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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크(突厥)'의 기원과 형성

by 박사력

튀르크 국가

오늘날 튀르크(註)계 대표적인 국가로 불리는 튀르키예(Türkiye, 구: 터키) 공화국은 서아시아 아나톨리아반도와 발칸반도 남동부에 영토가 걸쳐있고, 인구가 약 8,700만 명의 규모가 큰 국가이다. 튀르키예는 민족적 기원을 돌궐, 심지어 흉노에 두고 있지만, 엄밀히 얘기하면 그들은 튀르크의 방계 중 방계이다. DNA 분석 결과에 의하면 현재 튀르키예인은 튀르크인 유전자는 거의 희석되었고 유럽인·이란인·그리스인·아랍인(소수)의 혼혈이나 마찬가지다.(註) 또한 나머지 튀르크 국가(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단 이웃한 타지스키탄, 아프가니스탄은 이란계)와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도 해당 지역에 오래 거주한 인도유럽인·이란인(스키타이)·그리스인(셀레우코스 왕조)과 6세기말 이곳에 이주한 돌궐제국과 13세기에 정복자로 등장한 몽골제국과의 접촉으로 혼혈된 튀르크 국가이다.


(註) 중국 사서에서는 돌궐(突厥)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는 민족명이자 국명이었던 튀르크의 복수형 튀르퀴트(Türküt), 혹은 튀뤼퀴트(Türüküt)를 음차한 표기로 추정된다. 한편 튀르크를 투르크로 표기하는 학자도 있지만 '우리말샘'에 등재된 튀르크로 표기한다.

(註) 2010년, 영국 레스터 대학교 마크 조블링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브리튼 섬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유럽 대륙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DNA 분석결과 유럽대륙에 거주하는 1억 1천만 명이 넘는 남성이 보유한 독특한 Y 염색체가 현재 튀르키예인과 거의 일치한다고 발표했다. 즉 아나톨리아 평원에 거주하던 켈트인이 지중해 연안을 거쳐 스페인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를 거쳐 브리튼으로 왔다고 추정한다(켈트인은 오늘날 영국과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유럽 남부 지역에 많이 분포하는 인종으로 큰 키에 흰 피부와 금발이 많고 과묵한 성격을 가진 인도유럽어족의 일파이다). 이들이 아나톨리아 평원에서 유럽대륙으로 이동한 시기는 기원전 7000년경부터 기원전 2500년경 사이로 보고 있으며, 브리튼 섬으로 이주한 시기는 기원전 500-200년경으로 보고 있다. 마크 조블링 교수가 분석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오늘날 튀르키예인은 동쪽에서 이주해 온 튀르크인이 주축이 아니라 고대부터 아나톨리아에 거주했던 인도유럽인(켈트), 이란인, 그리스인 유전 형질이 다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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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크의 기원

1. 고대 중국 문헌의 기록

중국의 서위(西魏, 535~556)와 북주(北周, 557~581)의 역사를 기록한 "주서(周書)"에는 돌궐이 과거에 존재했다가 사라진 흉노의 다른 갈래(別種)로 흉노와 달리 부락을 이루었다, 또한 그들은 막북(漠北, 고비사막 이북)의 호게국(呼揭國, 일명 索國)에서 나왔다고 한다. "수서隋書"에는 톈산산맥(天山山脈) 북방의 바르콜 분지에서 기원해 간쑤 성(甘肃省) 일대 평량에 기거한 잡호(平凉雜胡)라고 했다.


