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109)

첫날밤

by 이 범

해가 지고 피로연이 끝났다. 떠들썩했던 마당은 고요해지고,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가면서 집안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안채 깊숙한 곳에 자리한 신방에는 붉은 비단 이불이 곱게 깔려 있었고, 양옆에 놓인 촛불 두 개가 은은하게 방을 밝히고 있었다.




​이산갑이 먼저 방에 들어와 앉아 있었다. 무거운 사모관대와 예복을 벗고 소탈한 평상복으로 갈아입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역력했다.



붉은 조명 아래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강지윤이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섰다. 그녀 역시 화려한 활옷과 족두리를 벗고 연분홍빛 한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평소의 단정하고 소박한 모습에 가까웠지만, 붉게 상기된 두 뺨은 그녀의 떨리는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문가와 방 한가운데서 서로를 마주 본 채 어색하게 서 있었다. 침묵이 공간을 채웠고, 촛불만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그림자를 춤추게 했다.




​이산갑이 먼저 그 침묵을 깼다. 그는 방석을 가리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앉으시지요."
​강지윤은 살짝 고개를 숙이고 그의 맞은편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 네." 그녀의 목소리는 작게 떨렸다.
​다시금 침묵이 흘렀다. 이번에는 더욱 길게 느껴지는 침묵이었다. 촛불의 불빛이 두 사람의 얼굴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이산갑은 굳게 다문 입술을 살짝 떼어냈다.
​"...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강지윤은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봤다. "아니에요. 저도... 긴장했어요."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불안했지만, 그 속에는 이제 막 시작된 새로운 관계에 대한 기대감도 서려 있었다.
​이산갑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저도 긴장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강지윤도 그의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가 긴장된 공기를 한결 부드럽게 만들었다. "학동들이 정말 좋아했어요. 선생님 보고 멋있다고..."
​이산갑의 미소가 조금 더 깊어졌다. "강 선생님이 아름답다고 다들 감탄했습니다."
​강지윤은 그의 칭찬에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 감사합니다." 그녀는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의 어색한 침묵과는 달랐다. 촛불의 흔들림처럼 잔잔하고 편안한 침묵이었다. 마치 오랜 시간 함께한 부부처럼, 서로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한 평화로움이었다.
​이산갑은 천천히 몸을 틀어 지윤을 향해 앉았다. "강 선생님... 아니, 이제는..."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강지윤은 살며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지윤이라고 불러주세요."
​"... 지윤 씨." 그의 입에서 나온 그녀의 이름은 낯설었지만, 이상하게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강지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산갑은 숨을 고르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저는... 약속했습니다. 평생 존경하고, 함께 걸어가겠다고."
​강지윤은 그의 눈을 마주 보며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약속했어요. 함께 걸어가겠다고."
​이산갑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강지윤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고, 그녀의 손은 부드러웠다. 처음 닿는 손길이었지만, 낯설기보다는 오히려 익숙한 듯 편안했다.
​"고맙습니다. 제 곁에 와주셔서." 그의 목소리는 진심이었다.



​강지윤은 그의 손을 꽉 잡으며 화답했다. "저도 고마워요. 저를 받아주셔서."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촛불이 그들의 얼굴을 부드럽게 비췄고, 그들의 눈빛 속에는 존경과 신뢰, 그리고 아직은 설익은 사랑의 싹이 움트고 있었다.
​강지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서영 언니 이야기, 해주실 수 있어요?" 그녀는 이산갑의 전 부인인 서영에 대해 언급했다. 그가 여전히 서영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의 아내로서 그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용기 있는 고백이었다.
​이산갑은 잠시 놀란 듯했지만, 이내 그녀의 용기에 감동한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언젠가 말씀드릴게요. 아직은... 조금 힘들어서."
​강지윤은 그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괜찮아요. 천천히... 준비되실 때." 그녀의 목소리는 이해와 배려로 가득했다.
​이산갑은 그녀의 따뜻한 마음에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 감사합니다."
​강지윤은 망설임 없이 이산갑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녀의 몸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그에게 위로가 되었다. "우리... 잘할 수 있을까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작은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이산갑은 그녀를 부드럽게 안으며 속삭였다. "... 네.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겁니다."
​촛불이 천천히 타들어갔다. 밤은 깊어갔고, 밖에서는 달빛이 창문을 넘어 신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봄바람이 방문을 살며시 흔들었고, 그 소리는 마치 새로운 부부의 앞날을 축복하는 자장가 같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안은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사랑이 아니라 존경으로 시작한 부부. 하지만 그 존경이… 언젠가 사랑으로 변할 것이라는 것을 두 사람은 느끼고 있었다. 그 밤, 신방의 고요함 속에서 두 사람의 붉은 실은 더욱 단단하게 엮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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