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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만년필 Sep 15. 2024

생각보다 별로네, 아테네

터키-발칸반도 여행기(8)

아테네와 그를 품은 그리스에 대해 갖고있던 내 배경지식은 유럽인들의 정서적 고향, 자존심, 고대건축의 정점, 반드시 가봐야 할 관광지. 이런 느낌이었다. 그만큼 부풀어있지는 않았지만 나도 기대감을 안고 이 도시에 왔다. 그러나 아테네에 도착하고나서 여러 지점에서 그리스의 실상을 볼 수 있었고,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나중에 테살로니키를 향하는 버스안에서 만난 그리스 친구가 이야기해줘서 많이 이해됐지만, 내가 잘 못 본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도시 인프라는 보통의 유럽 도시가 오래되서 예전 설계의 한계로 발전의 한계를 갖고있는 수준을 넘어서 많이 낙후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시 기반에 해당되는 철도/공항등 시설들 뿐만 아니라 관광지를 조금 벗어나면 먼지가 가득쌓여 방치되지 몇년은 된 것 같은 차량을 쉽게 볼수 있었다. 돌아다니는 차량도 경제난을 겪고있는 튀르키예보다도 오래된 연식의 차량이 대다수였다. 특히나 실망한 사건이 있었는데, 첫째날 산책을 하며 대형 쇼핑몰 옆에 방치된 쓰레기수거통을 봤는데 거기서 나온 쓰레기국물이 거리를 덮어서 비켜갈 수가 없었다. 피해가려고 조심조심 걸었지만 신고있던 새 흰 운동화에 기름찌꺼기가 묻는 참사가 일어났다. 돌이켜보면 세계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일이지만 그날은 아테네에 첫 인상을 만드는 큰 사건이었다.



아테네에 현지 사람들은 되게 젊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간 지내며 전반적으로 이 도시는 젊은사람이 많고 평균연령이 낮아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심지역에는 관광객들이 워낙 많았는데 이지역 로컬 사람들과는 확연히 구분됐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스 외곽지역이나 섬으로 여름에 빠져나가고 그리스의 경제는 관광에 60%이상 의존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와는 꽤나 다른 환경임에는 분명했다.



둘째날 아크로폴리스와 판테온을 보러 아침일찍 나섰다. 지하철을 이용해 아크로폴리스역에 내렸는데, 마침 그리스에서 음악축제가 열리고있다는 광고판을 발견했고, 오늘 공연이 있었다. 곡을 봤는데 꽤나 프로그램이 괜찮고 야외 원형극장에서 공연을 한다기에 오래 고민하지 않고 200유로정도 되는 티켓을 구매했다.



판테온과 아크로폴리스는 관광객이 워낙 많아 시간제 입장제로 관리하고 있었는데, 다들 기대한 대로 멋진 판테온 신전과 고대도시를 볼 수 있었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건 조금 다른것이었다.

Tourist go home! Fuck the system!

독일에서 많이 봤던 그라피티였지만 이 나라 그라피티가 담고있는 메시지는 느낌이 강력했다. 그리스어가 아닌 영어로 작성된 글귀는 그들의 분노를 보여줬다. 그리스는 유로존 통합 이후 최고의 경제 활황을 겪었지만 금융위기이후 현재 IMF구제금융을 겪고 있다고 했다. 국가 인프라와 토목사업은 성장을 멈췄고 관광사업으로 그리스 경제를 유지하고 사는 듯 했다.


아크로폴리스 올라가는 길목에 플룻으로 버스킹을 하는 여학생이 있었다. 여행중 버스킹을 해서 경비를 충당해보겠다는 꿈을 갖고있었기에 플룻이나 바이올린으로 버스킹하는 친구들을 보면 오래 지켜보는 편인데, 15분정도의 레퍼토리를 꾸미고 이를 계속 반복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내려와서도 같은곡을 하고있기에 조금 아쉬웠지만 충분히 기분좋게 해줘서 고마웠다. 이와더불어 아침에 공연을 예매해 뒀기때문에 하루종일 마음이 설렜다. 일단 곡 구성이 거를 수 없는 조합이라 우선 예매했는데, 아크로폴리스 구경을 하기 위해 올라가다가 저녁 공연에 사용될 야외 원형극장을 봤고 보고나니 더 기대가 됐다. 천년이상 된 공연장에서 들리는 사운드는 어떨지 상상이 잘 안갔다. 일찍 관광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누워서 좀 쉬었는데 쉬는동안 한인민박 사장님께 오늘 공연이 있다는 정보를 알려드렸더니 바이올린을 한다는 나를 굉장히 신기하게 보셨다. 본인도 예술대학을 나와 주변에 음악하는 1세대 예술인들이 많이 있다고 자랑도 하셨다.



