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9조가와 헤이스케의 초상
영광 지역의 읍내, 낡은 기와지붕 아래 자리한 조병수의 큰 기와집은 밤의 장막 속에서 더욱 음침하게 보였다. 담장 너머로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등불은 그의 집이 여느 양반가와 다름없음을 보여주는 듯했지만, 그 안에서 피어나는 기운은 비릿한 탐욕과 뼈아픈 증오로 가득했다.
조병수, 본래 양반 가문의 서자로 태어난 그는 적자들에게 천대받으며 자란 어린 시절의 설움과 한을 평생의 동력으로 삼았다.
정식 교육도, 재산 상속도 허락되지 않았던 삶은 그의 영혼을 비틀어 놓았다.
"왜 저자는 모든 것을 가졌고, 나는 아무것도 없는가?"
그의 마음속에는 명문가의 적자로 태어나 학식과 덕망, 재산까지 모두 갖춘 이산갑에 대한 질투와 증오가 끓어넘쳤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보는 이산갑의 존재는 조병수에게 영원한 열등감이자 넘어서야 할 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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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조선을 강점하던 혼란의 시기는 조병수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무너지는 신분제도 속에서 자신도 출세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 그는 일본어를 악착같이 익히고, 일본인들에게 아첨하며 접근했다.
조선인들의 토지와 재산 정보를 일본인들에게 팔아넘기며 부를 축적했고, 그 과정에서 그의 영혼은 더욱 피폐해졌다.
"내선일체! 우리는 모두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일본의 위대함을 외치고,
‘조가와 헤이스케’로 창씨개명하는 장면
창씨개명을 가장 먼저 실행하여 자신의 이름을 '조가와 헤이스케(朝川平助)'로 바꾼 그는 완벽한 친일파의 가면을 썼다.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한글 사용을 밀고하며,
독립운동가들을 일본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그의 주요 활동이었다. 그 대가로 그는 몰수된 조선인들의 토지를 헐값에 사들였다.
“비밀스러운 뒷골목, 서류를 일본 순사에게 건네는 장면, 그림자 대비 강조, 무거운 분위기”
마을 사람들은 뒤에서 그를 "개 같은 놈", "조상을 팔아먹은 역적"이라 욕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일본의 권력을 등에 업고 더욱 오만해졌다. 걷잡을 수 없는 탐욕과 권력욕은 그를 더욱 깊은 나락으로 이끌었다.
특히 윤서영의 학당 건립은 그의 눈에 가시였다. 조선어를 가르치고 조선의 역사를 교육하는 것은 일본의 식민 정책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었다.
그는 수차례 총독부에 학당의 폐쇄를 요구하는 보고서를 올렸지만, 서영의 명망과 이산갑의 영향력 때문에 번번이 좌절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일본인 폭력배 시마다 겐죠를 만났다. 시마다 또한 이산갑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들의 이해관계는 정확히 일치했다.
"학당을 없애버리면 어떻겠습니까?"
조병수의 제안에 시마다의 눈이 번뜩였다.
"그게 가능한가?"
"제가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가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학당 화재 계획이 시작되었다. 시마다가 자금을 대고, 조병수가 모든 것을 실행하기로 했다.
화재 당일 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학당에 몰래 잠입했다.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학동들의 책들이 타오르고, 한글로 쓰인 교재들이 재가 되는 것을 보며 그는 싸늘한 쾌감을 느꼈다.
'이산갑, 네가 아끼던 학당이 타고 있다.'
그 사람의 입가에 음흉한 웃음을 띠며 광기어린 눈을 번뜩였다
한편,
조병수는 서영을 범인으로 몰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했다. 서영의 도장을 몰래 훔쳐 차용증을 위조했고, 필적까지 완벽하게 흉내 냈다. 모든 증거는 서영을 가리키고 있었다.
서영이 고문 끝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조병수는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학당 부지를 차지할 계산만이 가득했다. 위조한 차용증을 내밀며 저당권을 주장했고, 학당 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했다.
서영의 고문실 잔흔
그리고 지금, 그는 이산갑마저 제거하려는 거대한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백정치를 이용해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이산갑을 독립운동가로 몰아 일본 경찰에 넘기려는 것이었다.
'이산갑의 재산을 손에 넣으면, 나도 이 지역의 큰 부자가 될 거야.'
조병수에게는 양심도, 조국애도, 인간다움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탐욕과 증오만이 그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다.
어느 날 밤, 그는 홀로 방에 앉아 낡은 거울을 응시했다. 거울 속에는 40대 중반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교활함과 비열함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조병수… 아니, 조가와 헤이스케.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이 시대에 맞춰 변한 자만이 살아남는 법이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는 몰랐다. 정혁진과 이산갑, 그리고 한도회가 그의 모든 악행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을. 역사는 결국 정의의 편이었고, 조병수 같은 친일 협력자들은 언젠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운명이었다. 영광 마을의 어둠 속에서, 그의 파멸을 향한 카운트다운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