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하늘로 간지 벌써 40년이 되었다. 세월이 언제 이렇게 물 같이 흘러갔는지 엄마 생각이 가장 절실할 때는 귀가 가려울 때다. 엄마는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까지 내 귀지를 파 주었다. 엄마 무릎을 베고 누우면 엄마는 내 귀지를 팠다.
"아이고 여기 바위 하나 나오네."
"이런!!! 떡 덩이만 하네."
이러면서.
내 눈에 보이는 귀지는 작은 것이었지만 엄마는 늘 그렇게 과장된 말로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엄마가 내 곁을 떠나고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내 귀를 맡겨 본 적이 없다. 안심되지 않기도 하고 엄마 생각이 나기도 해서, 늘 혼자 귀지를 파니 엄마가 파줄 때처럼 시원하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다. 엄마 무릎은 정말 따뜻했는데.
다음은. 어릴 적 먹었던 엄마가 해주던 음식이 먹고 싶을 때다. 콩죽, 풀떡개미 떡, 걸쭉한 된장찌개와 호박잎 쌈, 손칼국수. 우리 엄마는 요리 박사였고 요리 천재였다. 못하는 음식이 없었고 만들기만 하면 기가 막힌 맛이었다. 엄마의 음식솜씨는 동네에서도 소문이 떠르르 했다.
어느 집이든 잔치가 있게 되면 엄마에게 온다. 어려운 음식 좀 해달라고. 약밥, 묵, 단술, 식혜 이런 것들은 당연히 엄마 몫이었다. 그 누구도 엄마만큼 만나게 하지 못했다. 오늘은 엄마가 해준 음식 배불리 먹고 엄마 무릎 베고 누워 귀지를 파고 싶다. 엄마는 여름이면 더 바빠졌다, 아버지 때문에. 우리 엄마는 여름이면 안동포로 아버지 적삼을 해 입히셨다. 풍기인견으로는 아버지와 내 파자마를 그리고 엄마의 고쟁이와 속치마도 만드셨고. 그 덕분에 아버지는 여름이면 동네 패션모델이 되셨다. 이게 다 손재주 많은 우리 엄마 덕분이다.
엄마의 재주 중 가장 뛰어난 재주는 엄마의 약손이다. 급체를 하거나 배탈이 나면 엄마는 약을 먹이거나 병원으로 데려가기 전 항상 약손으로 먼저 나를 치료해 주셨다. 엄마 무릎을 베고 누우면 엄마는 내 배를 문지르면서 ‘엄마 손이 약손이다. 엄마 손이 약손이다’를 주문처럼 외우셨고 신기하게도 나는 그 주문에 빨려 들어가면서 스르르 잠이 들었고 그렇게 자고 나면 아프던 배도 말끔하게 나았다. 엄마의 말처럼 엄마 손은 진짜 약손이 맞았다.
우리 엄마, 왼쪽 젖가슴에 까만 사마귀가 돋보이던 우리 엄마. 쪽 진 머리에 동백기름을 발라 윤기가 자르르 흐르던 예쁜 우리 엄마. 엄마가 보고 싶다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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