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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강 Jan 21. 2024

학교 이야기2

2. 게임의 법칙      


바둑을 두거나 책을 읽어나 잠자는 것이 전부였는데 범털 들이 있는 방은 야식도 만들어 먹곤 했지만 매일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비공식적으로  화투와 카드가 있었다. 순수 수제품인 화투와 카드의 인기는 대단했다. 카드를 만드는 원료는 우유팩이었다. 먹고 버리는 우유팩을 모아 흰 표면에 볼펜으로 카드와 화투 그림을 그리는데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그냥 찍어냈다고해도 될 정도의 그림 실력이었다.

     

바둑알로 칩을 사용하는데 칩은 모든 영치품을 포함했다. 각종 간식과 운동화 내의. 심지어는 모포까지. 문제는 선수가 각각의 방으로 나누어 입실한다는데 있었다. 1번방의 김 씨와 2번방의 공 씨. 그리고 3번방의 조 씨가 게임을 하고 싶은데 방이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이 문제도 기가 막히게 푸는 방법이 있었고 문제의 해결 방법에 내가 소용된다는 것이었다. 1번방에 12명. 2번방에 17명. 3번방에 16명이면 각 방마다의 전체 인원이 중요하지 개개인이 누구인지는 잘 모르고 지난 간다는데 답이 있었다. 오늘 1번방에서 게임이 있을 예정이면 공장에서 방으로 들어갈 때 내가 2번방의 공 씨로 들어가는 것이다.  

    

방으로 다 들어간 후 전체 인원 점검이 있긴 하지만 1번방에 12명이면 통과했지 누구 대신 누가 와 있는지는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알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발각되면 독방을 가거나 방이 부서지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서 방이 부서진다는 말은 12명 전원을 각자 다른 방으로 나누어 재배치 한다는 말이다. 다시 다른 방으로 배치되면 신입이 되는 것이고 막내부터 다시 계단을 밟아야 하기에 방이 부서지는 것을 바라는 이는 없다. 그 위험한 일에 나를 동원 시키는 것은 들켰을 때의 충격을 최소한으로 하자는 의미가 있었다.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나의 죄명이 일반 죄수들과는 다른 죄명이기에 가능 한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2번방의 공 씨 대역으로 3번방의 조 씨 대역으로 각 방을 돌아 다녔다. 나도 나름 좋은 점도 있었다. 대신으로 간 방 사람이 그 방에서 서열 1위나 2위 최소 3위 정도는 되는 사람들이다 보니 잠자리도 넓고 쾌적했으며 먹을 것도 많았다. 내가 대역을 하는 동안 그 사람의 물건은 내 것이나 다름없이 사용해도 된다는 단서가 붙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일이 몇 차례 있고난 후 드디어 우리 방 돼지 선생께서 나에게 화회를 하자는 손짓을 해왔다. ‘라면이나 먹읍시다.’ 라는 말과 함께. 나도 싫지 않아 얼른 ‘그럽시다.’ 로 맞대응을 했고. 이로서 우리방의 분위기는 화창한 봄날이 되었다. 그는 나를 ‘윤 선생’ 으로 나는 그를 ‘방장’ 으로 대우해 주었고 새로 온 신입들이 있으면 꼭 나를 불러 인사를 시켜주었으며 작은 과자 하나라도 그냥 먹는 법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공장의 서열 0 순위가 된 것이다. 서열 1위인 방장이 깍듯이 모시는 사람이 됐으니. 웃지 못 할 일이다.     


더 놀라운 변화는 교도관들의 태도이다. 지금까지는 경계의 대상이었던 나를 일반 재소자들과 다른 없이 편하게 대해 준다는 것이었다. 교도관들에게 시국사범은 골치 아픈 사람들이다. 잘 따지고, 걸핏하면 법으로 하자고 들고 일반 재소자들에 비해 논리적이며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 언론인이나 정당 사람들이 많아 만만하지 않은 존재들이 시국사범들이기에.  

   

하지만 나는 대체적으로 조용히 지냈다. 대부분은 소 내 의무실에서 일을 하며 지냈기에 여유롭지 못했고 조용히 지내고 싶어서였다. 일반 재소자들이 시국사범을 알아 볼 수 있었던 것은 명찰의 색깔이 달랐으며 대부분의 시국사범은 독 방 수용이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교도소에서 독방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최고소(사형수)와 성소수자(게이), 그리고 각종 전염성 질환자와 시국사법이었다. 최고수 역시 명찰 색이 달라 가만있어도 기피의 대상이었으며 환자들이와 환의를 보면 알 수 있으며 시국사업도 명찰이 달랐으니 표시가 날 수 밖에 없었다.     


우리의 위대하신 방장님께서 교도관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하고 다녔  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의 사실에 본인이 각색한 많은 부분을 붙인 것은 안 봐도 알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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