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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만년필 Sep 26. 2024

영감이 되는 사람들, 세르비아 니슈

터키-발칸반도 여행기(12)


니슈라는 도시에 처음부터 갈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다. 여전히 발칸반도 여행 경로는 어디서 종료할 지 정해지지 않았고, 다만 구 유고슬라비아의 심장 베오그라드를 향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을 뿐이었다. 마침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베오그라드를 향하는 직통버스를 놓쳤고 중간 도시인 이슈에서 머무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가는동안 길가에 끝없이 펼쳐졌던 해바라기 꽃들만큼, 가서 만난 사람들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스여행중 미리 공부하고 예상했던 대로 이곳 발칸반도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가 특히나 즐거웠고 인상깊게 남았다. 이슈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은 그중에서도 깊은 울림을 줬다. 이번 여정 처음 길게 대화를 나눈건 버스에서 만난 샤샤 라는 아저씨다. 그는 다친 내 팔을 보며 어쩌다 이렇게 다쳤냐고 말을 걸어왔다. 그는 본인이 세르비아 핸드볼 국가대표팀에 속해있었고 수원에서 열렸던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방문했었다고 했다. 니슈 외에 다른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하니 Novi Sad 라는 도시에서 음악 축제가 열리고 있으니 가보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내 상처에 대해서도 버스를 내리면 약국에 가서 이걸 꼭 사서 바르라고 약들을 알려줬는데, 타인이 보기에 내 상처가 아파보이겠다 생각은 했지만 내입장에선 딱지가 자리잡아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니었다.


니슈에서 숙박은 호스텔로 정했고 터미널에서 호스텔까지는 걸어서 20분정도거리였다. 오후 퇴근시간즈음에 도착했는지 여유롭게 공원을 거닐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세르비아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한적한 시간이 마음에 들어 짐을 풀자마자 다시 광장에 나와 마트에서 간식거리를 좀 사서 한참을 구경했다. 옆자리에 노부부가 앉으시길래 가볍게 인사하고 궁금한것들을 좀 물어보려 했는데, 영어를 하시지 못해 대화를 길게 이어갈 수는 없었다. 다만 이곳 사람들은 모두 손에 팝콘을 들고 다니며 세르비아 사람들의 생김새가 꽤나 멋지다는 정도의 이야기는 나눌 수 있었다.


한참동안 구경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해결하기위해 구글맵을 탐색했다. 요즘 아시아 스타일 음식이 자꾸 생각나서 중식당을 찾았고 평점이 괜찮은 식당을 하나 찾아 방문했다. 세르비아 소도시에 중식당이 있는게 신기했는데 들어가니 중국사람들이 열명이상 있어서 더 놀라웠다. 이지역에 기반을 잡고있는 사람들로 보였는데 내가 들어오니 당연히 나도 중국인으로 보는 듯한 눈치였다. 먹고싶었던 차우면을 주문하고 한참동안 그들이 하는 행동을 지켜봤는데, 상당히 남성중심적인 문화라는게 보여 신기했다. 마치 우리나라 20년전 느낌이었는데 술에 취한 남자들은 거들먹거리고 여자들은 그들을 보필하는 모양새였다. 그들의 시끄러운 대화를 듣던 중 기다리던 음식이 나왔고 맛있게 즐긴 뒤 식당을 나왔다. 많은 중식당이 자연스럽게 그러는 것 처럼 이곳도 신용카드를 받지 않았다.


숙소에 복귀해 씻고나와서 쉴만한 장소를 찾다가 손빨래를 하고있는 동양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걸 꽤나 좋아하는듯 했는데 일본식 영어를 불편함 없이 구사하며 적극적으로 젊은사람들과 소통하는 70대 노인의 모습이 생경해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와 30분이상 대화를 나눴는데 여러가지 영감을 주는 대화였다.

첫째로 여행 경로를 이야기하다 보니 내가 앞으로 어느 도시를 가야할지 정하지 못해 막막해하는것과는 다르게 그는 이번엔 어디를 다녀왔고 다음엔 어디를 가고싶다는 생각을 갖고있었다. 이분이 특별한 점은 20대부터 71세인 지금까지 쉬지않고 여행을 다녔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가고싶은곳이 있다는 점이다. 나는 어딜 가야할지 정하는것이 여행에서 힘든 요소중 하나여서 고민이라 하니 그는 어떤 지역이든 뭔가 아는게 있어야 궁금한게 생기고 가고싶단 마음도 생긴다고 했다. 첫 번째 가보는 곳은 일단 발을 딛고 그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것들이 흥미가 가는지 우선 겪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를리 없는데 완벽한 여행여정을 갖고싶어했던 내 생각이 얕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많아 불편한점이 많을텐데 호스텔에서 숙박하는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고 여행중 숙박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당연히 그가 호스텔을 선호하는 이유는 비용때문이고 다른사람들과 대화하는 재미를 빼면 여행재미가 확 줄어버리기때문에 당연히 호스텔을 이용한다고 했다. 일부 불편한 점이 있지만 그정도는 감당할 만 하다고 하며 보통 일주일정도 한 호스텔에서 지내며 동네를 구경한다고 했다. 가끔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면 빨래를 하기 좋다는 꿀팁을 그에게 전달하고 같이 찍은 사진을 AirDrop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그와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생각지도 못한 흥미로운 사람들과의 대화는 내가 여행을 다니는 중요한 이유중 하나다. 그런면에서 니슈를 들린것은 너무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몇십년간 있을 내 여행에 중요한 힌트를 얻은 것 같아 두근대는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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