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의 신의흔적 (20)

식당 주인의 미지막 식사

by 이 범

식당 주인의 마지막 식사

골목 안쪽 작은 식당. '엄마 손 밥상'이라는 간판이 40년째 걸려 있었다. 주인 영자는 70세, 올해로 식당을 닫기로 했다.



"이제 몸도 힘들고, 손님도 줄었어요. 때가 된 것 같아요."
마지막 날. 영자는 평소처럼 아침 6시에 식당 문을 열었다. 마지막이지만, 정성은 변함없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제육볶음. 모두 손수 만들었다.



첫 손님이 들어왔다. 건설 노동자였다.
"사장님, 김치찌개 하나요."
"네, 잠깐만 기다리세요."
영자는 김치찌개를 끓였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점심시간. 손님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영자는 한 명 한 명 정성껏 대접했다.
직장인이 들어왔다. 단골이었다.
"사장님, 오늘 마지막이라고 들었어요. 믿기지 않아요."
"그래요. 이제 나이도 들고..."
"사장님 음식 먹으면서 버텼는데. 이제 어디서 이런 엄마 손맛을 먹어요?"
영자는 그의 상에 반찬을 가득 올려줬다.
"마지막이니까 많이 드세요."




대학생 커플이 들어왔다. 이들도 단골이었다.
"사장님, 저희 여기서 처음 만났어요. 3년 전에. 이제 결혼하기로 했어요."
영자는 깜짝 놀라며 축하했다.
"어머, 정말? 축하해요!"
"사장님, 저희 결혼식 날 사장님 음식으로 피로연 하고 싶은데... 안 되겠죠?"
영자는 웃으며 말했다.
"그건 안 되지만, 신혼집에 반찬 좀 만들어 줄게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저녁 6시. 마지막 손님이 들어왔다. 초등학생 남자아이와 아버지였다.
"사장님, 저예요. 기억하세요?"
영자는 아버지를 쳐다봤다. 낯이 익었다.
"혹시... 민수?"
"네! 사장님, 20년 만이에요."
민수는 20년 전 고등학생이었다. 집이 어려워 밥을 못 먹을 때가 많았다. 영자는 그를 공짜로 먹여줬다. 3년 동안.
"민수야, 이렇게 컸어? 애도 있고?"
"네, 사장님 덕분에 제가 살았어요. 대학도 갔고, 지금 선생님이에요."


"어머, 선생님이 됐어?"
민수는 아들의 손을 잡았다.
"사장님, 제 아들 준호예요. 준호야, 인사해. 아빠 생명의 은인이셔."
준호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할머니, 아빠가 할머니 이야기 많이 해줬어요. 천사 같은 분이라고요."
영자는 눈물을 흘렸다.
"아니야. 나는 그냥 밥을 준 거뿐이야."
민수가 봉투를 꺼냈다.
"사장님, 이거 받으세요. 그때 못 드린 밥값이에요."
"아니야, 안 돼!"
"받으세요. 이건 밥값이 아니라 감사의 마음이에요. 그리고..."
민수는 또 다른 봉투를 꺼냈다.
"이건 제 학생들이 모은 거예요. 제가 학생들한테 사장님 이야기를 했더니, 감사 편지를 썼어요. 여기 100통 있어요."



영자는 봉투를 열었다. 학생들의 손 편지가 가득했다.
"할머니, 저희 선생님을 살려주셔서 감사해요."
"할머니가 없었으면 우리 선생님도 없었을 거예요."
"할머니는 천사예요."
영자는 편지들을 읽으며 울었다. 40년 동안 식당을 운영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먹였을까. 그들 중 몇 명이나 민수처럼 어려운 상황이었을까.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영자는 깨달았다. 자신이 평생 한 일이 단순히 음식을 파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사람을 살리고, 희망을 주고, 사랑을 나누는 일이었다는 것을.
밤 10시, 영자는 식당 문을 닫았다. 40년 동안 매일 열고 닫았던 그 문을.
간판 불을 끄려는데,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수십 명이었다.
"사장님!"
"뭐야, 다들..."
사람들은 손에 촛불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영자는 주저앉아 울었다. 40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던 날들. 손님 하나 없어 막막했던 날들.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날들.
그 모든 날이 헛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영자를 안아줬다.
"사장님, 고생 많으셨어요."
"사장님은 우리 엄마였어요."
"사장님 덕분에 우리가 살았어요."
영자는 마지막으로 식당을 돌아봤다. 낡았지만 따뜻한 공간. 수많은 이야기가 쌓인 곳.
벽에 걸린 액자에는 성경 구절이 적혀 있었다.
"무엇을 하든지 진심을 다하여 주를 섬기듯 하라."
영자는 그 구절을 읽으며 기도했다.
"주님, 40년 동안 이 작은 식당을 통해 일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제가 만든 음식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니 영광입니다. 이제 문을 닫지만, 배운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것을요."




다음 날, 영자는 무료급식소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식당은 닫았지만, 음식을 만들고 사람을 먹이는 일은 계속됐다.
"할머니, 오늘도 맛있어요!"
"많이 먹어. 든든하게."
식당 주인의 마지막 식사는 끝났지만, 사랑의 식탁은 계속된다.




신은 주방에도 계시고, 40년을 한결같이 음식을 만든 손길 속에도 계신다.
그리고 오늘도, 누군가를 위해 밥상을 차리는 모든 이들 곁에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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