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출항 시간이 가까워지자 삼돌은 백정치에게 말했다.
"갑판에 나가서 집 쪽을 보고 절이라도 해. 언제 다시 이 땅을 밟을지 모르잖아."
백정치는 선실에서 나와 갑판으로 올라갔다. 동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멀리 영광읍 방향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곳에 그의 모든 것이 있었다. 부모님, 형제들, 어린 시절의 추억, 친구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과 이별해야 했다.
무릎을 꿇고 앉은 백정치는 땅에 이마를 댔다. 큰절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불효자식을 용서하십시오. 살기 위해 집을 버립니다. 하지만 꼭 살아 돌아오겠습니다.'
눈물이 갑판 위로 떨어졌다. 새벽 바람이 그의 눈물을 말렸다.
"출항 준비!"
삼돌의 외침에 백정치는 서둘러 선실로 들어갔다. 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엔진 소리가 새벽 바다를 가르며 울렸다.
포구가 점점 멀어졌다. 조선 땅이 멀어졌다. 백정치는 가슴에 품은 김상돌의 편지를 만지작거렸다. 이 종이 한 장이 그의 미래였다.
바다 위의 긴장
삼돌호는 서해를 남하했다. 겉으로는 평범한 고깃배였지만, 그 배에는 국경을 넘는 밀항자가 숨어 있었다.
"그물 손질 좀 도와."
삼돌의 지시에 백정치는 갑판으로 나가 그물을 정리했다. 어부로 위장하려면 어부처럼 행동해야 했다.
"손놀림이 영 어설프구만. 어디 양반집 도련님이었나?"
"아닙니다. 그저... 농사만 지어서..."
"됐어, 말 안 해도 돼. 다들 사연이 있는 거지."
정오가 되자 수평선 너머로 배 한 척이 나타났다. 삼돌의 얼굴이 굳어졌다.
"순시선이다. 아무 말 말고 그물만 손질해."
백정치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순시선이 점점 가까워졌다. 확성기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정선하시오! 검문 실시합니다!"
삼돌호가 멈췄다. 순시선에서 두 명의 단속반원이 올라탔다.
"선장은 어디 있소?"
"접니다."
"선원은 몇 명이오?"
"저 포함해서 셋입니다."
단속반원의 시선이 백정치에게 향했다.
"저 사람은 누구요?"
"제 조카입니다. 이번에 처음 배를 타보는 겁니다."
"신분증 보자."
위기의 순간이었다. 백정치에게는 신분증이 없었다. 아니, 있어도 보여줄 수 없었다.
"신분증이... 집에 두고 왔습니다."
단속반원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 시국에 신분증도 없이 배를 타? 수상한데?"
"진짜 제 조카입니다. 어제 급하게 출항하느라..."
긴장된 침묵이 흘렀다. 단속반원이 백정치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때였다.
"야! 저기 저 배 좀 봐!"
다른 단속반원이 소리쳤다. 멀리서 다른 고깃배가 급하게 도망가고 있었다.
"밀수선이다! 쫓아!"
단속반원들이 서둘러 자기 배로 돌아갔다. 순시선이 굉음을 내며 달아나는 배를 쫓았다.
삼돌은 한숨을 내쉬었다.
"운이 좋았어. 저 배가 미끼가 되어준 거야."
백정치는 식은땀을 닦았다.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