2. 현대 중국 고고학자 저술

중국 신장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의 고대사 연구소 소장이며 신장사범대학교의 역사 교수인 설종정(薛宗正)이 1992년에 출간한 "돌궐사"를 살펴본다. 내용을 요약하면 돌궐의 조상은 중앙아시아 일대의 민족인 스키타이로 중국인들은 사서에 새인(塞人)으로 기록했다. 서방 사서에는 스키타이라고 하는데 북사(北史) 돌궐 전에는 선조(先祖)가 서해의 우측에서 기원한 것이라 하는데 서해는 카스피해를 말하고 소그디아 지역을 말한다. 기원전 8세기경 스키타이는 흑해 북부와 중앙아시아 초원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런데 기원전 4세기경 동방 원정에 나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에게 패해(야크사르 전투) 무리가 동쪽의 텐산(天山) 일대로 이주했다. 이후 한서(漢書) 서역전에 따르면 새인들이 분산해 여러 개의 소국을 세운 것이고, 소륵국(疏勒國, 소그드인이 만든 나라)의 서북 방면에 휴순국(休循國), 연독국(捐毒國) 등의 국가를 세운 것이라 했다. 기원전 173년경 흉노에 패한 대월지(大月支)가 하서주랑(河西走廊)으로 옮겨와 오손(烏孫)을 격파하고 그 일대를 차지했다. 이후 기원전 130년경 흉노에 의탁해 힘을 키운 오손(烏孫)의 수령 곤막(昆莫)이 일리강 유역으로 이동해 있던 대월지를 격파하고 오손국을 부활시킨다. 오손이 새로운 주인이 되자 토착 새인은 텐산일대로 이동하나 정착하지 못하고 동쪽으로 계속 이동해 돌궐의 기원인 색국(索國)을 세운다. 색국은 호게국(呼揭國)을 말하는데 북주서 돌궐전에는 흉노 북부에 돌궐의 조상이 색국을 세운 것이라고 말한다. "사기(史記)"에 기재된 흉노의 묵특선우(재위: 기원전 209~174)가 누란(樓蘭), 오손(烏孫), 호게(呼揭) 등 26국을 평정한 것은 흉노가 새족이 세운 여러 소국을 정벌해 편입한 것을 말한다. 돌궐의 조상은 오계(烏係) 혹은 호계(胡係)라고 하는데 남천(南遷)해 한족 지역으로 들어왔다. 수서(隋書)에는 이들을 하서주랑(河西走廊) 일대에 거주하는 평량잡호(平凉雜胡)라고 했다. 407년 흉노의 일파인 혁련발발(赫連勃勃)이 하(夏)를 건국해 평량잡호 7천 호를 군대에 배속시켰다. 이후 토욕혼(吐谷渾, 선비족 나라)의 왕(王)

모궤(慕鐀)에게 습격당해 북량(北涼, 한족 나라)의 경내로 도주했으나 북량도 북위(北魏, 선비족 나라)에게 멸망할 위기에 처하자 평량잡호는 북량의 왕족 저거씨와 함께 무위-돈황-선선-언기-고창을 거쳐 이동했다. 409년 북위의 태무제가 저거씨를 완전히 멸하자, 평량잡호 500호는 패주한 저거씨와 함께 금산(알타이)에 들어가 철공이 된다. 이로서 돌궐의 천년 간의 유랑이 끝나고 금산에 정착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현대 중국의 고고학자 설종정은 돌궐인의 뿌리 즉 원시 튀르크인은 새인(塞人, 스키타이)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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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튀르키예 고고학계

현재 튀르키예 고고학계는 원시 튀르크인이 장두형 인도유럽어족이 아니라 단두형 동아시아인과 백인종의 혼혈인 '유로피드 투라니드'(비공인 용어) 계통이라고 주장한다. 셀주크 제국과 오스만제국의 창건 세력으로 튀르키예 건국의 주도 민족이었던 튀르크인을 지금의 자신들의 인종적 정체성과 일치시키려고 튀르크인을 마치 백인종의 한 갈래인양 주장한다. 심지어 튀르키예 역사 교과서는 흉노제국도 튀르크(돌궐)인이 주요 지배층을 구성해서 세운 최초의 국가라고 기재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튀르키예 학계의 주장과는 다른흉노인의 DNA 연구 결과(註)가 발표되었다.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흉노의 지배계층은 주로 동아시아 유목민이었고 일부 지배층과 피지배층만이 원시 튀르크계와 스키타이계(오손, 격곤, 누란, 호게 등) 등이었다.


(註)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와 크리스티나 워린너(Christina Warinner) 미국 하버드대 인류학과 교수(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가 이끈 국제 공동 연구진은 지난 2023년 5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흉노제국의 서쪽 변방에 있었던 무덤들에서 발굴한 지배층 유골 18구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흉노의 귀족 계급은 하층 계급보다 유전적 다양성(혼혈)이 덜 했으며, 주로 동아시아인 계통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라고 발표했다. 정충원 교수는 앞서 연구에서는 몽골 일대 무덤에서 발굴된 유골 214구에서 채취한 DNA를 해독해 흉노제국이 다민족 사회였음을 알아냈다. 즉 지난 2020년 11월 막스플랑크 연구진과 함께 국제 학술지 ‘셀’에 흉노제국이 유라시아 동부에서 서로 다른 3개 유전자 집단이 융합하면서 형성되었다고 밝혔다.


4. 세계 고고학계

세계 고고학계는 원시 튀르크인이 동아시아인·인도유럽인·인도이란인(스키타이)이 복합적으로 섞인 인종이라고 보면서도 출발 인종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다. 최근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거 몽골 고원과 중앙아시아에 있었던 돌궐인의 피가 현재 튀르키예인의 피에 흐르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비율은 미미하다. 현대 튀르키예인 유전자의 대부분은 유럽인, 이란인 계열과 이웃한 남유럽의 그리스인 계열이다. 그 이유는 이미 서술했듯이 돌궐이 분열한 후 그 일부가 서쪽으로 이동을 거듭해 아나톨리아 반도에 정착한 뒤 이미 거주하던 유럽인, 이란인, 그리스인과 또는 이웃한 아랍인과 1,000여 년 기간 동안 혼혈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여타 튀르크 국가들도 원래 거주한 인종의 정체성과 혼합 비율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혼혈로 나타나고 있다.


