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이라는 단어를 곱씹습니다.
머금어지는 순간 단단한 울림, 단어 자체만으로도
안정적이고 믿음직스럽게 느껴지지 않나요.
한때는 책임감이 행복과는 동떨어진 것이라 여겼습니다.
학생으로서의 나, 직업인으로서의 나, 때로는 딸로서의 나처럼,
사회적 페르소나가 떠안아야 할 막중한 임무라 생각했지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와닿곤 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하나씩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늘어갈수록,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굳이 구분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구분하면 취향이 생기고, 취향이 생기면 욕심이 많아지며,
그 욕심은 사치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배우며 자라온 탓일지도 모릅니다.
안타깝게도 저의 시야는 좁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것을 만날수록 제 자신을 알아갔고, 사랑하는 것들이 늘어갔습니다.
그래서 결국 제가 가던 길 전체를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알지 못했다면 몰랐을 사랑을 알게 되었으니,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무모해 보였을 그 선택 때문에 많은 말을 들었습니다.
무지하다며 비판하는 이도 있었고, 걱정해주는 이도 있었으며,
묵묵히 응원해주는 이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었습니다.
다시 책임감, 사실 그것은 저와 가까운 단어는 아니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짊어져 제 몸을 해치기도 했고, 반대로 욕을 한껏 먹기도 했으니까요. 아직도 저는 그 선을 제대로 지키지 못합니다.
가끔 그런 순간들이 있습니다. 갑갑하게 출렁이던 걱정과 불안이
시원한 폭포처럼 한순간에 쏟아져 사라지는 순간.
거창한 모세의 기적같은 것이 아니라
밀물과 썰물처럼 자연스럽게 밀려나는 순간 말입니다.
제 친구 B는 한 아이돌의 열렬한 팬입니다.
어느 날 콘서트를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더군요.
저는 말했습니다.
“하고 싶은 건 해야지.”
눈치채셨다시피 별 뜻없는 흔히 하는 응원, 혹은 부추김이었습니다.
그 아이돌을 좋아할 때의 친구의 모습이 가장 행복해 보였기에
늘 그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게 좋아.”
저는 껴안을 뻔했습니다. 제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으니까요.
사실 저는 늘 부채감과 죄책감을 안고 있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는 것은 아닐까, 무모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일을 놓지 못하는가.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일에 책임감을 가지려는 거였어요.
사회적 ‘나’가 아니라, 내 꿈과 행복에 책임을 지고자 했던 겁니다.
제 책상엔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붙여두었습니다.
나의 행복에 책임을 지자, 나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자.
이제 책임감은 저에게서 그리 먼 단어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책임을 지는 일은 행복으로 가는 길이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욕심이라 할지도, 합리화라 할지도,
세상 물정 모른다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제 행복에 책임을 지는 길을 선택하겠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행복을 위해 어떤 책임을 지고 계신가요.
저는 글을 읽습니다. 글을 씁니다. 지금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