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수영과 아방가르드 여인”을 읽고

by 박사력

한 광인(狂人)이 저지른 12.3 내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온통 망상과 편집증으로 범벅이 된 윤석열이 선진국으로 발돋움 한 우리나라의 한때 통치자였다는 것이 너무 부끄럽고 모욕적이다. 답답하고 울적한 심사를 달래고자 예전에 애독했던 김수영(1921~1968)의 시집을 다시 읽었다. 김수영은 초기 난해했던 관념적 모더니즘 시(‘묘정의 노래’, ‘공자의 생활난’ 등)에서 벗어나 암담한 시대 속에 내팽개쳐진 소시민의 비애를 모더니즘적인 감각으로 노래('시골 선물', '도취의 피안' 등)했다. 4.19 혁명과 5.16 정변 이후는 사회성 짙고 현실 참여적인 시(‘가다오 나가다오’, ‘격문', '모르지?' 등)를 많이 썼다. 특히 1968년 6월 뜻밖의 교통사고로 숨지기 얼마 전에 발표한 ‘풀’은 민중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 민중을 풀로 형상화함으로써, 1980년대 급격히 대두되기 시작한 민중운동과 민중 시의 길을 열어놓은 길잡이의 명시로 평가받는다. 더구나 2007년 ‘시인세계’가 시인 109명을 대상으로 “벼락 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가 뭐냐”라고 물었을 때, 최고의 시인으로 김수영(2위: 서정주, 3위: 정지용, 4위: 이상, 백석, 5위: 윤동주, 김종삼, 6위: 김소월, 한용운, 이성복)이 뽑혔고, 그의 대표작 '풀'은 시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최고의 시 중의 하나로 꼽힌다.


“풀이 눕는다 /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 풀은 눕고 / 드디어 울었다 /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 다시 누웠다 //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 발목까지 / 발밑까지 눕는다 /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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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김수영 시의 모티브가 되는 그의 내면적인 삶과 사상적인 바탕을 살피고 싶었다.

알려졌듯이 김수영은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에 심취했고, 그의 철학을 해석하는데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김수영의 인생 부침과 사생활에 대해서는 설왕설래이다. 마침 그의 아내이자 문우(文友)인 김현경(1927~현재)이 구술한 “시인 김수영과 아방가르드 여인”이라는 평전이 올 7월 발간됐다. 분량이 421쪽이지만 저자 홍기원의 간결한 문체와 직선적인 구성에 매료돼 반나절 만에 읽었다. 김수영의 내면적인 삶과 사생활이 가감 없이 구술돼 솔직 담백한 김현경의 심성을 엿볼 수 있다. 다만 김수영의 고통스러운 시 ‘너를 잃고’와 ‘죄와 벌’의 모티브가 된 친구이자 김현경과 한때 동거한 이종구(1921~2004, 전 서울대 영문과 교수, 시인)에 대한 혹평이 눈길을 끈다. 이에 이종구의 평전을 쓴 저자(김정례)가 강하게 반박하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시인 김수영과 그의 시를 내밀하게 이해하는데 김현경의 평전만큼 요긴한 책이 없을 듯하다. 덤으로 시인 고은의 후기도 음미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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