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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만년필 Sep 23. 2024

빡친 그리스 친구와 테살로니키로

터키-발칸반도 여행기(10)

버스 좌석예약시스템에서는 보통 좌석을 지정해서 예매하곤 하지만 실제로 이용을 해보면 승객들이 이를 무시하고 대강 빈좌석에 앉는 일이 많다. 터키에서도 그리스에서도 대부분 그런식 이었다. 다만 좌석의 주인이 나타나 여기 내자리라고 비켜달라고 하면 비켜주지 않을 수는 없고 도미노처럼 자기자리를 찾아가는 행렬이 생기곤 한다. 메테오라에서 한국외대 학생들과 대화를 좀 하다보니 그들 근처에 앉았는데 백인 어르신이 본인 자리라고 하시기에 원래 내 자리로 이동했다. 그자리에 이동하면서 세시간가량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Rigert라는 친구가 앉아있었다.


처음에는 찰과상을 입어서 그냥 보기에도 불편해보이는 나를 걱정해주며 왜 다쳤냐고 먼저 물어왔다. 칼람바카/메테오라에서 스쿠터를 타고 다니다가 그랬노라고 이야기했더니 그리스의 도로상태는 지난 20년동안 제대로 된 보수가 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도로 상태가 매우 안좋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대체 20년동안 이나라에 무슨일이 있었냐고 물어봤더니 그는 상당히 긴 시간동안 그리스의 정치/경제 상황과 자기 삶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다. 우선 대화를 하며 든 첫 느낌은 내 영어실력이 프로젝트 진행하고 회의 주최하고 하는데는 충분하지만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 특히 정치에 대해 설명하며 우리나라에 발생했던 큰 사고들에 대해 설명하는데는 부족하구나 라는 점이었다. 1년전 할로윈데이에 있었던 이태원참사를 영어로 설명하는것과 대통령이 아닌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을 영어로 설명하는건 나에게 절망감을 심어주었다.


어쨌든 이 친구와 그리스의 경제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아테네에서 내가 느낀 감정에 대해 말해줬다. 도시가 크게 번영했다가 이제는 사람이 다 빠져나가 도심 외곽지역은 점점 유령도시화 되가는 과정으로 느꼈고, 아테네에 돌아다니는 자동차도 많이 노후화된 것 같다고 했더니, 내가 제대로 봤다고 이야기해줬다. 본인 가족은 20년전 알바니아에 대형 정치/경제 사고로 인해 그리스로 피난와서 자리를 잡은 가족인데 그당시 많은 외국인들이 유로존에 편입된 그리스에 꿈을 안고 건너왔다고 한다. 그때만해도 유로존 지원금을 받아 사회 인프라에 투자하고 이를기반으로 나라가 많이 발전할 줄 알았는데, 정치인들은 이걸 자기 주머니에 착복하기만 하고 나라에 아무것도 해준게 없다고 한다. 그가 특히나 분노한것은 자기 출신나라인 알바니아, 공산주의 독재자들은 뭔가 비리를 저지를건 다 저지르지만 적어도 기본적인것들은 할 건 해줬는데 그리스 정치인들은 아무것도 안하고 그 많은돈을 다 꿀꺽하기만 했다는 것이다. 그의 직업은 대형 트럭 기사였는데 우리가 버스를 타고 이용하는 이 길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줬다. 몇 해 전 기차가 사람의 부주의로 양방향으로 달리던 열차가 정면충돌하는 대형사고가 있었고, 그 여파로 인해 기찻길이 멈췄다는 것이었다. 몇 해 동안 인프라는 재정비되지 않고 있으며 이 일이 그리스의 현 상황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했다.


내가 향하고있는 테살로니키는 그나마 좀 나은 곳이라고 했다.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그는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도시이며 나도 분명 좋아할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부모님이 아테네에서 영어 어학원을 운영하셨기에 본인은 영어를 할 줄 알지만 대부분 그리스인은 영어를 하는게 당연하지는 않다는 이야기도 해줬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며 나도 깊이 빡쳐있는 상태라는 이야기를 전달했는데, 앞서 이야기했든 표현력에 한계를 겪고 좌절했다. 어쨌든 유려하진 않지만 뜻은 통했으니 다음번엔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모든 말을 시작할때 “Bro, let me tell you something” 이라고 내 관심을 얻어냈는데 그 말투가 계속 생각난다.

친구가 말한대로 테살로니키는 매력적인 도시였다. 2천년이나 된 이 도시는 마케도니아지역 중심지로 그리스 2에도시라고 하니 우리나라 부산정도 느낌으로 볼 수 있다. 버스를타고 우선 중심광장에 가서 사람들을 구경했다. 아테네에 비해 이 지역 사람으로 보이는 젊은친구들이 되게 많았고, 다들 표정도 좋고 행복해보였다. 바다가 보이는 광장에 앉아 한참 생각하다가. 이런도시라면 다음에 또 와도 되겠다 하는 감상이 들었다.


여기서는 1박만 하고 바로 본격적인 발칸반도 여행을 하기 위해 떠나게 되는데, 몸이 아파 호스텔에서 지내기 불편하기도 하고, 오늘 생겨버린 빨래들도 해결해야 하기에 에어비엔비에서 숙박하기로 했다. 예약확정 메시지를 받고 체크인하러 갔는데 방 자물쇠가 고장났다며 비밀번호가 아닌 수동 키가 있는곳에 대한 정보를 장문의 메시지로 보내줬고 이걸 찾는데 한참 걸렸다. 지구반대편 그리스에서 영어로 방탈출게임을 하는 느낌이었다. 힘들었지만 어쨋든 방에 무사히 체크인하고 개인정비를하며 상처를 보니 며칠간은 좀 요양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저녁으로 건물 1층에서 수블라키를 맛잇게 구워주는 가게를 들러 한상 거하게 먹고, 다시 바다를 구경하러 다녀왔다.

테살로니키는 너무 아름다운 도시다. 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여기 친구들은 담배를 말아 피우고 맥주를 한잔씩 했다. 여행중에 아름다운 풍경을 볼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누군가와 함께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20년전 호주에서 그랬던 것 처럼, 여기도 다음에 사랑하는 사람과 와 봐야지. 멋진 바다와 석양을 감상하고 숙소로 돌아와 내일 불가리아로 향하는 Flixbus를 예매하고 일찍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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