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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만년필 Sep 29. 2024

베오그라드, 유고슬라비아의 심장

터키-발칸반도 여행기(14)

발칸반도를 여행하기위해 역사공부를 하다보니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가 등장했다. 어린시절 올림픽에서 혹은 역사시간에 들어본듯한 이름인데 아는바가 없어 궁금증이 생겼다. 조금 더 알아보니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발칸반도의 갈등이야기 중심에 항상 유고슬라비아가 등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티토 라는 지도자가 그 중심에 있었던걸 알게 되었다. 옛 유고슬라비아의 수도였던 Beograd는 현재는 세르비아의 수도이고, 80년에 사망한 티토의 무덤도 여기 있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만난 중년 가이드 선생님과의 대화 이후로 사라예보 혹은 베오그라드를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여행루트에 베오그라드를 담았다. 베오그라드는 Beo가 하얗다는 뜻이고 Grad가 도시라는 말이어서 하얀 도시라고하는데 실제로 하얀 성곽을 보지는 못했다. 다만 둘째날 베오그라드 Fortress를 보고나니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였음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니슈에서 베오그라드까지는 차로 네시간정도 거리였다. 이번에도 호스텔을 예약했고 Flixbus에서 내려 Beograd 1day pass를 앱으로 구매해 트램을 타고 호스텔로 이동했다. 호스텔은 보통 2층침대인데 아래쪽 침대를 상석으로 보통 생각한다. 2층에 오르내리는게 은근 불편하기 때문이다. 체크인을 할때쯤 방에 들어가니 빈 자리가 2층밖에 없었는데 방에있던 한 친구가 나 지금 나가니까 너 아래층 쓰라고 나에게 자리를 양보해줬다. 그는 굉장히 억울한 사정이 있는듯 할말이 많아 보였는데 들어보니 좀 황당하긴 했다. 영국에서 유학중인 인도출신 체스선수인데, 베오그라드엔 체스 국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왔다고 한다. 호텔측에서 예약해준 호텔에 체크인하기위해 들러 그냥 체크인했으면 별 문제 없었을텐데, 리셉션에있는 여성 직원에게 “How much for the one night?” 이라고 물어봤단다. 이 질문을 들은 상대방은 본인에게 성매매를 제안하는것이라고 오해했고 세르비아 경찰이 와서 본인을 연행했다는것이다. 며칠 세르비아에 있어보며 이 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는게 아닌건 알았지만 좀 황당했다. 아마 이 친구가 인도출신이라는점과 말이 좀 많은편이라는게 오해를 더 키웠을 수 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그는 인도 대사관, 세르비아 경찰 그리고 대회 주최측과 수차례 통화를 하고 세르비아에서 바로 추방되는것으로 결정되어 이 호스텔에 체크인 하자마자 바로 영국으로 돌아가는 형국이었다. 억울한 이야기를 한참 들어주고 그는 떠났고 조금 피곤해져서 남은시간은 침대에서 쉬었다.


출출한 저녁녘이 되어 일어나 근처에서 간단하게 요기하고 세르비아사람들이 항상 찾는 팝콘을 사들고 시내를 한바퀴 돌았다. 추방당한 인도친구가 여긴 치안도 안좋고 경찰도 못믿는다고 겁을줘서 마음이 엄청편하진 않았지만 돌아다녀보니 그렇게 문제가 있는 도시는 아닌 듯 느껴졌다. 한낮 온도가 36도를 쉽게 넘기는 이 도시의 열기를 피해 밤에 공원에 나와 친구들과 맥주마시며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니슈에서도 느꼈지만 보통 생각하는 동유럽 강한남자와 매력적인 여자들은 우크라이나보다는 세르비아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모가 참 매력적인 세르비아 사람들의 저녁을 바라보고 숙소로 돌아와 다음날을 준비했다.


