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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만년필 Sep 25. 2024

친절한 불가리아, 편안한 소피아

터키-발칸반도 여행기(11)

다음 여행지로 불가리아 소피아를 고른 세가지 이유가 있다. 발칸반도 북쪽, 구 유고슬라비아를 향해 올라가려고 하니 서쪽 크로아티아 라인을 타고 올라가는 방법, 동쪽 불가리아를 통해 올라가는 방법이 있었다. 알바니아를 지나 크로아티아를 지나는 경로는 멋진 해안 관광도시들을 품고있어 매우 매력적이었다. 첫째로 앞서 다녀온 도시들에서 바다구경은 충분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로 유럽사람들이 휴가를 보내러 오는 지역이다보니 발칸반도의 큰 매력중 하나인 저렴한 물가를 체험할 수 없다는 면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불가리아쪽이 더 생소해 이번이 아니면 가볼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가리아 여행을 준비하며 Youtube에 업로드된 여행 영상들을 많이 시청했는데, 많은 영상들이 친절함, 예쁜 여성들, 저렴한 물가 같은 주제어들을 담고 있었다. 테살로니키 올라오는길에 만난 친구에게 이런게 참 신기하다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친구 왈 나라가 가난해 딱히 할 건 없고 마약에 청정하니 그나라 사람들이 순박하고 친절할 수 밖에 없지 않겠냐 라고 이야기해줬다. 우리나라 영화에서 그린 시골 총각들을 빗대 생각해보니 그의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유럽내에서 차를타고 국경을 넘는 일은 더러 있었지만 대게 별다른 절차없이 자연스럽게 지나가곤 하는데 EU국가와 비 EU국가를 이동하는 그리스-불가리아 여행에서는 이부분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국경을 지나며 사용하는 통화도 바뀌고, 통신사도 바뀌기 때문에 챙겨야 할 부분이 몇가지 생기는데, 불가리아는 상대적으로 챙길것이 많지는 않았다. 육로 국경 은 각국 출입국 사무소 사이에 중간지대가 있는 부분이 특이했다. 비행기 타기전에 출국심사받고, 비행기 내려서 입국심사 받는 과정을 걸어다니면서 진행하니 우리나라는 출국이 꽤나 어려운 나라에 속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앞선 두 나라와 불가리아가 달랐던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로 무알콜맥주가 있다는점, 그리고 도심에 한인마트가 있다는 점이다. 지난 몇주간 음주를 전혀 하지 않았고 간간히 무알콜맥주를 찾곤 했는데 없어서 심심하던차에 알콜프리 맥주는 되게 반가운 물건이었다. 숙박도 AirBnB에서 하며 며칠 쉬어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한인마트에서 라면과 만두를 좀 사서 방에 들어왔다. 소피아 관광은 좀 뒤로 미뤄두고 첫 이틀은 충분히 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소피아는 불가리아의 수도로 로마 유스타니우스 1세의 딸 소피아가 봉헌되었다고 알려진 성 소피아 성당에서 도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도시의 이름이 된 소피아의 모습은 동상으로 제작되 도시 중앙에서 볼 수 있다. 불가리아 정교회가 보존하고있는 오래된 성당들과 함께 보존된 유물들이 이 도시에 가장 큰 볼거리다. 쉬엄쉬엄 돌아보고 소피아의 청담동정도 된다는 길거리도 거닐어보면서 소피아 구경을 다녔다.


