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식당 출구 쪽에서 쿠당탕, 요란한 소음이 일었다. 누군가 넘어지며 식판을 뒤엎은 소리. 스테인리스 식기가 나뒹구는 소리는 일상의 소음들을 몰아내고, 식당을 요란한 정적으로 채운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출구 쪽으로 고정되고, 시간과 공기의 흐름까지 멎은 듯 일시 정지. 이내 모두가 상황 파악을 끝내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의 소음이 다시금 그 정적을 메운다. 맞은편에 앉은 동기 H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정말 너무 무심한 거 아냐?”
큰 소음에도 식판에만 시선을 고정한 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떠오르는 말들을 밥 한 숟갈과 함께 삼키고 말했다.
“그런 거 아니거든.”
상대의 치아 사이에 낀 이물질을 알려줄지 모른 척할지를 두고 늘 고민한다. 낀 건 상대지만, 곤란해지는 건 언제나 나였다. 치아에 낀 미세한 이물질 하나가 나의 삶의 태도를 결정짓는 미끼처럼 느껴졌다. 낚아챌지 기다릴지 망설이다, 미끼는 상대가 들이킨 물에 휩쓸려 사라진다. 그렇게 여러 차례 삶의 태도를 정하지 못한 채 행동을 미루다 보니, 어느새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사람, 무심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타고난 성정이냐고 묻는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나를 무심하게 만든 사건은 어릴 적, 지금보다도 훨씬 더 어릴 때로 돌아가야 한다.
울음보단 폭소에 흘리는 눈물과 닮은 2000년대 장마의 어느 날. 친구와의 만남이 날씨에 좌지우지되지 않던 아홉 살의 어린 날. 아파트 단지에는 하늘이 뿜어내는 폭소에 지지 않으려는 듯, 꿋꿋이 오일장 천막이 늘어서 있었다. 언덕 위엔 꽈배기와 찹쌀 도너츠, 떡볶이와 어묵이, 언덕 아래엔 이름 모를 산나물과 떡, 해산물이 진열돼 있었다. 내리막으로 폭포처럼 쏟아지는 빗물이 웅덩이를 만들었고, 진열된 물고기들이 살아나 헤엄치진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그 옆으로는 양산인지 우산인지 모를, 진보라빛 레이스가 달린 우산(이길 바란다)을 쥔 구부정한 노인이 천막과 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거닐고 있었다. 마침 노인이 길을 건너던 찰나, 천막에 고이던 빗물이 쏟아져 내렸고, 하수구조차 삼키지 못한 폭포수에 휩쓸려 크게 넘어지고 말았다. 손에 쥔 묵직한 까만 봉다리는 여전히 꼭 붙잡은 채, 진보랏빛 우산은 어느새 물고기를 덮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나는 ‘슬기로운 생활’을 배우던 초등학생답게, 기특하게도 쏜살같이 노인을 도우려 달려갔다. 그런데 그때, 노인은 빗소리에 묻혀 내게만 들릴 만큼의 목소리로 소리쳤다.
“가! 됐어! 가!”
그 순간은 어린 내게 물음표만 남겼다. 이후 누군가를 도우려는 순간마다 어김없이 떠올라, 마치 브레이크처럼 내 발목을 잡았다. ‘해도 될까?’라는 물음표의 뜻을 몰랐고, 그렇게 행동을 망설이는 자신이 답답해 자책하곤 했다. 적극적인 친절과 배려는 분명 미덕일 터인데, 나는 그로부터 점점 멀어진 기분이었다. 노인의 언성은 오랫동안 내 10대의 행동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 기억이 아득해질 무렵, 숱한 자책과 용기를 반복하며 브레이크에서 조금씩 벗어나던 20대의 어느 날. 찜통더위 속, 이자카야에서 홀 알바를 하던 여름날. 창문 너머 광장 중앙에, 등이 90도로 굽은 노인이 있었다. 열기가 가시지 않은 아스팔트 바닥에서 몸을 끌며, 가로등 아래 쌓인 박스를 하나씩 리어카로 옮기고 있었다. 그런 방식이라면 고작 10미터 남짓한 거리도, 여남은 박스를 옮기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릴 터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알바생 H와 나는, 손님들 자리에 부족한 것이 없는지 살피고는 곧장 도우러 가기로 했다.
나는 호기롭게 나가, 서비스직 특유의 친절한 말투로 말했다.
“할머니! 박스 옮기시는 거면 도와드릴까요?”
돌아온 대답은, 나를 다시 아홉 살로 데려갔다.
“됐어! 가! 공부나 해!”
그리고 유니폼 입은 우리 모습을 본 뒤, 말을 바꾸어 덧붙였다.
“가! 술이나 날라!”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발길질도 함께였다.
결국 돕지 못한 채 가게로 돌아왔고, 돌아오는 길에 H가 말했다.
“너무하시다. 그렇지?”
그때 무언가 머리를 강타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었다. 나를 다시 9살로 돌아가게 만든 건 무안함도, 상처도 아닌 죄책감이었다. 그들이 외치던 언성의 얼굴을 곱씹었다. 진심을 다해 도움을 ‘거부’한 얼굴이었다.
내가 가게 밖으로 나설 때의 호기로움, 그리고 H가 말한 “너무하시다”의 의미를 곱씹었다.
나의 다정은 그들에게 다정이 아니었다.
나의 다정은 그들을 나약하게 만들었고, 부끄럽게 했으며, 낯선 이의 판단이자 무례함이었다.
뒤돌아보자, 느릿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난 노인과, 리어카에 상자를 실은 노인이 보였다. 그들에게 여름의 비와 열기는 익숙한 자연환경이었고, 나의 배려는 불청객의 시선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심함이 다정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관심이 잔인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는 다정함을 내세워 얼마나 많은 이에게 잔인했을까.
이자카야로 한 중년 남성이 들어왔다. 오른손에서부터 얼굴까지, 열꽃처럼 번진 화상 흉터를 지닌 사람이었다. 여느 손님과 다르지 않게 인사를 나누고, 주문을 받고, 가볍게 대화도 나눴다. 마감 시간이 되어 그가 계산을 하며 말했다.
“고마워요. 학생.”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지만, 알아차려도 되는지 망설이다 평소처럼 말했다.
“제가 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는 호쾌하게 웃으며 나갔다.
무심과 관심 사이.
그들을 위한 다정이란 어떤 마음일까.
나의 시선은 그에게 어떻게 닿았을까.
돌아보지 않는 내 뒤통수는 매정했을까, 따뜻했을까.
오늘도 그 사이에서 고민하다 무심한 사람이 된다.
부디 그것이 그들에게 필요한 무심함이길, 그리고 다정함이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