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 그 날오후
8장터, 그날 오후
장터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활기 넘쳤지만, 그 속에는 심상치 않은 소문이 파고들고 있었다. 펄펄 끓는 국밥 냄새와 흥정하는 소리 사이로, 귓속말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퍼져나갔다.
( 장터에서 국밥집 아주머니 서주원(고창댁)이 고부댁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고 있다. 다른 아낙네들도 주변에서 각자의 일을 하거나 서성인다.)
국밥집 아주머니 서주원, 일명 '고창댁'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을 팔면서도 귀는 쫑긋 세우고 있었다. 손님들이 떠나간 빈 자리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던 그녀는 옆에서 채소를 다듬던 고부댁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고부댁은 손에 든 시금치를 내려놓고 눈을 크게 뜨며 고창댁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녀의 표정에는 걱정과 호기심이 섞여 있다.)
"고부댁, 들었찌라우 ? 이산갑 도련님 학당이 위험하다는 말이 있당께 잉?" 고창댁의 목소리는 뜨거운 국밥 김처럼 나직했지만, 그 속에는 은근한 확신이 섞여 있었다.
고부댁은 손에 든 시금치를 내려놓고 눈을 크게 떴다. "나도 들었제유. 그 경성 여자가 불온한 사상을 가르친다는디... 진짜 그런다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걱정 반, 호기심 반이 깃들어 있었다.
이때, 장을 보러 나왔던 한 아낙네가 두 사람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우리 애 학당 보내려고 했는디... 이러면 안 되겠제." 그녀의 얼굴에는 실망과 함께 깊은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학동들에게 새로운 배움의 기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내심 기대했던 터였다.
강점순의 입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양군자를 거쳐 장터 아낙네들의 입을 통해 빠르게 번져나갔다. 처음에는 '조심해야 한다'는 당부였지만, 사람들의 입을 오가며 '위험하다', '일본 순사들이 잡아가려 한다', '독립운동과 관련 있다'는 자극적인 내용들이 살이 붙기 시작했다.
소문은 마치 눈덩이처럼 불어나, 마침내 '경성 신여성 강지윤이 독립운동의 주동자이며, 이산갑 도련님이 불온한 학당을 세워 마을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려 한다'는 식의 악의적인 왜곡으로 변질되어 갔다. 마을 전체가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의심의 그림자에 휩싸이는 순간이었다.
백정치의 집, 저녁
어둠이 내린 백정치의 집. 낮 동안의 소란스러움은 사라지고, 고요함 속에 불안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백정치는 어머니 강점순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문이 열리고 강점순이 들어서자, 백정치는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강점순의 표정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서려 있었지만, 동시에 무언가 큰일을 해냈다는 듯한 미묘한 만족감도 비쳤다.
"어머니, 고생 많으셨어요. 소문은 잘 퍼뜨리셨어요?" 백정치는 차분하지만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강점순은 아들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부안댁한테 말하고, 부안댁이 우물가에서, 또 장터에서... 아주 그냥 파다하게 퍼졌네 그려." 그녀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 "이산갑 도련님 학당에 애들 보내면 큰일 난다고, 경성서 온 강 선생이 독립운동하는 사람이라는 소문까지... 다들 난리도 아니었어."
백정치는 어머니의 보고를 들으며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눈빛에는 차가운 계산과 교활함이 번뜩였다. "잘하셨어요, 어머니. 이제 마을 사람들이 경계하기 시작할 겁니다. 그 학당에 아이들을 보내는 것을 주저하게 되겠죠." 그는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윤서영 때처럼...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겉으로는 마을의 평화를 위하는 척했지만, 그의 속내는 이산갑의 계획을 좌절시키고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는 검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강점순은 아들의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괜찮겠제? 나중에 이산갑 도련님이 알면... 우리한테 화가 미치지는 않을까?" 그녀는 아들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의 본성은 악하지 않았기에, 자신이 퍼뜨린 소문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완전히 가늠하기 어려웠다.
백정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안심시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차갑게 빛났다. "걱정 마세요, 어머니. 어머니는 그냥 마을 사람들을 걱정되어서 한 말일 뿐이잖아요. 잘못한 것 없어요. 게다가... 누가 어머니 말씀에 귀 기울인다고 한들, 그게 어머니 잘못이겠어요? 다들 각자 생각해서 판단하는 거지." 그는 능숙하게 어머니의 죄책감을 덜어주며 자신이 깔아놓은 판에 더욱 깊숙이 끌어들였다.
강점순은 아들의 말을 믿기로 했다. 불안한 표정이었지만, 아들의 확신에 찬 말과 따뜻한 손길에 위안을 얻었다. 그러나 그녀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퍼뜨린 소문의 씨앗이 얼마나 큰 파국을 불러올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아들의 치밀한 계획 아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밤은 깊어지고, 백정치의 집에는 음흉한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