들이 오히려 호흡불편을 야기하고, 빨리 숨을 쉬려는 행동들이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게 만들어, 수영을 계속할 수 없게 만들게 된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에게 발생한 이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이런 상황이 깊지 않은 수영장에서 발생했다면, 언제든지 중간에 멈추고 숨을 쉴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공황과의 동행에서 이런 순간이 오면, 발이 닿지 않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수영을 하는 것과 같다. 유일한 해결책으로 온몸에 힘을 빼고 편하게 호흡을 유지하는 것만 존재하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하는 수영말이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수록, 온몸에 힘을 빼고, 최대한 천천히 숨을 쉬자. 만약, 이번 숨으로 충분하지 않으면, 다음 숨으로 보충하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렇게 버티고 있었는데, 드디어, 예배 전 찬양이 시작되었다.


찬양을 조심스럽게 따라 부르다 보니 오히려 호흡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들었던 생각과는 다르게, 조금씩 불안이 가라앉았다. 한번 안정감이 들기 시작하니, 이대로라면 예배를 잘 마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들었다.


오늘도 역시 미리 내가 힘들어하는 상황을 만들어 상상한 결과, 미리 불안을 끌어왔다.


사실 교회에서 불편한 상황이 되면, 언제든지 밖으로 나올 수 있는데, 그 행동이 또 남의 눈에 띌까 염려한 것이 후회가 된다. 이제는 덜 남의 시선에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집에 와서 갑자기 호흡이 편해진 계기가 어디에 있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혹시, 따라 부른 찬송 때문인가?,

아니면, 찬송을 한 키 낮추어서 저음으로 불렀던 것이 복식 호흡에 도움이 되었나?


군대에서 구보할 때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군가를 부르도록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인 생각도 들었다. 아니면, 그 순간 불안에 쏠려있던 나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 그런 것 인 줄도 모르겠다.


이렇게 쉽지 않은 일요일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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