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웃음, 피의 저편
— 진주관 1층, 같은 시각
화려한 웃음 속에 감춰진 밤
1934년 진주관.
광주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한복판에 세워진 이 요정은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고 매혹적인 세계였다.
붉은 등롱이 빛을 쏟아내며 밤거리를 비추고, 비에 젖은 기와지붕은 유광 바니시처럼 번들거렸다.
이곳은 일본인 관리들과 친일파들, 돈과 권력을 부린 자들이 ‘질 좋은 밤’을 사러 모여드는 장소였다.
1층에서는 이미 술판이 무르익어 있었다.
일본인 고관들은 비단으로 둘러싸인 넓은 좌식 테이블 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웃음을 터뜨렸다.
“この店は最高だな! (이 가게는 최고야!)”
일본인 관리 1이 사케 잔을 들며 외쳤다.
“申さんは本当に商売上手だ! (신 씨는 정말 장사를 잘해!)”
관리 2가 기생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기생들은 억지 웃음을 지으며 비파를 연주하고 술을 따라주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일본 고위 관리들 사이에선
‘진주관’의 술과 기생은 제국에서도 손꼽힌다
는 소문이 돈다는 것을.
친일파 한 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그렇습니다. 신우혁 씨는 제국에 협조적인 아주 훌륭한 조선인이지요. 일본분들을 위해 이렇게 훌륭한 장소를 제공하고 있으니까요.”
몇몇 관리들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목조 건물 전체가 자신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바로 이 요정을 운영하는 재력가이자 상인 신우혁
바로 그가,
밤이 되면 일본인들을 조용히 제거하는
밤도깨비라는 사실을.
아래층의 소란, 위층의 그림자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 비파 줄을 튕기는 손끝, 기생들의 웃음이 한데 섞여 요란한 밤이 이어졌다.
그러나 화려한 소리의 깊은 곳에는 어디선가 공기의 온도를 바꾸는 거대한 그림자가 있었다.
1층의 천장—
즉, 2층 바닥 아래에서
살짝 파르르 떨림이 감지될 때가 있었다.
기생 하나가 사케병을 들다 손을 멈췄다.
그녀는 천장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위층에서 누가 움직이는지.
진주관의 문간에서 손님을 맞는 사람들은 모를지라도,
이 요정에서 오래 일한 기생들은 눈빛으로 공유하는 비밀이 있었다.
이 집의 주인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사내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 뒤에 칼날을 숨긴다.
일본 관리들은 알 리 없었다.
눈앞의 술과 여색이 그들의 시야를 둔하게 만들었고,
우혁은 늘처럼 부드럽게 웃으며 그들을 환대했다.
그러나 그 웃음 뒤쪽엔
5년 전 광주 거리에서
총탄에 다리가 관통되던 순간의 고통이
아직도 잿빛처럼 남아 있었다.
우혁은 언제나 2층 가장 깊은 방에서
이 요정의 모든 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먹구름이 휩쓴 산봉우리처럼
늘 잔잔하지만 어딘가 폭발을 숨기고 있었다.
이중의 얼굴
밤이 더 깊어가자 1층의 소란은 점점 인어처럼 길어졌다.
술에 취한 일본 관리들은 기생의 손을 잡고 노골적인 농담을 했다.
“申ウサギ(신토끼)라고 불러야겠군!”
관리 1이 씩 웃으며 말했다.
“こんな可愛い店を作るとは! (이런 귀여운 가게를 만들다니!)”
기생은 억지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눈빛은 식어 있었다.
친일파는 더 열심히 아부했다.
“신우혁 씨는 일본 제국이야말로 조선을 번영시키는 길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때였다.
천장에서 툭 하는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듣지 못했다.
술에 취한 일본인들은 바닥이 흔들려도 웃고 지나갈 만큼 무감각해져 있었다.
그러나 기생 하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손끝이 떨렸다.
눈동자가 천장을 향해 아주 살짝 흔들렸다.
밤도깨비가 움직인다.
그녀는 잔을 들며 조용히 시선을 내렸다.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지만 마음속에서는
누구의 순서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진주관에서 일본 관리가 사라지는 일은
부드럽지만 치명적인 규칙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도 이 건물 안에서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한 사람은 침묵했다.
죽고 싶지 않아 침묵했다.
술과 피의 경계
술자리는 한참 더 이어졌다.
“申さんはどこかな? (신 씨는 어디 있나?)”
관리 2가 사케잔을 흔들었다.
친일파가 급히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바로 2층에서 장부를 보실 겁니다. 잠시 후면 내려오실 테지요.”
그러나
우혁은 내려올 생각이 없었다.
그는 2층 어둠 속에서
검은 외투를 걸쳤다.
다리에서 전해지는 익숙한 통증을
조용히 눌러 참았다.
현관 옆 창문 아래에서는
이미 일본 헌병 둘이 담배를 피우며 서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감시해야 하는 대상이
바로 이 요정의 주인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한밤의 비가 기와지붕을 두드리며 쏟아지기 시작했다.
방 안엔 오직 촛불 하나가 흔들리고 있었다.
우혁은 벽장 뒤의 비밀함을 열었다.
그 안에는
조선 장도가 아니라,
일본식 단도마저 있었다.
그는 그 칼을 꺼내 들었다.
“협조적인 조선인이라…”
그는 낮게 웃었다.
“밤에 그 협조를 얼마나 후회할지 보자.”
아래층에서 일본인 관리들의 웃음소리가 들려 올라왔다.
그 웃음은
곧 끊어질 운명의 줄 같은 것이었다.
우혁은 조용히 움직였다.
발걸음은 절뚝였지만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그림자처럼 계단에 섰다.
비가 천장에서 귓가를 스쳤다.
술 냄새와 향 냄새가 뒤엉킨 아래층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늘 밤, 진주관에서 사라질 이름은 누구일까.
밤도깨비는 늘
그런 것들을
어둠 속에서 결정했다.
그리고 그의 눈빛은—
살아 있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
세상의 분노가 만든 그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