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마을 (危機)
위기의 마을 (危機)
지윤은 재빨리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얘들아, 괜찮아. 조용히 있어."
"선생님, 저 사람들은 누구예요?"
"... 일본 군인들이야. 무서워하지 마."
하지만 지윤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일본 군인 대여섯 명이 마을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확성기(擴聲機)에서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든 주민은 마을 광장에 모여라! 즉시!"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지윤은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할게.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렴."
"네, 선생님..."
아이들은 불안한 얼굴로 학당을 나갔다.
지윤도 뒤따라 나가려는데, 김 씨 아줌마가 붙잡았다.
"지윤 씨, 위험해요. 학당에 있어요."
"아니에요. 저도 가봐야 해요."
"하지만..."
"괜찮아요."
지윤은 단호하게 말하고 언덕을 내려갔다.
마을 광장.
백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일본 군인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앞에는 시마다 켄죠(島田健三)가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냉혹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여러분,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의 영광을 위해 협력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마다가 일본어로 말했다. 통역이 조선어로 옮겼다.
"오늘은 중요한 공고(公告)를 하러 왔습니다."
사람들은 긴장한 얼굴로 듣고 있었다.
"제국은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이 마을에서 징용자(徵用者) 20명을 선발합니다."
"뭐라고요?!"
군중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20명이 나요?!"
"안 돼요!"
시마다는 손을 들어 조용히 시켰다.
"조용! 이것은 명령입니다. 거부하는 자는 반역자(反逆者)로 간주하겠습니다."
공기가 얼어붙었다.
"18세에서 40세 사이의 건강한 남자는 앞으로 나오시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오지 않으면 강제로 끌어내겠습니다!"
군인들이 총을 들어 올렸다.
그제야 사람들이 떨리는 발걸음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열 명... 열다섯 명...
하지만 스무 명이 채워지지 않았다.
"부족합니다. 5명이 더 필요해요."
시마다가 날카롭게 말했다.
군인들이 군중 사이로 들어갔다. 젊은 남자들을 찾아서.
"당신, 나와!"
"저, 저는..."
"나와!"
한 청년이 끌려 나왔다. 겨우 열여섯 살쯤 되어 보였다.
"안 돼요! 우리 아들은 아직 어려요!"
어머니가 울부짖으며 매달렸다.
"비켜!"
군인이 어머니를 밀쳤다. 어머니는 땅에 넘어졌다.
"엄마!"
청년이 달려가려 했지만 군인들이 붙잡았다.
지윤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악독한 자들...'
그때였다.
"잠깐!"
군중 사이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길을 비켰다.
이산갑이 나타났다.
"산갑이 씨!"
"형님!"
사람들이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이산갑은 침착하게 시마다 앞으로 걸어갔다.
"시마다 상(さん), 잠시 이야기 좀 하죠."
시마다는 이산갑을 쳐다봤다.
"오, 이산갑 씨. 무슨 일이오?"
"이 마을은 농사를 짓는 곳입니다. 젊은 남자들을 다 데려가면 농사를 누가 짓습니까?"
"그건... 여자들과 노인들이 하면 되지 않소?"
"말이 됩니까? 쌀 공출(供出)도 늘리라고 하시면서, 일할 사람은 다 데려가시면..."
이산갑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시마다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음...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요?"
"인원을 줄여주십시오. 10명만."
"10명?"
"네. 그리고 그 대신 식량 공출을 더 늘리겠습니다."
군중이 웅성거렸다.
'식량을 더?'
하지만 이산갑은 계속 말했다.
"그리고 제가... 부역(賦役)에 협조하겠습니다."
"부역?"
"네. 도로 공사든, 건물 짓는 것이든, 제가 사람들을 조직해서 돕겠습니다."
시마다는 턱을 쓰다듬었다.
"흠... 재미있는 제안이군."
그는 이산갑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믿죠? 당신이 약속을 지킬지."
"제 명예를 걸겠습니다."
이산갑이 똑바로 시마다를 쳐다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쳤다.
긴 침묵.
마침내 시마다가 입을 열었다.
"좋아. 하지만 조건이 있소."
"무슨 조건입니까?"
"당신이 책임자가 되시오. 이 마을의 모든 부역과 공출을 당신이 관리하는 거요."
"..."
"만약 약속을 어기면... 당신부터 징용 보내겠소."
이산갑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좋아!"
시마다가 손뼉을 쳤다.
"그럼 오늘은 10명만 데려가겠소. 대신 다음 달부터 식량 공출 20% 증가!"
"... 예."
이산갑의 얼굴이 굳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군인들이 열 명을 트럭에 태웠다.
가족들이 울부짖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들아!"
"오빠!"
"꼭 살아 돌아와!"
트럭이 떠났다.
먼지만 남았다.
사람들은 주저앉아 울었다.
이산갑은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봤다.
주먹이 떨렸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
지윤이 다가왔다.
"서방님..."
"미안하오. 이것밖에 못 했소."
"아니에요. 서방님이 아니었으면 스무 명 다 끌려갔을 거예요."
"하지만..."
"충분해요. 서방님은 최선을 다하셨어요."
지윤이 이산갑의 손을 잡았다.
"우리 함께 이겨냅시다."
"... 고맙소."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힘들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아직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