글쓴이 가설

글쓴이는 원시 튀르크인이 동아시아/시베리아인에서 시작되었다고 추론한다. 근거는 언어의 뿌리가 곧 인종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즉 원시 튀르크인이 동아시아계와 인도유럽계가 섞인 혼혈이 맞지만 결국 그들의 언어가 몽골, 퉁구스, 에벤키어와 같은 동아시아계 언어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원시 튀르크인은 동아시아인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원시 몽골어와 튀르크어가 언제, 어떻게 분화되었지는 저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그들의 언어가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음은 오늘날 언어학계에서는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원시 튀르크인은 인도유럽인(아파나시에보 문화), 이란인(스키타이, 파지릭 문화), 그리스인(셀로우코스 왕조) 등의 사람들이 동쪽으로 이주해 동아시아인에 동화된 것이다. 그들이 동아시아인 언어에 동화되었기 때문에 튀르크어는 몽골어, 만주 퉁구어와 같은 계통의 언어로 형성된 것이다. 만약 동아시아인이 그들(주로 스키타이)에게 동화되었다면 오늘날의 타지크(타지키스탄)인처럼 원시 튀르크인은 이란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1700년경부터 생존을 위한 이동과 전쟁이 반복되는 유목 문화가 싹트기 시작했는데, 동아시아인/스키타이인의 원시 튀르크인은 주로 아무다리야강과 카스피해에서부터 알타이 산맥과 톈산(天山) 산맥까지를 배경으로 활동해 오면서 돌궐제국 등 여러 시대에 걸쳐 튀르크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현재 아시아 지역의 튀르크인은 생김새는 외관상 몽골 계통으로 보이지만, 돌궐제국의 인종은 몽골계통과 유럽계 두 형질을 모두 보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돌궐인과 몽골인은 문화적, 언어적으로 서로 영향을 미쳤지만 같은 민족은 아니다. 한편 중앙아시아에서 아나톨리아로 이주해, 현대 튀르키예인의 정체성에 주도적으로 기여한 11세기의 오구즈 튀르크는 동아시아인이 아니라, 이미 중앙아시아에서 수백 년간 이란계 등 서유라시아인과 혼혈이 진행된 '1차 혼혈' 상태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오구즈 튀르크의 다른 후손인 투르크멘인에게서는 동아시아인 특성도 있지만 이미 이란계 민족과의 혼혈로 서구적인 외모가 혼합된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원시 튀르크인은 동아시아인과 유사한 외형을 지닌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미 돌궐이나 오구즈 튀르크의 시대에 이란계(스키타이) 등의 혼혈이 상당히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유전학적 자료에 따르면 중앙아시아의 튀르크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은 이란어를 사용하는 중앙아시아인(이란어 일파인 타지크어를 사용하는 타지키스탄인 등)과는 대조적으로 22%에서 60% 사이의 동아시아인 혈통(동시베리아인들과 공유하는 "바이칼 수렵채집" 조상에 의해 표본화된 형질)을 가지고 있으며, 반면 타지크인은 철기 시대의 이란인에 대한 유전적 연속성을 보여준다. 특정 튀르크 민족, 특히 카자흐족은 훨씬 더 높은 동아시아인 혈통을 보인다. 이는 중세 몽골제국인과의 상당한 혼혈을 통해 카자흐 게놈에 끼친 몽골인의 영향을 설명한다. 즉 몽골제국의 중앙아시아 침공이 카자흐족의 유전적 구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을 말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유라시아 대륙에 폭넓게 분포되어 있는 튀르크인과 어족에 대한 정체성은 더 많은 고고학 발굴과 유전학적 연구가 뒷받침 되어야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가 좀 더 풀릴 것으로 보인다.


※ 이 글을 쓰기 위해 튀르크에 관련한 여러 도서와 학술 자료를 살펴보았다, 아쉽게도 튀르크 관련 국가나 학자마다 주장하는 바가 너무 달라 혼란스러웠다. 그나마 최근 고대 동아시아 유목민 역사에 대한 게놈 분석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서울대 정충원 교수,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사 연구소, 몽골 고고학연구소 등) 기대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 유라시아 유목민에 대한 고고학, 유전학적 연구가 진전되면 이 글을 보완해 완성도를 높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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