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팬의독백

by 이 범

프라이팬의 독백
(기름때 켜켜이 앉은 손잡이를 문지르며, 불 꺼진 부엌에서 혼자 남아 중얼거린다)
프라이팬:
야… 나도 처음엔 새까맣고 반질반질했었지.
공장에서 막 나온 날, 주인님 손에 처음 들렸을 때
“와, 무쇠 팬 샀다!” 하시던 그 눈빛…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아.
첫 신입은… 계란말이였나.
너무 세게 달궈놓는 바람에
흰자가 타서 검게 붙고 노른자가 터져서
온 방이 탄내로 가득 찼었지.





주인님이 “아이고 이 비싼 게…” 하시며
스패출러로 긁어내던 그 소리…
쇠스크래치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아.
그 다음엔 스테이크였나.
300g짜리 등심이 내 몸 위에서
치이이익—! 하면서 춤을 추는데
그때는 내가 너무 어린 놈이라
열 조절을 못해서 겉만 새카맣게 태우고
속은 아직 핏물 철철…
주인님이 결국 눈물을 머금고
“이건… 개 먹이로 줘야겠다” 하셨지.
그 뒤로 수백 번을 태웠다.
김치볶음밥은 늘 밥알이 눌러붙어서
“왜 나는 김치볶음밥을 못 만드냐!” 하시며
나를 벽에 내동댕이치기도 했고,
삼겹살은 기름이 너무 튀어서
내 손잡이가 뜨거워져서 주인님 손에 화상 입히고…
그러다 어느 날이었나.
주인님이 새벽에 혼자
달걀 두 알을 깨뜨리더니
나를 아주 약한 불에 올려놓고
천천히… 천천히 구워주더라.
그날 처음으로
‘완벽한 반숙’이 탄생했지.
노른자가 톡 터지면서 주인님이
“아… 이게 진짜 맛이구나” 하고
눈을 감던 그 표정.
그날 이후로 나는 알았다.
내가 뜨거운 건 운명이지만,
누군가를 태우지 않고
딱 맞게 익혀줄 수 있는 것도
나라는 사실을.
(잠시 불꽃이 꺼진 가스레인지를 바라본다)
프라이팬:
그래서 요즘 신입들한테 좀 잘해준다.
너희가 터지지만 말고
예쁘게 퍼져서
접시 위에서 빛나기만 하면…
내 모든 흠집과 기름때도
다 의미가 있거든.
(작은 웃음소리)
내일 또 어떤 신입이 올지 몰라도
…치이익, 준비됐지.
이 할배,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프라이팬이 조용히 불꽃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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