대통령궁의 교대식 같은 볼거리도 있었지만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해보고싶었던 한 가지는 멋지게 생긴 소피아 대학에서 학생식당 밥을 한끼 먹어보는 것이었다. 새로운 지역에 가면 가능하다면 그지역 대학에 가서 학생들과 대화도 해보고 학생식당 밥도 한끼 먹어보곤 하는데 이 도시는 대학이 꽤나 멋진 건물을 가지고 있어 도전해 보기로 했다. 어디가 학생식당인지 알 길이 없어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한 친구가 다가와 너 여기 무슨일로왔니? 하고 말을 걸어 왔다. 학생식당에서 밥한끼 먹어보고싶다고 하니 되게 신기해하면서 지금 기말고사가 막 끝난 종강시즌이라 식당운영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며 친절히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려줬다. 식당에 갔는데 불가리아 아주머니께서 현금밖에 받지 않으셔서 밥을 못 먹을 뻔 했는데, 1층에 ATM이 있어 다행히 밥한끼 얻어먹을 수 있었다. 공산권 향기가 많이 남아있는 식당이었는데 어찌보면 군대 취사장 느낌도 좀 났다. 배식구에서 바퀴벌레도 한마리 만났고 골라온 메뉴도 맛이 형편없어서 실망했지만, 여기 학생들은 이런거 먹고 사는구나 적당히 넘겼다.


다 먹어갈 때쯤 어떤 학생이 나에게 또 말을 걸어왔다. 한국인이냐고 물어왔는데 그렇다고 하니 본인도 한국혈통이라 반가워서 말을 걸어왔다고 했다. 바닥까지 싹싹 긁어서 먹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차 한잔 같이하자는 그의 제안에 선뜻 식기와 잔반들을 반납하고, 같이 학교 근처 카페로 향했다. 이 형님은 한국말을 거의 못하셨는데, 어렸을때 독일로 건너가서 길러졌으며 현재 불가리아 아내를 만나 독일과 불가리아를 오가며 생활중이라고 했다. 근처 공유오피스에서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계신데 잘생긴 아들과 예쁜 딸도 키우고 계셨다. 학식이 먹어보고싶었다는 내가 신기하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영어로 해외취업을 해보고싶다는 나에게 영어 토론 모임에 가보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여기저기 다니며 마음에드는 친구들이 보이면 망설이지 말고 말을 걸어보라는 조언도 해 주셨다. 조언만 해주시고 끝난게 아니라 짧은시간이지만 본인 사무실도 구경시켜주시고 근처 전시와 맛집정보도 알려주셨다. 친절한 벤자민 형님덕에 소피아 여행이 매우 기분좋아졌다. 그와 링크드인 프로필을 교환도 하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불가리아에서 체류하는 도시는 이 곳 한군데 뿐이었기 때문에 불가리아 음식을 꼭 먹어보고 싶었다. 맛집을 찾는 내 루틴대로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것 같은 레스토랑을 하나 찾았는데 상호가 Happy Bar & Grill 이었다. 3호점까지 있어서 확실히 유명한 집인걸 알수 있었다. 저녁에 이곳에 갈 계획이라고 하니 벤자민형님은 여긴 뭐 특별한건 없다고 Izbata Tavern이라는 로컬 식당을 추천해주셨다. 자기 친구들이 오면 보통 여기에 데려간다고 했다. 하지만 앞에 찾아둔 가게도 궁금했기에 이틀에 걸쳐서 두 레스토랑을 모두 가봤다. 불가리아 음식이 대단한 건 없었다. 터키식 그리스식 음식에 더불어 유목민 특유의 맛있게 고기굽는 스킬이 이나라 음식의 핵심인 듯 느꼈다. 따라서 불가리아 음식을 반드시 먹어봐야한다고 생각이 들진 않는다. 음식관련 한가지 더 이야기하면 발칸반도지역에서 아시아식의 noodle을 하는 집을 절대 믿어서는 안된다. 가는 지역마다 중식당이 있으면 들려봤는데 여기 사람들이 하는 볶음밥/면요리는 영 추천할 만한 것이 못된다.


나는 이 도시에서 총 3일간 체류했다. 다친몸을 좀 회복하고 여행멘탈도 다잡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너무 푹 쉬어 생활리듬도 깨져서 원래 계획이었던 베오그라드까지 가는 버스도 놓쳤고, 그렇게 된 김에 중간되시인 세르비아 니슈라는 도시에 들리기로 결정했다. 불가리아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동쪽 흑해연안 휴양도시를 한번 둘러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불가리아 여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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