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강 Jan 21. 2024

아버지와 세숫대야


우리 아버지, 결벽증의 원조이다. 모든 자식에게 그 힘든 결벽증을 물려주셨고 나는 유난히 그것을 많이 물려받았다. 결벽증 아버지도 질려 하실 만큼. 우리 집 욕실에는 세숫대야가 유난히 많다. 그것도 그냥 대야가 아니고 색깔이 다른 플라스틱 대야들이다. 혹여 손님들이 오셔서 욕실을 다녀올라치면 다들 묻곤 하신다. "아니 이 집에는 식구 수보다 대야 수가 더 많네요?" 맞다. 식구 수보다 대야 수가 늘 더 많았다. 


일단 아버지 전용 대야가 대여섯 개는 된다. 아버지는 용도에 따라 대야의 색깔이 달랐다. 세수는 빨간 대야에 발은 파란 대야에 뒷물은 하얀 대야에 양말을 세탁하는 대야는 초록색 대야에. 이렇게 용도에 따라 사용하는 대야가 달랐다. 아버지의 주장은 이러셨다. "어떻게 얼굴을 씻는 대야에 발을 씻을 수가 있느냐." 대야만이 아니라 아버지 전용 수건은 요일마다 색깔이 달랐으며 가끔 어머니가 어제 노란 수건을 오늘 아침에 새로 꺼낸 것이라 우기는 바람에 수건에 아예 요일별로 자수를 놓아 표시하셨다. 오늘이 화요일인데 어제 월요일 수건이 걸려 있으면 난리가 난다. 욕실 바닥에 머리카락 하나가 떨어져 있어도 기어이 그 머리카락 주인을 찾아내셨고 그 주인은 일주일간 욕실 바닥 청소를 해야 했다.


우리 집 여자들, 다른 집 여자들과 비교하면 아버지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절대 두 가지는 하지 못했다. 머리 기르는 것과 손톱 기르는 것. 머리는 엄마나 여동생이나 며느리나 다 같이 짧은 단말 생머리였다. 손톱을 기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으며 손톱에 칠을 하지도 못했다. 여동생은 그것이 죽기보다 싫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 동창과 결혼을 했다. 그런 여동생도 친정집에 올 때는 손톱 자르고 색도 지우고 왔다. 


"음식을 만지는 여자가 손톱을 기르다니." 이것이 아버지의 주장이셨다. 가끔, 시장을 지나가다 그릇 가게를 지나칠 때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  하늘에서도 그렇게 많은 대야를 사용하고 계실까 궁금하다 엄마와는 또 만나셨는지. 오늘 빨간색 대야를 보니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것도 아주 간절하게. 



사진출처 : 다음 이미지 검색 

작가의 이전글 학교 이야기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