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의 신의흔적 (22)

미용 시의 거울

by 이 범

미용사의 거울

동네 미용실. 미용사 은지는 10년째 같은 자리에서 일하고 있었다. 화려한 강남 미용실이 아니라, 평범한 주민들이 오는 작은 가게였다.
오늘도 단골 할머니가 오셨다.




"은지야, 오늘은 어떻게 해줄까?"
"할머니, 오늘은 파마하실래요?"
"아니야, 그냥 짧게 잘라줘. 시원하게."
은지는 할머니의 머리를 감겼다. 그런데 이상한 걸 발견했다. 할머니의 뒷머리에 상처가 있었다.
"할머니, 이거 어쩌다가...?"
"아, 그거? 넘어졌어. 혼자 사니까 이런 일이 생기지 뭐."


은지는 조심스럽게 머리를 잘라줬다. 거울을 통해 할머니의 표정을 살폈다. 뭔가 슬퍼 보였다.
"할머니,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그냥 그렇지 뭐. 혼자 사는 게 뭐 그렇지."
"외로우시겠어요."
할머니는 한참을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은지야, 솔직히 말하면... 요즘 살고 싶지 않아. 밥 먹기도 귀찮고, 아침에 일어나기도 싫어. 그냥 이대로 잠들면 좋겠어."
은지는 가슴이 철렁했다.
"할머니,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왜? 80 넘은 할멈이 뭐 더 살아서 뭐 하겠어."
은지는 커트를 멈추고 할머니 앞에 섰다.
"할머니는 제게 중요한 사람이에요. 할머니 없으면 제가 슬플 거예요."
할머니는 놀란 표정으로 은지를 바라봤다.





"은지야... 너 그런 말 해주는 사람 처음이야."
"진심이에요. 할머니는 저한테 항상 좋은 말씀 해주시잖아요. 제가 힘들 때 위로해 주시고. 할머니가 안 계시면 제가 누구한테 이야기하겠어요?"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도 누군가한테 필요한 사람이었구나..."
은지는 할머니를 안아줬다. 거울 속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30대 젊은 미용사와 80대 할머니. 나이는 달랐지만, 마음은 통했다.
커트가 끝나고, 은지는 할머니에게 제안했다.
"할머니, 이제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오세요. 커트는 안 해도 돼요. 그냥 이야기하러 오세요. 제가 차 대접할게요."
"그래도 돼?"
"당연하죠. 할머니는 제 친구예요."

그날부터 할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씩 미용실을 찾았다. 머리를 하러 오는 게 아니라, 은지와 이야기하러 왔다.
은지는 할머니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놨고, 할머니는 인생 선배로서 조언을 해줬다.
"은지야, 사람은 혼자 못 살아. 서로 기대고 살아가는 거야."




"할머니, 할머니도 혼자가 아니에요. 저 있잖아요."
6개월 후, 은지는 미용실을 넓혔다. 그리고 한쪽에 작은 카페 공간을 만들었다. 이름은 '할머니 사랑방'.
노인들이 와서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다. 무료였다.




처음에는 은지네 할머니만 왔지만, 소문이 나면서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들었다.
"여기 오면 외롭지 않아."
"젊은 친구가 우리 이야기를 들어줘."
"여기가 우리 가족이야."
은지는 매일 바빴지만 행복했다. 미용사로서 머리를 예쁘게 만드는 것도 좋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게 더 의미 있었다.
어느 날, 단골 할머니가 말했다.




"은지야, 너는 미용사가 아니라 천사야."
은지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저는 그냥 거울을 드는 사람이에요. 할머니들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비춰드리는 거예요."
미용실 거울은 단순히 외모만 비추는 게 아니었다. 그 안에는 사람의 마음도, 존재의 가치도, 서로에 대한 사랑도 비췄다.
은지는 오늘도 거울을 닦는다.
누군가 이 거울을 통해 자신의 소중함을 발견하기를.
신은 거울 속에도 계신다.
그리고 누군가의 가치를 비춰주는 사람 속에도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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