뜨거운 날씨지만 꼭 보고싶었던 장소들이 있어서 아침일찍 숙소를 출발했다. 첫번째는 베오그라드 성곽이었다. 15세기경 콘스탄티노폴리스도 함락시킨 오스만 제국은 이곳 베오그라드의 성곽까지 진출하고 그 위로는 진격하지 못했다고 한다. 성곽에 올라 다뉴브 a.k.a. 블타바, 도나우 강의 모습을 보니 왠지 여기까지가 내 발칸반도 여행 북진의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슬람 제국군이 여기서 여행을 마친 것 처럼 나도 여기쯤에서 마치는것 도 괜찮아보인다는 느낌이었다.


성곽을 둘러본 뒤 유고의 상징적인 인물 요시프 티토의 무덤을 보기위해 이동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계신 봉하마을, 레닌이 묻힌 모스크바 붉은 광장 다음으로 정치지도자가 묻힌곳을 방문하는건 세번째였다. 도시의 관광명소들을 둘러보는것과는 달리 볼 만한 것이 있어 간다기보다 그 사람의 생애를 살펴보며 그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되새겨 보기 위한 목적으로 티토의 무덤을 찾았다.  봉하마을의 노무현대통령 자리처럼 화려한 느낌보다는 찾는이에게 담담하게 말을 거는 것 같았던 티토의 무덤에서 한동안 사색을 하고 나왔다. 그의 사후에 여러갈래로 분열된 유고슬라비아의 상황을 보면 이 사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큰 중심점 같은 사람이었다는걸 느낄 수 있다. 허나 마치 징기스 칸, 테무진이 죽은 뒤 몽골 제국이 여러 개로 분열 된 것 처럼 강력한 권한을 가진 권력자가 지나간 뒤에 다시 힘이 분열되고 많은 갈등이 생기는 것은 필연이구나 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대단한 권력을 가져서가 아니라 많은 갈등들을 봉합해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는것이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이라는걸 다시 상기하게 되었다. 묵직하고 화려하지 않은 그의 깔끔한 책상에서 티토에 대한 기억을 안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베오그라드에서 마지막으로 보고싶었던 관광지는 성 사바 대성당이다. 비교적 최근에 완성된 성당인데, 모든 성당을 찾아다니는 편은 아니지만 여긴 이유는 모르지만 몹시 가보고싶었고 가보고나니 방문하지 않았으면 크게 후회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평범했던 외관과는 다르게 내부는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나의 마음을 황홀하게 했다. 온통 금색으로 차장된 성당 내부 가운데 바로 보이는 천장에는 예수의 인자한 얼굴이 있었고, 마치 나에게로 와서 안기라고 말을 거는 느낌이었다.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의 내벽이 원래 온통 금박 모자이크로 구성되어있었다고 했는데 그 완성품을 이슬람 정복전쟁의 마지막 도시인 이곳 베오그라드에서 만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황홀한 기분으로 한참동안 성당 내부를 지켜봤고, 글을 읽는것이 보편적이지 않았던 시절 성당의 성화들이 나같은 일반 민중에게 어떻게 마음으로 다가왔을지 짐작이 됐다. 너무 오래 바라보다가 다리가 아파 잠깐 바닥에 앉으니 가드가 와서 바닥에 앉을 수 없다고 제지했다. 덕분에 다행히 현실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고 마음을 정리하고 숙소로 복귀했다.



호스텔 침대에서 쉬다가 다음으로 어디를 갈지 생각해봤는데, 다뉴브강을 낀 포트리스와 성 사바 대성당을 마지막으로 이번 발칸반도 여행을 마무리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스탄불로 시작해 베오그라드에서 끝내니 역사의 흐름과도 일치했고, 마침 날씨가 너무 더워 더이상 밖을 오래 걷는 여행을 하기는 부담스럽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낮기온이 36도를 넘으니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저렴하게 이동할 수 있는 항공권을 검색했고 우선 시원한 독일 북부지역으로 이동하는것으로 결정했다.


호스텔에서 한국을 너무좋아한다며 질문세례를 퍼부은 아제르바이잔 친구와 한참 문학 이야기를 나누다 새벽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넘어가기 위해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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