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심과 산돌이
부엌 뒤편에서는 커다란 솥에서 김이 피어올라 천천히 하늘로 흩어지고 있었다.
혼례상 준비와 음식 치우는 일로 부산스러웠던 부엌은 이제야 조금 숨을 돌린 듯 고요했다.
산돌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밥그릇을 정리하다 말고, 조용히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산돌이 그 모습을 보고 슬며시 웃으며 다가왔다.
“유모님, 왜 또 우세요.”
산돌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너그러웠다.
막심은 눈가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산 돌아… 우리 도련님이… 이렇게 좋은 날을 맞으셨는데… 울지 않을 수가 있니.”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떨림 속에는 안도와 기쁨이 가득했다.
산돌은 주걱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듯 웃었다.
“그러게요. 강 아씨는 진짜 아주 훌륭한 분이십니다. 도련님 곁에 오래도록 버팀목이 되어주실 거요.”
막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젖은 눈을 다시 한번 훔쳤다.
“그래… 그래야지. 서영 아씨도… 하늘에서 편히 웃으실 거야.”
말을 마치는 순간, 막심의 목이 조금 메었다.
어린 산갑을 홀로 키우던 시절, 늘 미안해하던 산갑의 어머니 서영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뭉클해지는 듯했다.
산돌은 막심의 슬픔을 어루만지듯 말했다.
“유모님, 그럼요. 도련님이 이렇게 사람들 축복 속에서 다시 웃게 된 걸… 서영 아씨가 왜 모르시겠어요.
오늘 같은 날 보려고 얼마나 기다리셨겠어요.”
막심은 손을 가슴 앞에 모으며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그래… 도련님이 살아나셨지. 다시 숨을 쉬게 된 것만 같아… 그동안 얼마나 혼자였다니…”
그 말은 마치 오래 묵혀둔 한(恨)이 조금씩 풀리는 듯한 숨결이었다.
산돌은 부엌문 밖에서 들려오는 혼례의 흥겨운 소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유모님, 난 말이오… 오늘 도련님 얼굴을 보고 확신했어.
정말로… 행복해지실 거라는 거.”
막심은 천천히 미소 지었다. 너무 오래 봐온 아들의 얼굴, 기쁨과 슬픔을 숨기지 못하는 그 순한 미소가 오늘만큼은 유난히 밝았다.
“그래… 그래야지. 도련님은… 참 곱고 여린 아이였어…
나는 그 아이가 평생 웃었으면 좋겠구나.”
막심의 손은 어느새 그릇을 쓸던 동작을 멈추고 있었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마당에서 들려오는 환호와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산 돌아.”
“예, 유모님.”
“우리 도련님… 오늘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빛나게 보였지 않니.”
산돌은 힘 있게 끄덕였다.
“그럼요. 세상 어디 내놓아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새신랑이었소.”
막심은 그 말을 듣자 눈가가 다시 붉어졌다.
“그래… 그래… 잘 컸다, 우리 산같이… 잘 컸어…”
그 말은 마치 자식을 시집보낸 어머니가 흘리는 조용한 눈물 같았다.
사랑채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마당에 가득한 덕담과 축하의 말들, 그리고 처마 끝으로 흘러내리는 석양빛이 부엌 안까지 살랑거리며 스며들었다.
막심은 그 따스한 빛을 바라보며, 아주 오래된 기도 하나를 속으로 조용히 올렸다.
“부디… 부디 이 아이가 이제라도 행복해지기를…”
산돌은 그런 막심의 옆에서 묵묵히 그릇을 건네며 말했다.
“유모님, 도련님은 틀림없이 행복해지실 겁니다.”
둘은 말없이 미소를 나누었다.
그 미소에는 지난 세월의 무게와 오늘의 해방감, 그리고 앞으로의 길에 대한 작지만 단단한 믿음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