기대를 많이했지만 공연 세시간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공연시간까지 멈추지 않았다. 빗줄기가 강한편도 아니어서 혹시나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공연장까지 가서 기다렸는데, 우연히도 가는길에 금관악기 연주 단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신들 왜 여기에있냐 라고 물으니 공연은 취소됐고 방송을 위해 클립을 따야해서 그걸 녹화하기위해 간다고 했다. 공연은 취소됐고 아쉬워하는 사람은 나 뿐 아니라 백여명이 공연장 앞에서 아쉬워했다. 아무 소리도 못 듣고 갈 뻔 했지만 좀전에 만났던 브라스팀의 연주를 10분정도는 들을 수 있었다. 아쉬움 와중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공연장 앞에서 서성이던 백여명의 사람들 중에 어떤 동양인이 굉장히 오랜시간 기다리는 관객들을 촬영하고 있기에 지켜봤다 .나도 배고파서 빵을좀 사와 먹는중이었기에 꽤 오랜시간 그의 활동을 지켜봤다. 조금 자세히 보니 한국인 인 듯 하여 가서 말을 붙여봤다. 여의도 근처에서 사는 촬영감독일을 하는 친구였다 .꽤나 클래식한 특이한 카메라로 세상을 담는 이 친구와 영상이야기를 조금 하며 아크로폴리스 야경을 볼 수 있는 야경 포인트로 같이 이동했다. 덕분에 꽤나 운치있는 사진도 남길 수 있었고 낮과는 다른 아크로폴리스 야경도 감상했다. 야경을 보는 것 까지 포함해서 아테네 관광은 2-3일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다음 여행코스로 발칸반도 서쪽인 알바니아쪽 루트를 선택할지 우측 불가리아나 가운데 북마케도니아를 선정할지 고민하다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한인민박 사장님께서는 발칸반도는 볼게 없다고 강조하시며 그리스에 온 이상 메테오라는 꼭 봐야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리스 문화유산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계신 사장님이 거듭 강조하시기에 여긴 꼭 들려야겠다 싶어 다음날 아침일찍 메테오라로 기차를 이용해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보통 당일치기나 1박2일정도로 아테네에서 메테오라를 다녀오기도 한다는데, 나는 북쪽으로 계속 향해 나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일단 그곳 구경을 하고 어디로갈지 결정하기로 했다.



기차표를 온라인으로 예매하려고 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것이 있었다. 분명 기차로 이어진 길인데 중간에 한 지점에서 내려 버스로 환승해 이동하도록 안내하는 것이었다. 기차표 예매 시스템에서 그렇게 안내를 하니 이해가 되지 않았고 호스텔 사장님께서는 직접 기차역에 가면 다 표가 있으니 예매하지말고 직접 아침일찍 가보라고 말씀하셨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려했지만 감기기운이 있어 한시간정도 예상보다 늦게 기상했고 느즈막히 기차역으로 갔는데 그리스어로 적혀있는 기차 전광판을 보고 멘붕을 느끼다가 역무원의 도움으로 표를 예매할 수 있었다. 다만 표는 오후표밖에 없어서 어제 만났던 촬영감독 친구와 그리스 샐러드로 식사를 하고 관광지 중심에 있는 성당도 볼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그 친구가 자기는 너무 많이 가져왔다며 라면과 햇반을 줬는데, 한인마트가 없는 터키/그리스를 지나왔기 때문에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다. 짧은 2박의 아테네 여행을 마치고 사장님이 특히나 강조하신 메테오라에 대해 많은 기대감을 안고 기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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